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마티네> 스틸컷

<가을의 마티네> 스틸컷 ⓒ 찬란

 
베스트셀러 '마티네의 끝에서'를 원작으로 한 <가을의 마티네>는 <평일 오후 3시의 연인>을 통해 진한 감성을 뽑아낸 니시타니 히로시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중년의 로맨스를 풋풋한 첫사랑의 감성으로 담아낸 이 작품은 음악회의 낮 공연을 가리키는 용어인 '마티네'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선보인다. 밤과 같이 더 깊은 사랑에 빠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천재 기타리스트 마키노는 공연 후 뒤풀이 자리에서 저널리스트 요코를 만난다.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계속 요코를 쳐다보기만 하는 마키노는 아쉽게도 요코가 파리로 돌아가면서 첫 만남을 끝내게 된다. 파리에서 특파원으로 활동 중인 요코는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테러 사건을 취재한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때는 극단적 종교주의자들에 의한 테러가 적지 않게 발생하던 시기다. 
  
 <가을의 마티네> 스틸컷

<가을의 마티네> 스틸컷 ⓒ 찬란

 
방송국 테러로 친구를 잃은 요코는 그 아픔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요코를 위로해 주는 건 마키노다. 화상통화 중 갑작스런 소음에 두려움에 떠는 요코를 마키노는 달랜다. 마키노는 뛰어난 청각으로 그 소리의 정체가 공사장 소리라는 걸 알려주고 어설픈 유머로 웃음을 주려 한다. 이런 마키노는 요코의 20년 연인 리차드 보다 강하게 요코를 끌어당긴다. 뉴욕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리차드는 돈이 인생의 전부라 여긴다.
 
평생 먹고 살 돈을 벌었다며 자랑하는 리차드에게 요코는 정신적인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콘서트장에서 마키노의 연주를 들으며 느꼈던 그 따뜻함과 위로가 여전히 그녀의 마음에는 남아있다. 마키노는 유럽 공연이 잡히자 요코에게 만나자고 청한다. 그 따뜻한 기억 때문인지 요코는 마키노의 청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식사자리에서 마키노는 예기치 못한 박력 넘치는 고백을 한다. 
  
 <가을의 마티네> 스틸컷

<가을의 마티네> 스틸컷 ⓒ 찬란

 
첫 번째 만남에서는 요코와 제대로 대화를 이어가기도 힘들어했던 마키노는 좋아한다며 마음을 표현한다. 당황한 요코는 자신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걸 아느냐고 묻고, 마키노는 알기에 막기 위해 왔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마키노와 요코에게는 순수함이 있다. 각자의 직업에 대해 진중하게 고민하고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정신적인 믿음을 중시한다.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지닌 두 사람의 로맨스는 예기치 못한 시련을 겪는다.
 
이 시련은 작품이 지닌 로맨스의 색을 더욱 진하게 만든다. 마키노의 매니저 사나에의 목표는 완벽한 조연이 되는 것이다. 마키노를 최고의 연주자로 만들고 싶은 그녀는 유코에 의해 마키노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이를 막고자 한다. 사나에의 계획이 먹힌 이유는 두 사람 사이의 끈끈하지 못한 유대관계와 상대를 향한 과한 배려에 있다. 마키노와 요코는 작품 속에서 실질적으로 두 번 만난다. 두 번의 만남은 소나기 같은 감정과 달리 이슬비 같은 믿음을 심어준다.
 
서로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면 이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허나 요코는 마키노가 음악에 헌신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에, 마키노는 연인이 있는 요코가 더 다가가면 부담을 느낄 거란 착각에 자신의 마음을 이기적이라 여기고 상대를 배려하고자 한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더 다가설 수 없었던 두 사람의 사랑은 가을과 같은 쓸쓸함과 낭만을 선사하며 마음을 적신다.
  
 <가을의 마티네> 스틸컷

<가을의 마티네> 스틸컷 ⓒ 찬란

 
일본을 대표하는 중년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청순한 미모로 큰 인기를 끌었던 이시다 유리코는 영화가 지닌 낭만적인 감성에 어울리는 비주얼 조합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전히 소녀 같은 이시다 유리코는 요코가 느끼는 순수한 사랑의 감성을 전해주며, 매 순간 신중하게 자신의 감정을 고민하는 마키노 역의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이미지에 어울리는 연기와 와인 같은 중년의 매력을 선보인다.
 
여기에 일본과 파리, 뉴욕을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공간을 통한 거리감으로 애틋함을 자아내는 건 물론 다채로운 배경을 통해 시각적인 풍미를 더한다. 각 공간에 따라 마키노가 지닌 연주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일본에서는 완벽한 연주를 위한 신중함을, 유럽에서는 위로를 위한 따뜻함을, 미국에서는 사랑에 대한 애틋함을 담아내며 아름답고도 아픈 이야기를 완성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가을의 마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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