<마리오네트> 포스터

<마리오네트> 포스터 ⓒ (주)이놀미디어

 
'마리오네트'는 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극을 말한다. 이때 실로 움직이는 인형을 마리오네트라 부르기도 한다. 마리오네트가 다른 인형과 지니는 차이점은 몸을 움직이는 그 실이 마치 신이 인간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란 실에 따라 불행이나 고통에 빠지는 것처럼 마리오네트는 그런 기괴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이 영화, <마리오네트>는 이런 운명론적인 관점에서 절대적인 신과 마주한 듯한 두려움을 준다.  

아동 심리학자 메리언은 직장을 옮기면서 매니라는 소년을 만나게 된다. 주변 교사들은 매니가 특별한 소년이라 말하며 첫날부터 매니와 이야기를 한 메리언의 능력을 칭찬한다. 부모가 죽으면서 위탁가정에서 지내고 있는 매니는 매일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은 하나 같이 재난이나 사고 상황이다. 심리학에서 그림은 내면의 심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도구다. 메리언은 매니의 내면적 고통이 커 끔찍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니가 그렸던 그림 중 돼지가 머리에 총을 대고 쏘는 그림을 보게 되고 이어서 자신이 넣어준 적 없는 총을 서랍장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총을 보는 순간 메리언의 머리에는 의아함이 자리 잡고 매니의 그림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게 된다.  
그 그림들이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이란 걸 알게 된 메리언은 그제야 첫날 매니가 말한 '실제를 그리는 것'이란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메리언은 매니의 정체에 고민하게 된다. 매니는 그저 예지몽을 꾸는 것이고 그것을 그리는 걸까. 아니면 전지전능한 신처럼 그림을 통해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일까. 작품은 이런 고민에 심도를 더하기 위해 종교를 가져온다.  

메리언은 무신론자다. 그녀는 신의 전지전능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료 교사를 비웃을 만큼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남편의 죽음을 경험한 메리언은 운명은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면 그 가혹함과 무력함에 주저앉을 걸 알기에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것이라 여긴다. 그녀에게 매니의 존재는 일종의 공포다. 인간이 하늘 위 신에 따라 움직이는 마리오네트라면 그 의지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리오네트>가 지닌 가장 큰 무기는 상상력이다. 이 작품의 상상력은 증강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메리언이 존재하는 현실에 매니의 그림이 덧입혀져 체험감이 느껴지는 공포를 선사한다. 만화가 출신의 앨버트 반 스트리엔 감독은 본인의 25분짜리 단편에서 선보인 독창적인 상상력과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장편을 창작했다.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리듯 그 장면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지옥을 선사한다.  

독특한 점은 작품 내적으로는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영감은 불교에서 얻었다는 점이다. 불교의 관념은 속세의 억압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무엇이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 깨달음을 스릴러 장르에 녹여내면서 후반부에 예기치 못한 반전을 선보인다. 이 반전의 측면은 다소 호불호가 갈릴 지점이다.   
 
 <마리오네트> 스틸컷

<마리오네트> 스틸컷 ⓒ (주)이놀미디어

 
이 영화는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의 <나인스 라이프>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나인스 라이프>는 자신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숨긴 소년이 9번이나 죽음과 생존을 반복하면서 그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는 내용을 다뤘다.

이 작품의 결말은 분명 의미 있다. 앨버트 반 스트리엔 감독이 이전부터 주목해 온 아동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며 감정을 자극한다. 다만 이 결말이 영화가 보여준 미스터리 스릴러의 마무리로 적합하냐고 묻는다면 다소 의문이 남는다. 드라마적인 측면에서 의미 있는 마무리를 원하는 관객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기겠지만, 장르적인 매력을 폭발시키길 바랐던 분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마침표로 남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마리오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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