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 호랑이가 8년만에 아시아 최고의 클럽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추가 시간 5분이 지나고 주심의 종료 휘슬 소리가 들리자 주니오가 그라운드에 엎드려 눈물을 쏟았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누구보다 냉정하게 골을 터뜨린 최고의 골잡이도 끓어오르는 우승 감격은 주체할 수 없었다. 2019년 K리그 1 준우승, 2020년 K리그 1 준우승, 2020년 FA(축구협회)컵 준우승이라는 아픈 기억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순간이었기에 2020 시즌 마지막 시상식은 활짝 웃는 그들이 주인공이 됐다.

김도훈 감독이 이끌고 있는 울산 현대(한국)가 우리 시각으로 19일 오후 9시 카타르에 있는 알 자누브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20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페르세폴리스(이란)와의 결승전에서 간판 골잡이 주니오의 2득점 활약에 힘입어 2-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2012년에 이어 이 대회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정확했던 VAR 판독

울산은 게임 시작 후 9분만에 특급 미드필더 윤빛가람이 위력적인 오른발 슛을 날렸을 때 골대 불운을 겪었다. 왼쪽 측면에서 김인성-주니오로 이어진 패스를 받아 윤빛가람이 오른발 슛을 했지만 공이 페르세폴리스 골문 오른쪽 기둥 하단을 때린 것이다. 

골대 불운 때문일까. 울산은 전반전 종료 직전에 뼈아픈 수비 실수로 먼저 골을 내줬다. 45분, 수비 지역에서 공을 돌리던 박주호의 어이없는 백패스 실수로 아찔한 경험을 또 한 번 겪었다. 페르세폴리스 골잡이 메흐디 압디 카라의 오른발 슛이 울산 센터백 불투이스 다리 사이를 통과하여 골문 왼쪽 구석에 정확하게 꽂힌 것이다.

하지만 울산은 전반전 추가 시간에 결정적인 반전 드라마의 발판을 놓았다. 골대 불운을 겪은 윤빛가람이 페널티킥을 얻어낸 것이다. 45+1분, 주니오의 논스톱 패스를 받은 윤빛가람이 페널티 구역 안에서 상대 수비수를 등지는 순간 페르세폴리스 미드필더 아마드 누롤라히가 윤빛가람 뒤에서 아킬레스건 부위를 걷어찼다. 압둘라흐만 알 자심(카타르) 주심은 게임을 그냥 진행시켰지만 잠시 후 VAR(비디오 판독 심판) 룸에서 무선 연락이 왔다. 온 필드 뷰로 확인해야 할 사안이라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압둘라흐만 알 자심 주심은 확인 후 곧바로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누롤라히의 반칙이 누가 봐도 선명하게 VAR 판독용 카메라에 찍혔기 때문이다. 11미터 지점에 공을 내려놓은 골잡이 주니오는 오른발 인사이드 슛으로 골문 오른쪽 구석을 노렸지만 순발력 좋은 페르세폴리스 골키퍼 하메드 라크가 자기 왼쪽으로 몸을 날려 막아냈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굴러오는 공을 주니오가 2차 슛으로 가볍게 차 넣었다. 극적인 동점 순간이었다.

아찔하게 고비를 넘긴 울산 현대 선수들은 후반전에 또 하나의 역전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53분에 이청용이 오른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로 또 하나의 페널티킥을 얻어낸 것이다. 이번에도 VAR 온 필드 뷰가 시행됐다. 이청용의 크로스가 반대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주니오에게 정확하게 넘어가는 공을 바로 앞에서 솟구친 페르세폴리스 수비수 메흐디 쉬리가 노골적으로 팔을 들어올려 방향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키커는 주니오였고 그는 실수 없이 오른발 슛을 다시 한 번 오른쪽 구석으로 강하게 차 넣었다. 2020 K리그 1 최고의 골잡이, '골무원'이라는 수식어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입증한 순간이었다. 

