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마지막 게임에서 10년 넘은 K리그 우승 염원이 날아가고 통한의 2위에 머물렀던 울산 현대가 올해는 절치부심 우승 트로피를 향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국가대표 골키퍼 조현우를 대구 FC에서 데려온 것도 모자라 블루 드래곤 이청용의 K리그 복귀 드라마 밑그림을 그리며 15년만에 K리그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꿈을 실현시키는 듯 보였다.

실제로 전북 현대가 시즌 중 비틀거렸기 때문에 큰 실수만 나오지 않는다면 울산의 우승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하지만 울산은 2년 연속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라이벌 전북 현대에게 우승 트로피 2개(K리그 1, FA컵)를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2년 연속 숫자 '2'의 저주에 걸린 듯 보였다. 

이번 챔피언스리그는 숫자 '2'의 저주에 걸린 울산 현대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다.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이어진 2년 연속 '2위'의 아픔을 씻어내기 위해 울산 선수들은 도하로 날아와 믿기 힘든 연승 행진을 거듭하면서 준결승전에 올랐다. 그리고는 조금 불편해도,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아도 축구 게임에 VAR(비디오 판독 심판) 시스템을 도입한 이유를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빅 게임을 펼쳤다. 벼랑 끝에 내몰렸던 울산 현대가 아찔한 고비를 넘고 8년만에 최고의 트로피를 들어올릴 기회를 잡은 것이다. 단순한 극장 결승골을 뛰어넘어 연장전 종료 1분 전에 터진, 정말로 믿기 힘든 기적의 역전 결승골 덕분에 결승전에 올랐다. 어쩌면 그들은 2년 연속 이어진 '2위' 행진의 마침표를 찍어낼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김도훈 감독이 이끌고 있는 울산 현대(한국)가 우리 시각으로 13일 오후 7시 카타르 도하에 있는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20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빗셀 고베(일본)와의 준결승전에서 연장전까지 이어진 아찔한 고비를 넘고 2-1로 역전승을 거둬 오는 19일 열리는 결승전에 올랐다.

두 번의 VAR, 2개의 아찔한 실수까지

울산 현대 선수들은 이 대회 최종 결과를 떠나 수원 블루윙즈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상대 팀 빗셀 고베가 결과적으로 연장전 1분 정도를 남기고 무너진 것은 8강 토너먼트 연장전 후 승부차기까지 이어질 정도로 끈질겼던 10명의 상대 팀 수원 블루윙즈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 팀 빗셀 고베가 2일 20시간만에 다시 뛰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었기에 울산으로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결승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정작 이 준결승 뚜껑을 열어보니 빗셀 고베는 울산 현대에게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팀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최고의 미드필더 이니에스타까지 허벅지 근육 부상으로 아예 선수 명단에서 제외됐지만 그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52분에 빗셀 고베의 골이 먼저 나왔기 때문에 울산 현대는 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미드필더 야스이 타쿠야의 오른쪽 코너킥을 재치있게 받은 야마구치 호타루가 기습적으로 오른발 대각선 슛을 낮게 휘어차 성공시킨 것이다. 상대 선수들이 예측하기 힘든 세트 피스 창의성이 돋보이는 명장면이었다.

이에 울산 벤치에서는 실점 후 3분만에 다급한 선수 교체 신호를 보냈다. 이청용 대신 골잡이 비욘 존슨을, 정동호 대신 더 날카로운 오른쪽 풀백 김태환을 선택한 것이다. 이 빠른 결단 덕분에 울산은 빗셀 고베를 상대로 공격 주도권을 더욱 확실하게 틀어쥘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골 결정력은 언제나 그들이 원하는 쪽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뒤통수를 한 방 더 얻어맞으며 주저앉는 듯 보였다.

75분에 빗셀 고베가 날카로운 역습을 펼치며 추가골을 터뜨린 것이다. 후반전 교체 선수 사사키 다이주의 침착한 오른발 슛이 울산 현대 골문을 또 한 번 열었다. 그런데 나와프 슈크랄라(바레인) 주심이 최종 판정을 보류하고 VAR(비디오 판독 심판) 룸에서 보내는 무선 메시지를 오랫동안 듣고는 온 필드 뷰를 시행했다. 울산 골문 앞에서 이어진 연결 과정은 문제가 없었지만 빗셀 고베가 역습을 시작할 때 반칙 행위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빗셀 고베 미드필더 야스이 타쿠야가 공을 빼앗는 순간 울산 주장 신진호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리는 반칙이 VAR 카메라에 정확하게 담긴 것이었다.

