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는 과거 슈퍼리그 시절부터 '백구의 대제전', '겨울스포츠의 꽃'으로 불리면서도 언제나 같은 겨울스포츠인 농구에 비해 인기가 떨어졌다. 특히 90년대 초·중반 대학농구의 스타들이 연예인을 능가하는 인기를 구가하며 농구가 '국민스포츠급' 인기를 얻었을 때 배구의 인기와 위상은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았던 게 사실이다. 이는 배구가 농구보다 프로화가 8년이나 늦어진 원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농구와 배구의 인기는 역전이 됐다. 농구가 90년대 농구붐을 주도했던 소위 '농구대잔치 세대'의 은퇴 이후 완만한 하강곡선을 그린 사이 배구는 '여제' 김연경(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이라는 걸출한 스타의 활약과 런던 올림픽 4강, 리우 올림픽 8강 등 국제대회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꾸준히 인기를 끌어 올렸다. 특히 남자부의 들러리였던 여자배구의 상승세는 놀랍기 그지 없다.

이제 배구의 인기는 농구를 저 멀리 따돌리고 최고의 인기스포츠인 야구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시즌이 조기에 종료되거나 무관중으로 시즌이 진행되는 등 크고 작은 악재가 있음에도 배구의 인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과연 코로나19시대를 보낸 2020년 배구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유럽 정상급 선수 김연경의 V리그 복귀 
 
 '여제' 김연경이 복귀하면서 V리그 여자부는 한층 더 뜨거워졌다.

'여제' 김연경이 복귀하면서 V리그 여자부는 한층 더 뜨거워졌다. ⓒ 한국배구연맹

 
축구팬들에게 새벽잠을 설치며 손흥민(토트넘 핫스퍼)의 경기를 보는 것은 즐거움을 넘어선 '삶의 낙'이다. 하지만 축구팬들도 손흥민이 K리그에서 활약하는 장면을 쉽게 상상할 수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 경쟁을 벌이고 있는 손흥민이라면 당연히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하는 게 어울리다는 것을 축구팬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배구에서는 김연경이 그런 존재였다. 런던 올림픽 MVP이자 2011-2012 유럽배구 챔피언스리그 득점왕과 MVP, 2014-2015 시즌 터키리그 MVP에 빛나는 김연경은 분명 세계 최고의 무대가 어울리는 '월드클래스' 배구스타다. 그런 김연경이 유럽과 중국 등에서 제안한 거액을 뿌리치고 11년 만에 한국 무대 컴백을 선언했다.

김연경은 흥국생명과 계약하면서 팀 동료들을 위해 유럽과 중국 시절 10억 원을 훌쩍 상회하던 연봉을 3억5000만원으로 낮췄다. 그리고 김연경은 이번 시즌 흥국생명의 주장을 맡으며 코트 안팎에서 동료들을 잘 이끌고 있다. 실제로 김연경 복귀 후 흥국생명은 이번 시즌 역대 V리그 최다 연승 타이기록에 해당하는 14연승과 개막 후 9연승을 내달리는 등 선두를 질주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김연경은 득점과 공격성공률, 서브 등 개인기록에서도 상위권을 달리며 건재한 기량을 뽐내고 있다. 특히 득점 1,2,3위(이하 18일 기준)인 메레타 러츠(GS칼텍스 KIXX)와 발렌티나 디우프(KGC인삼공사), 안나 라자레바(IBK기업은행 알토스)의 공격점유율이 각각 40%를 훌쩍 넘는 것에 비해 김연경의 공격점유율은 30% 초반에 불과하다. 이는 김연경이 얼마나 효율적인 공격수인지 잘 보여주는 지표다.

물론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무관중 경기를 할 때가 더 많았지만 제한적인 관중입장이 가능했을 때 흥국생명의 경기는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매진행렬이었다. 게다가 흥국생명 경기의 시청률은 다른 경기의 시청률보다 월등히 높다. 물론 흥국생명에는 '슈퍼쌍둥이' 이재영과 이다영도 있지만 이번 시즌 흥국생명, 그리고 여자배구의 인기에는 김연경의 복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초유의 외국인 비대면 드래프트, 케이타 '대박' 터졌다
 
 말리 출신의 만19세 소년 케이타(KB손해보험)는 남자부에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말리 출신의 만19세 소년 케이타(KB손해보험)는 남자부에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 한국배구연맹

 
매년 시즌이 끝나고 4~5월이 되면 각 구단들은 매우 분주해진다. 바로 외국인 선수 선발을 위한 트라이아웃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가 팀 공격의 40% 내외를 책임지는 V리그의 특성상 외국인 선수를 어떻게 선발하느냐에 따라 한 시즌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시기에 각 구단의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은 트라이아웃이 열리는 장소로 직접 찾아가 선수들의 기량과 스타일, 인성 등을 직접 확인해 최적의 선수를 선발한다.