김도훈 감독, 준우승 한 풀다

상대 팀 페르세폴리스도 2년 전 이 대회 준우승의 아픔을 씻어내기 위해 승리에 대한 열망이 울산 선수들 못지 않았다. 주니오의 역전골이 터진 이후 울산 현대의 골문을 쉼없이 두드렸지만 센터백 불투이스, 김기희가 지키고 있는 호랑이굴을 더 이상 흔들지 못했다. 

90분에 프리킥 세트 피스로 극장 동점골 기회를 잡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오프 사이드 깃발이 올라가는 바람에 페르세폴리스 선수들은 탄식을 내뱉어야 했다. 그 헤더 슛을 날린 주인공이 전반전 윤빛가람을 뒤에서 걷어차 페널티킥을 내준 아마드 누롤라히였기에 아쉬움이 컸다. 비록 오프 사이드 판정이 나왔지만 울산 골문을 지킨 조수혁 골키퍼는 자기 왼쪽으로 몸을 날려 구석으로 빨려들어가는 그 공을 기막히게 쳐내는 슈퍼 세이브 능력을 보여줘 필드 플레이어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버틸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

후반전 추가 시간 5분도 다 지나서 압둘라흐만 알 자심 주심의 종료 휘슬이 길게 울려 울산 현대의 2020년 피날레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장식됐다. 조별리그 2게임(울산 현대 2-1 퍼스 글로리, 울산 현대 2-1 FC 도쿄)도 모자라 빗셀 고베(일본)와의 준결승전 2-1 역전승에 이어 결승전까지 네 게임을 모두 2-1 역전 드라마로 장식한 것은 실로 놀라운 결과다.

결승전이 끝나고 곧바로 이어진 시상식에서 울산 현대는 페어 플레이상까지 받았으며 윤빛가람이 MVP(최우수선수상) 트로피를 받는 영광을 누렸다. 모두 7골을 터뜨리며 압데라자크 함달라(알 나스르)와 나란히 이 대회 득점 랭킹 1위에 오른 주니오는 실제 뛴 시간이 더 많았기에 아쉽게도 득점왕 트로피를 받지는 못했다.

울산 현대를 네 시즌 동안 이끌며 누구보다 마음 고생을 많이 했던 김도훈 감독은 2017년 FA컵 우승 이후 네 차례나 준우승(2018 FA컵 2위, 2019 K리그 원 2위, 2020 K리그 원 2위, 2020 FA컵 2위)에 그친 불편한 기억들을 지워낼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이끈 것이라 그 감회가 남달랐다. 

아시아 최고의 클럽에 오른 울산 현대는 2021년 시즌을 어느 팀보다 부지런히 시작해야 한다. 2021년 2월 1일부터 카타르에서 열리는 FIFA(국제축구연맹) 클럽 월드컵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아직 참가 팀들이 모두 확정되지 않았지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 팀 바이에른 뮌헨(독일)을 비롯하여 각 대륙 최고의 클럽들이 모이는 대회이기에 더 많은 축구팬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2020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결과(19일 오후 9시, 알 자누브 스타디움)

울산 현대 2-1 페르세폴리스 [득점 : 주니오(45+4분), 주니오(55분,PK) / 메흐디 압디 카라(45분)]

울산 현대 선수들
FW : 주니오(83분↔비욘 존슨)
AMF : 김인성(90+1분↔설영우), 신진호(83분↔정승현), 이청용(72분↔이근호)
DMF : 윤빛가람, 원두재
DF : 박주호(72분↔홍철), 불투이스, 김기희, 김태환
GK : 조수혁

2020 FIFA 클럽 월드컵 참가 팀 목록
울산 현대(한국,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팀)
바이에른 뮌헨(독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팀)
알 아흘리(이집트, CAF 챔피언스리그 우승 팀)
북중미(Concacaf) 대표 팀 미정 : 2020년 12월 22일 예정
남아메리카(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대표 팀 미정 : 2021년 1월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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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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