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는 12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중이다. 프리미어리그(EPL)는 물론이고 유로파리그와 리그컵(카라바오컵)까지 3~4일 단위로 빡빡한 경기일정이 이어진다. 다른 빅클럽들에 비하여 주전 의존도가 높은 토트넘에게는 더 부담스러운 일정이다.

현재 토트넘은 컵대회에서는 유로파리그 32강(볼프스베르거:오스트리아), 리그컵 4강(브렌트포드:2부리그)에 올라 강팀들을 피하여 비교적 수월한 약체들을 만나는 대진운까지 따랐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EPL에서는 최근 다소 주춤하다. 시즌 초반 선두권까지 등극하며 우승후보로까지 기대를 모았던 토트넘은 강호 리버풀과 레스터시티에 시즌 첫 연패를 당하며 순식간에 7위(7승4무3패, 승점 25)까지 떨어졌다. 패배보다 경기력이 더 좋지 않았다는 게 더 문제였다.

여기에 지난 24일에는 리그컵 8강전에서 스토크시티를 3-1로 이기고도 적지않은 후폭풍이 발생했다. 토트넘은 이날도 2부리그팀 스토크를 상대로 부분 로테이션을 단행했지만, 공격수 해리 케인과 미드필더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 수비수 에릭 다이어 등 다수의 주전들을 여전히 정상출전시키며 풀타임을 소화하게 했다. 손흥민도 후반 시작과 함께 투입됐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 쉼없이 달려온 선수들에게 잠시라도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토트넘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토트넘은 2008년 이 대회에서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한 이후 지난 12년간 모든 대회를 통틀어 단 하나의 트로피도 들어올리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지금으로서는 토트넘의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회중 하나가 리그컵이라고 했을 때 무리뉴 감독이 무리를 해서라도 주전들을 투입한 이유가 납득이 되지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동안 초반의 호성적에 가려진 토트넘의 불안요소와 무리뉴 축구의 문제점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레스 베일은 스토크전에서 모처럼 득점을 기록했지만 부상을 당하며 조기교체됐다. 무리뉴 감독 체제에서 입지가 줄어든 델레 알리는 이날 선발출전했으나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며 문책성 교체를 당했고, 경기후에도 무리뉴 감독으로부터 공개적으로 저격까지 당했다. 케인의 백업 공격수로 포르투갈 벤피카에서 임대 영입한 카를로스 비니우스는 컵대회에서도 출전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주전 선수들의 부담을 덜어줘야할 선수들이 중용되지 못하며 토트넘은 한정된 선수층으로 3~4개의 대회를 병행해야 하는 위태로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무리뉴 감독은 토트넘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전임 포체티노 감독의 공격적인 축구에 익숙해져있던 팀컬러를 수비와 역습 중심의 '실리축구'로 재편했다. 토트넘은 올시즌 대부분의 경기에서 상대팀보다 낮은 점유율을 기록하고도 손흥민과 케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카운터어택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승리를 챙겼다. 두 선수는 올시즌 토트넘이 기록한 25골중 무려 20골을 합작했다.

하지만 두 선수를 제외하면 다른 공격옵션이 매우 부족하다. 스티븐 베르흐베인과 루카스 모우라는 활동량과 수비가담 등에 장점이 있지만 득점력이 아쉽다.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베일은 팀합류 두달이 넘도록 좀처럼 몸상태를 끌어 올리지 못하고 있고, 알리와 비니시우스는 무리뉴 감독의 눈밖에 난 상태다. 결국 리버풀-레스터전처럼 케인과 손흥민이 터지지 않으면 토트넘은 공격의 활로가 막혀서 답답한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다.

축구전문가들은 토트넘이 순항하던 시점에서도 무리뉴 감독의 지나치게 수비적인 전술과 플랜B 부재를 약점으로 지적한바 있다. 주전 의존도가 높고 경기운영의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무리뉴 감독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힌다. 토트넘은 다른 빅클럽에 비하면 선수층이 두텁지 않고, 영입에 있어서도 합리적인 투자를 중시하는 팀이다.