울산 현대의 두 번째 VAR 판독 운명은 그로부터 6분 뒤에 또 한 번 아찔하게 다가왔다. 81분, 김인성의 횡 패스를 받은 윤빛가람이 왼발 슛을 했고 그 공은 골문 바로 앞에 자리잡은 교체 선수 비욘 존슨의 발끝에 맞고 살짝 방향이 바뀌어 굴러 들어갔다. 그런데 부심의 오프 사이드 깃발이 번쩍 올라갔다. 노 골 표시였다. 울산 현대 선수들은 이 극적인 동점골을 잃어버릴 수 없기에 심판들에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하소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또 한 번 슈크랄라 주심의 이어셋에 중대한 무선 신호가 날아왔다. 오프 사이드 판정 깃발이 잘못될 수 있다는 VAR 룸의 전언이었다. 

실제로 VAR 영상에 의해 윤빛가람의 슛 직전, 왼쪽 측면으로 넓게 벌어져 있던 김인성에게 패스가 날아올 때 온 사이드 포지션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인성보다 약간 아래쪽에 빗셀 고베 수비의 핵 베르마엘렌이 자리잡고 있던 것이 찍혔다. 이렇게 울산 현대는 신중한 VAR 2회 판독을 계기로 다시 살아났고 연장전까지 이어진 살얼음판을 걷게 됐다.

사실 울산 현대에게 이 숫자 '2'는 다른 맥락으로도 아찔한 경험이었다. 경험 많은 수비수 둘이 좀처럼 믿기 힘든 실수를 나란히 저질렀기 때문이다. 첫 번째 아찔한 실수 주인공은 센터백 불투이스였다. 게임 시작 후 14분만에 조수혁 골키퍼에게 패스한 공이 터무니없이 짧게 떨어진 바람에 빗셀 고베 골잡이 더글라스에게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헌납한 것이다. 누가 봐도 조수혁 골키퍼와 혼자서 맞서는 순간이었기에 손쉬운 골이 터질 줄 알았지만 슛 타이밍을 한 박자 느리게 잡은 것이 급하게 커버 플레이 펼치기 위해 달려온 미즈필더 윤빛가람의 몸에 걸렸다. 

울산은 이 아찔한 실수가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연장전에도 거의 비슷한 지점에서 한 차례 또 이어졌다. 106분, 교체 선수 홍철이 옆줄 가까이에서 골키퍼 조수혁에게 백 패스한 공이 너무 짧아 빗셀 고베 골잡이 더글라스에게 걸린 것이다. 그는 자신있는 왼발 슛을 조수혁 골키퍼 앞에서 시도한 것이 아니라 동료를 활용한 2:1 패스를 시도했다가 마지막 패스가 길었다. 아무리 골을 내주지는 않았지만 한 게임에서 2회나 되돌릴 수 없는 결정적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은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할 일이었다.

이렇게 아찔한 '2'의 고비를 넘고 또 넘은 울산은 연장전 종료 직전에 극적인 역전 결승골을 성공시켰다. 117분, 빗셀 고베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에서 공을 잡다가 놓친 골키퍼 마이카와 다이야가 울산 골잡이 주니오를 걸어서 넘어뜨린 것이다. 이 페널티킥 기회를 주니오가 놓칠 리 없었고 오른발 슛이 골문 왼쪽 구석으로 정확하게 빨려 들어갔다. 2게임 연속 승부차기를 노리던 빗셀 고베 선수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 울산 현대는 오는 19일(토) 오후 9시 알 자누브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결승전 페르세폴리스(이란)를 상대로 진정한 숫자 '2'의 저주를 날려버릴 기회를 잡았다.

2020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결과(13일 오후 7시,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도하)

울산 현대 2-1 빗셀 고베 [득점 : 비욘 존슨(81분,도움-윤빛가람), 주니오(119분,PK) / 야마구치 호타루(52분,도움-야스이 타쿠야)]

울산 현대 선수들
FW : 주니오
AMF : 김인성, 고명진(46분↔이근호), 이청용(55분↔비욘 존슨)
DMF : 윤빛가람, 신진호(96분↔원두재)
DF : 박주호(63분↔홍철), 불투이스, 김기희(67분↔정승현), 정동호(55분↔김태환)
GK : 조수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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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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