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이팅게일> 포스터

영화 <나이팅게일> 포스터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영화 <나이팅게일>은 남편과 아이를 잃은 한 여성의 처절한 복수로 시작해, 호주의 아픈 역사를 훑으며 아련한 슬픔으로 점철된다. 인물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1:1 화면 비율로 인해 관객은 인물의 심리를 습자지처럼 전달받게 된다.

수위 높은 폭력적인 장면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이는 심적으로 복수에 동참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또한 뻔한 할리우드식의 전쟁 참상을 그리지 않아 신선할뿐더러 힘없는 하층민이자 여성의 관점에서 재해석된 독창적인 스타일이 눈길을 끈다. 
 
이 영화는 2014년 모자(母子)를 옥죄는 히스테릭한 공포를 그려 전 세계 호러팬을 열광케 한 영화 <바바둑>의 '제니퍼 켄트' 감독의 신작으로, 수상 경력 또한 화려하다. 제75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신인배우상 수상 및 제9회 호주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 6관왕을 차지하며 일찍이 화제를 모았다.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이를 잃은 여성의 추적 복수극
  
 영화 <나이팅게일> 스틸컷

영화 <나이팅게일> 스틸컷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19세기 영국의 폭력이 만연했던 호주 태즈메이니아 마을에 사는 아일랜드 죄수 클레어(아이슬링 프란쵸시)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져 '나이팅게일'이라 불린다. 나이팅게일은 참새목에 속하는데 구슬픈 소리가 아름다워 신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새다. 클레어가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병사들 앞에서 부르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듣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나이팅게일처럼 어디든 날아갈 수 없다. 형기를 마쳤지만 추천장이 없어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 존재다. 아기를 안고 자장가를 불러 줄 때도 한 손에는 칼을 쥐고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몸이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위험에 대비해 목숨줄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어야만 하는 가련한 신세다.
 
죄수인 탓에 남편과 아기와 행복한 생활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다. 낮에는 모진 노동, 밤이면 중위 호킨스(샘 클라플린)의 무리한 요구도 들어주어야만 한다. 몸과 마음을 유린 당한 지 벌써 3개월째. 말만 잘 들으면 금방이라도 만들어 줄 것처럼 굴던 추천서를 두고 호킨스와 입씨름 중이다. 하지만 매번 복종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 반항이라도 하면, 그는 그녀의 인권까지 짓밟는다.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남편은 자제력을 잃고 호킨스와 대적하고,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에 폭주한 호킨스는 부대원을 이끌고 클레어 집에 찾아와 남편과 아이의 목숨을 빼앗아간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진급을 위해 북부 론스톤으로 떠나버렸다. 클레어는 직접 상부에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죄수라는 이유로 묵살당하고 만다.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클레어는 처절한 복수를 다짐한다.
 
클레어는 반드시 호킨스의 뒤를 쫓겠다는 살기를 보인다. 하지만 험난한 여정이 예고되어 있다. 숲은 위험했고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따라서 지리를 잘 아는 가이드가 필요했다. 클레어는 원주민 빌리(베이컬리 거넴바르)의 안내를 받으며 장총을 옆에 끼고 길 위에 선다.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목숨을 잃어버려도 괜찮다는 일념 하에 멈추지 않고 달린다.
 
호주 원주민의 아픈 과거사 소환
  
 영화 <나이팅게일> 스틸컷

영화 <나이팅게일> 스틸컷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영화 <나이팅게일>은 개인의 아픔과 호주의 역사를 동일선상에 놓는다. 호주는 17세기 유럽 탐험가들이 영토를 확장하던 대항해 시대에 알려진 땅이다. 유럽인이 지역을 개척하기 전까지 원주민(애버리진)은 수렵채집을 하며 거주했다. 500여 개의 부족이 700여 개의 언어를 사용하며 4만 년 이상 터전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뺀다고, 땅의 소유 개념이 없던 원주민을 몰아내고 잔혹하게 호주를 점령한다.
 
아일랜드 죄수였던 클레어와 남편은 아일랜드와 영국의 오랜 침략 전쟁의 희생자기도 하다. 그런 영국군은 장소를 옮겨 또다시 침략을 일삼고 있었다. 태즈메이니아에 살고 있는 원주민을 한낱 짐승으로 여겨 차별은 물론 사냥감으로 쓰는 등 학살을 일삼았다. 그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1876년 마지막 원주민이 죽으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따라서 원주민들과 영국군의 대립은 커지고 있었다. 북부로 가려는 호킨스가 원주민을 잘 구슬려 안내인으로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영화 속에 잘 설명되어 있다.
 
영화 <나이팅게일>은 역사적 사건을 배경을 근거로 자유를 꿈꾸는 클레어와 호주의 원래 주인 빌리의 한(恨)을 동일선상에 놓는다. 구슬픈 노래를 부르는 나이팅게일과 블랙버드로 불리는 망가나는 두 사람을 상징하는 새로 묘사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복수를 위해 공조하고 인종과 국가, 성별을 뛰어넘어 우정을 나눈다. 나 스스로 누구의 소유가 아닌 내가 주인인 자유의지를 피력하기 위해 싸운다.

이 땅을 마음대로 착취한 유럽인을 향한 분노가 영화 속에 배어 있지만 그 끝은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폭력으로 시작된 복수는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인간성은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진중한 질문들을 남긴다. 각자 다른 경험으로 받은 상처를 서로 보듬어주고 치유하는 과정은 식민지 역사를 가진 우리에도 깊은 연민을 느끼게 한다.  
오랫동안 다양한 동-식물이 살았던 천연의 땅 호주의 신비로운 자연경관과 전통 민요와 춤사위, 주인공 '아이슬링 프란쵸시'의 선하지만 날 선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오페라 가수로도 활동했던 그녀는 아일랜드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걸로 알려졌으며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체력 단련과 심리학도 공부했다. 그녀와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을 연기한 '샘 클라플린'은 그동안 로맨스 영화에서 보여준 젠틀함을 지우고 파격 변신했다. 전형적인 이중인격자의 행동을 보이며 입신양명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욕망에 찬 모습을 보여준다.
나이팅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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