그럼에도 토트넘은 올시즌 상당한 수완을 발휘하여 각 포지션에 걸쳐 전력보강을 단행했지만 효율성에 의문부호가 붙고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 호이비에르와 풀백 도허티-레길론 등 수비 자원들의 영입은 호평을 받는 만큼, 공격자원은 오히려 지난 시즌보다도 나아진 게 별로 없다. 매경기 상대 수비수들의 집중견제에 시달리는 케인은 지난 몇 년간 여러 차례 잔부상이 많았던 선수이고, 손흥민도 시즌 초반 혹독한 일정 속에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전력이 있다. 장기레이스 이들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무리뉴 감독의 리더십도 또다른 불안요소다. 원래 무리뉴 감독은 선수장악력이 강점으로 꼽히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 시절 이후 첼시 2기-맨유에서는 카시야스-에당 아자르-디에고 코스타-폴 포그바 등 항상 주축 선수들과 불화설에 시달리며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은 바 있다. 토트넘에 부임해서도 불과 1년 만에 대니 로즈-델레 알리들과 불화설에 휘말렸다. 탕귀 은돔벨레처럼 한때 사이가 좋지 않다가 회복된 케이스도 있지만, 언론에 공개적으로 선수를 비난하고 길들이려는 무리뉴의 스타일이 자존심 강하고 자기표현이 분명한 요즘 젊은 선수들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토트넘은 무리뉴가 이끌었던 여러 빅클럽중에서는 상대적으로 감독하기에 수월한 팀이라고 할 수 있다. 개성과 자기 주장이 강하고 선수단 내부에서도 상당한 입김을 행사하는 에이스나 베테랑 선수들과 무리뉴 감독이 자주 충돌했던 전력을 감안할때, 토트넘은 스타의식이 강하고 '사고뭉치'로 꼽힐만한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드물다. 그나마 악동 기질이 있다는 로즈나 알리도 라커룸 영향력은 크지 않거나 어린 선수들뿐이다.

손흥민, 요리스, 해리 케인 등 토트넘의 주축들은 자국의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장을 맡고 있을만큼 모범적인 선수들이 많고 경기 내외적으로도 큰 물의에 휩싸인 경우가 드물다. 이는 바꿔 말하면 무리뉴 감독이 아니라 어떤 지도자가 왔더라도 감독의 권위에 맞서서 대립하거나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극히 적은 선수들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이런 토트넘에서조차 선수단과 갈등을 일으키고 자꾸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는 감독의 리더십에도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장기레이스에서 비주전이나 각기 다양한 스타일을 지닌 선수들을 아우르며 팀을 이끌어가야 할 감독으로서는 '포용력과 유연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전임 포체티노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될 때까지도 선수단 내부에서는 항상 굳건한 지지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항상 선수들에 대한 호불호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무리뉴 감독의 방식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 수 있다. 무리뉴 감독이 '우승청부사'로 꼽히면서도 한 팀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한 것은 이런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다.

우승이라는 목표가 유지 될 동안에는 선수단을 휘어잡을 수 있지만, 높은 주전 의존도와 혹사, 선수들의 창의성을 제한하는 경직된 전술, 자신의 눈밖에 난 선수들을 외면하거나 기회를 주지 않는 등 갈등을 유발하는 무리뉴의 팀운영은 항상 수많은 부작용을 후유증으로 동반한다. 토트넘에게 무리뉴와의 동행이란 앞으로도 항상 '양날의 검'을 들고있는 것과 같은 이유다.

토트넘은 28일 울버햄튼전을 시작으로 다시 풀럼-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들이 새해초까지 숨돌릴 틈없이 이어진다. 그나마 중하위권팀들과의 경기라는 게 위안이지만, 이미 거듭된 강행군으로 지쳐 있는 토트넘의 주축 선수들의 체력이 얼마나 버텨줄지가 관건이다. 무리뉴 감독은 과연 플랜B의 부재, 선수장악력이라는 불안요소를 극복하고 팀을 다시 순항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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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뉴 토트넘홋스퍼 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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