하지만 올해는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남녀부 모두 트라이아웃을 진행하지 못했다. 대신 V리그 진출을 원하는 선수들에게 참가신청서를 받은 후 서류와 영상자료 등을 통해 선수의 기량을 체크한 후 선수를 선발하는 역대 최초의 '비대면 드래프트'가 진행됐다. 선수들도, 구단들도, 연맹도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뉴노멀' 외국인 선수 선발이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한 시즌 살림을 책임질 외국인 선수를 선발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모험보다는 안정을 선택하는 구단들이 늘었다.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가 다우디 오켈로, 대한항공 점보스가 안드레스 비예나와 재계약했고 V리그 경험이 있는 알렉산드리 페헤이라가 우리카드 위비의 선택을 받았다. 이 같은 현상은 새 얼굴이 3명 밖에 없었던 여자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자부에서는 '비대면 드래프트의 로또'가 적중했다. KB손해보험 스타즈가 과감하게 1순위로 지명한 말리 출신의 만19세 소년 노우모리 케이타가 엄청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득점 1위를 질주하고 있다. 한국전력 빅스톰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카일 러셀 역시 장병철 감독이 '비대면'으로 선택한 외국인 선수다. 물론 지난 17일 교체가 결정된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바토즈 크라이첵처럼 실망스러웠던 선수도 있었다.

반면에 여자부에서는 러츠와 디우프가 나란히 득점 1,2위를 달리며 '구관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새 얼굴인 라자레바와 헬렌 루소(현대건설), 켈시 페인(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의 활약도 나쁘진 않지만 몇몇 선수들은 V리그의 높은 공격점유율에 벌써부터 지친 기색을 보이고 있다. 해가 바뀌고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더욱 커질 것을 고려하면 외국인 선수들의 체력문제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연경 네트사건과 판정번복, 심판 불신 커져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지만 배구 역시 심판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반드시 필요한 종목이다. 물론 네트를 사이에 두고 시속 100km를 넘나드는 공이 상대 블로커 손가락에 스치듯 지나간 것을 잡아내거나 선수들의 감정표현이 상대에 대한 도발인지, 스스로에 대한 불만인지 잡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올해는 유난히 심판과 관련한 사건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 중에서 올해를 가장 떠들썩하게 했던 일은 바로 지난 11월 11일 흥국생명과 GS칼텍스의 경기에서 있었던 김연경의 '네트잡기 사건'이었다. 이날 김연경은 5세트 듀스 상황에서 공격이 상대 블로킹에 막히자 아쉬움에 네트를 잡아당기며 안타까운 감정을 표출했다. GS칼텍스의 차상현 감독은 이 행동에 강하게 항의했지만 강주희 주심은 김연경의 행동이 상대를 도발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며 김연경에게 따로 주의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배구연맹은 다음날 김연경에게 주의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주희 주심에게 제재금을 부과했고 이는 심판과 연맹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이후 V리그에서는 암묵적으로 선수들끼리 과한 세리머니를 자제하는 불문률이 생겼고 극적인 득점을 올린 후에도 선수들은 의도적으로 표현을 자제했다. 하지만 배구의 큰 볼거리 중 하나였던 화려한 세리머니가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배구팬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란이 오가고 있다.

지난 12일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 인삼공사의 경기에서도 심판판정과 관련한 또 하나의 논란이 있었다. 3세트 21-22로 뒤진 상황에서 현대건설은 네트터치 반칙으로 실점을 했다. 이도희 감독은 비디오 판독 끝에 번복을 이끌어 냈지만 느린 장면을 확인한 심판, 경기 감독관은 인삼공사의 공격이 코트 안으로 들어 왔다며 인삼공사의 득점을 선언했다. 비디오 판독 번복을 이끌어 낸 현대건설로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한 현대건설은 경기 후 한국배구연맹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고 연맹은 해당 경기의 주·부심에게 각각 30만 원, 심판 및 경기감독관에게는 각각 20만 원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연이은 판정 논란으로 심판과 선수 사이의 신뢰가 깨진다는 점이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심판들은 앞으로 더욱 단호하고 정확한 판정을 해야 하고 선수들도 심판에 대한 믿음과 존중을 가져야만 판정논란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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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결산 배구 김연경 비대면 드래프트 판정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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