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디그>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디그> 포스터 ⓒ Netflix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938년 영국 입스위치, 남편을 잃고 외동아들 '로버트'(아치 반스)와 함께 살던 부유한 미망인 '이디스 프리티'(캐라 멜리건)는 고고학자 '배질 브라운'(랄프 파인즈)을 고용한다. 늘 집 근처 평야에 솟은 둔덕들의 정체를 궁금해 하던 그녀에게 정식으로 교육받지는 못했어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브라운 씨는 커다란 배와 묘지의 흔적을 발견하며 그 호기심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준다. 한편 출토된 유적과 유물에 대해 대영박물관 측에서 관심을 가지며 발굴 작업은 규모가 점점 커져가고, 유망한 고고학자 '페기'(릴리 제임스)와 이디스의 사촌 '로리'(조니 플린)도 발굴 작업에 참여한다. 이렇게 한 무덤 앞에 모인 이들은 조심스럽게 땅을 파내려 가며 무덤과 유물의 정체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사이먼 스톤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디그>(The dig)는 제목에 충실하다. '땅을 파다' 혹은 '발굴 현장'(dig)이라는 제목대로 등장인물들은 발굴 작업에 몰두한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에 있는 이디스는 자신의 저택 주변에 있는 둔덕이 누군가의 무덤은 아닐까라는 호기심을 처음으로 품은 인물로, 모든 발굴 작업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고 결정한다. 브라운 씨는 발굴 작업을 시작한 고고학자로 이디스의 의문을 현실로 만든다. 대영박물관이 참여하면서 판이 커져버린 작업에 참여한 페기와 로리는 실무와 기록을 책임진다. 그 외에 하인, 배우자, 지역 주민, 여러 학자들도 철저히 땅을 파는 작업에 집중하며 나름대로 힘을 보탠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디그> 스틸 컷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디그> 스틸 컷 ⓒ Netflix

 
그런데 단 한 명, 이디스의 외동아들 로버트만은 직접 땅을 파지도 않고,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는다. 하늘과 우주에 대한 만화와 영화를 보거나 브라운 씨에게 망원경으로 별을 보여달라고 부탁하는 그는 영화의 흐름이나 주제에서 살짝 빗겨나가 있는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덤에 매달려 있지 않기에 로버트는 오히려 'dig'라는 단어의 또 다른 의미, 무엇인가를 '찾는다'는 뜻을 살려내며 영화에 깊이를 더한다. 

작중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무덤, 그리고 한 소년의 열정을 사로잡은 하늘과 우주는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은 인간에게 직접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사람들이 제작기 저마다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도화지다. 누군가에게 하늘과 우주는 무미건조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자연현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반면에 로버트에게는 악당과 영웅이 싸우는 치열한 모험의 현장이며, 프리티 부인에게는 파일럿이었던 사별한 남편을 떠올리게 만든다. 말이 없기에 풍성하고 다양한 감정과 의미를 느끼도록 할 수 있다. 무덤도 다르지 않다. 무덤은 유물과 유적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자신이 의미가 있었던 시대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텅 빈 우주를 인간의 상상력이 다양한 스펙터클로 채워 넣듯이, 역사책의 빈 페이지를 채워 넣을 수 있는 도구가 될 뿐이다. 

이러한 공통점을 토대로 영화는 무덤을 파는 사람들이 그 무덤에 투영하는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때 로버트는 직·간접적으로 그들의 개인사와 가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진심을 이끌어내며 멀리 떨어진 하늘 위와 땅 밑 사이의 접점이 된다. 아이를 잃은 듯 보이는 브라운 씨는 직접 집까지 찾아와 발굴 작업을 이어가달라고 부탁하는 로버트와 자신의 아이를 겹쳐보며 본인의 상실감을 극복한다. 그간 애써 무시하던 자신의 병을 받아들인 이디스는 아들과 함께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일찍이 떠난 남편과의 재회와 아들과의 이별을 마음속으로, 또 현실에서 준비한다. 공군 입대를 앞두고 사촌인 프리티 부인으로부터 꼭 살아남아서 로버트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은 로리는 전쟁의 두려움 속에서 발굴 작업을 함께한 페기를 향한 사랑을 깨닫는다. 발굴 현장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받고 연구가 우선인 남편에게 외면당한 페기는 그런 로리를 바라보며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가 누구인지 확신을 얻는다.
 
