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인기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는 대한민국 각계 각층을 대표하는 '보스'들(사장님)과 그 소속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일터와 일상 속 관계를 돌아보는 역지사지-자아성찰 예능 프로그램을 표방했다. 프로그램 제목은 유명 동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패러디하여 '할 말은 많아도 다 할수 없는' 보스와 직원 관계에서 벌어지는 동상이몽을 의미한다. <당나귀 귀>는 최근 몇주간 연이어 최고시청률을 경신하는 등 주말을 대표하는 인기 예능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겉보기에 높은 인기와 별개로 정작 시청자들의 반응은 곱지만은 않다. 최근들어 언제부터인가 <당나귀 귀>에는 '사장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부쩍 늘었다. 

현재 <당나귀 귀>의 고정 출연진중 보스라는 직함이 어울릴만한 인물은 김기태 영암군 민속씨름단 감독 정도가 유일하다. 프로그램의 홍일점이자 최초의 걸그룹인 마마무 솔라는 팀내 리더이자 최연장자지만, 애초에 멤버들간 상하관계가 아닌 동등한 팀의 일원으로서 보스라는 타이틀을 붙이기 애매하다. 인기 멤버인 현주엽은 올해 프로농구 창원 LG 감독직을 사임하고, 현재는 공식적인 직책이 없는 개인 방송인이자 유튜버 지망생 신분에 불과하다.

<당나귀 귀>는 그동안 패션-헬스-요리-스포츠 등 각자 자신만의 분야에서 인정받고 '정상'의 반열에 오른 보스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들이 과연 어떤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어가는지, 구성원들은 그런 보스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비교해보는게 이 프로그램의 매력포인트였다.

초기에는 성공을 향한 열정과 자신만의 가치관을 지키기 위하여 좌충우돌하는 보스들의 모습이 자칫 시대착오적인 '갑질'이나 '꼰대'까지 미화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조직 사회라면 어디서나 입장이 상반될 수밖에 없는 '보스VS 구성원간의 동상이몽'이라는 구도는, 시청자들의 시선에서 양측 모두의 입장을 아우르는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전문적인 직업군의 세계는 각기 어떤 원리로 운영되고 있는지, 요즘 대한민국 직장 문화의 현 주소는 어떤 분위기인지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최근의 <당나귀귀>는 '보스'가 사라지면서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점점 흔들리고 있다. 직업군이나 조직관계에서 나오는 에피소드보다는, 갈수록 출연자들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방송이 되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종된 사장님 이야기의 빈 자리를 메우는 것은 반복되는 '먹방'과 '홍보'다. 최근 <당나귀귀>는 먹방 프로그램인지 광고물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프로그램 취지와 무관한 에피소드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당나귀 귀>가 초기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을수 있었던 데는 현주엽이 LG 감독 시절 보여준 먹방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제작진이 더 이상 보스도 아닌 현주엽을 프로그램에 복귀시키고 '구직 체험' '유튜버 제작'같은 여러 가지 맞춤형 미션을 유도한 것도, 결국 인기 컨텐츠였던 현주엽의 먹방을 어떻게든 다시 살려내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현주엽은 요리사 정호영 셰프, 농구선수 출신배우 박광재 등과 한 팀을 이뤄 최근 유튜브 제작을 명분으로 매주 '먹방투어'를 펼치고 있다. 문제는 벌써 몇 달째 색다른 내용이나 아이디어도 없이 그저 장소만 바꿔서 양적으로 많이 먹는 모습만 반복해서 보여주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제는 더이상 보스도 감독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장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도와주는 동생들에게 하대하고 지시를 내리는 현주엽 특유의 불편한 꼰대 캐릭터는 여전하다.

심지어 이제는 현주엽만이 아니라 다른 출연자들에게도 매주 먹방은 필수가 됐다. 현주엽-김기태 감독과 MC 전현무 등 남성 출연진 3인의 남도밥상 회식, 컴백을 앞둔 마마무 멤버들의 회식 장면, 영암군 씨름단의 치킨 야식타임과 막국수-마카롱-코스요리 먹방까지, 이쯤되면 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당나귀귀> 제작진은 먹는 장면을 만들어내는데 유독 집착한다.

자연히 개연성이 떨어지는 억지스러운 에피소드들은 늘어나고 있다. 공중파 방송인 <당나귀 귀>가 왜 매주 현주엽을 비롯한 고정출연자들의 개인 유튜브 홍보를 해줘야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지금까지 솔라의 에피소드는 대부분 컴백을 앞둔 마마무 멤버들의 신곡 준비, 컨셉 회의, 뮤직비디오 촬영 등 사실상 '마마무의 신곡 홍보'를 위한 내용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또한 김기태 감독이 모처럼의 휴일에 서울에 찾아온 선수들을 데리고 씨름단 회식을 위하여 찾아간 곳은, 하필 <당나귀 귀>의 이전 고정출연자였던 송훈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이어진 방송에서 송훈 셰프는 현주엽 팀의 에피소드에도 등장하며 유튜브 제작 참여를 놓고 정호영 셰프와 일종의 라이벌 기믹을 형성한다. <당나귀 귀>는 송훈이 고정 멤버로 출연할때에도 제주도에 2호 지점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지속적으로 홍보해준 바 있다.

<당나귀 귀>에는 더 이상 사장님도 직장생활의 애환도, 일상속 서열 문화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공감대도 모두 사라졌다. 이 정도면 성공에 도취되어 초심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프로그램속 보스들이 아니라 <당나귀 귀> 제작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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