이러한 영화의 내용은 함석헌 시인의 시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와 맞닿아 있다. 시의 화자는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대 맘의 네문 밀밀히 닫고(...) 맑은 등잔 하나 가만히 밝혀만 놓면 극진하신 님의 꿀 같은 속삭임 들을 수 있네"라는 답을 내놓으면서 시를 마무리 짓는다. 아직 햇빛을 보지 못한 무덤과 유적이야말로 이 세상과 단절된 골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화자의 질문은 로버트가 발굴 작업에 참여한 이들에게 이 작업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제각기 가장 원하는 것, 자신이 진심으로 갈구하던 것을 찾아낸 작중 인물들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사실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심을 깨닫는 과정을 은밀하거나 깊은 곳에 위치한 장소로 향하는 여정에 빗대는 것은 오래된 문학적 전통이다. 요나는 고래 뱃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깨닫는다. 엘리야는 산속 동굴에 들어가서야 그토록 원했던 부드럽고 조용한 신의 음성, 성서의 표현대로라면 "섬세한 침묵의 소리"를 듣는다. 길가메시도 바다 깊은 곳으로 떠나는 여정을 통해 인생을 더욱 소중하고 필사적으로 살 수 있게 만드는 죽음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래서 제목인 <더 디그>는 단순히 땅을, 유적을 판다는 의미가 아니다. 결국 영화는 저마다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고 결핍된 것은 무엇인지 마음속 깊은 곳에 숨은 진심을 '찾아내는'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때 <더 디그>는 절실히 원하는 것, 바라는 것, 필요한 것, 놓치고 있는 것을 찾는 과정을 핵심 테마인 침묵을 강조하는 연출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를 풀어낼 때 영화는 마치 하늘, 우주, 무덤처럼 쉽사리 말을 꺼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물들이 서로의 상처와 진심을 진정으로 깨닫고 이해하는 순간에 그들의 대사는 내레이션으로 처리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이디스와 브라운 씨가 서로에게 이번 발굴이 갖는 의미나 각자의 개인사를 처음으로 털어놓는 장면에서, 또 베티와 로리가 서로에게 갖는 감정을 인정하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도 그들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디그> 스틸 컷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디그> 스틸 컷 ⓒ Netflix

 
유물을 어느 박물관에 전시할지에 대한 프리티 부인의 결정을 기자들을 만나고 축하파티를 하는 장면들의 순서를 이리저리 꼬아가면서 마지막 순간에 알려주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심지어 그 유물들이 영국사에서 흔히 암흑시대라 일컬어지는 시기인 5~7세기의 유물인 점도 침묵이라는 테마를 적절히 부각하며 영화의 구성을 일관성 있게 다듬는 도구로 활용된다. 로마 제국이 브리튼 섬에서 철수한 후 브리튼 인과 앵글로색슨 족이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이 시기에 관해서는 아서왕과 같은 전설이 전해질뿐, 구체적인 사료나 기록이 많지 않다. 그래서 발굴에 참여한 이들은 이 침묵으로부터 각자 바라는 서로 다른 해석과 의미를 끌어낸다.

마지막으로 메시지와 주제에 힘을 더하는 대목은 시대적 배경이다. 하늘 위와 땅 밑처럼 침묵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아낸 진심의 중요성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연결되면서 더욱 강조된다. 1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프리티 부인의 파일럿 남편, 2차 세계대전 발발을 앞두고 훈련하던 파일럿의 불시착으로 인한 죽음, 공군으로 입대하는 로리의 커져가는 공포와 두려움까지 영화는 전쟁으로 인한 죽음을 계속해서 등장시킨다. 물론 전쟁 외에도 이디스는 병 때문에, 브라운 씨는 작업 중 흙더미에 파묻히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른다. 

생사를 오가는 순간이 반복됨에 따라서 누군가의 죽음, 그 흔적인 무덤으로부터 끄집어낸 각자의 삶의 의미, 그것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삶, 죽은 자와 달리 그 진심을 말할 수 있는 삶의 소중함과 생생함은 커져간다. 점차 다가오는 죽음을 직감하고 괴로워하는 이디스에게 브라운 씨가 "우리는 태초부터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언가의 일부죠. 완전히 죽는 것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 결과 처음부터 끝까지 땅만 파는 듯 보이는 <더 디그>는 하늘과 땅, 삶과 죽음 사이에서 찾은 마음속 깊은 곳에 말없이 숨어 있던 진심과 삶의 의미를 찾는 영화가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더 디그 넷플릭스 캐리 멀리건 랄프 파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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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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