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놓인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의 운명은 양의지(NC 다이노스)의 어깨에 맡겨졌다. 선수협은 7일 오전 서울 리베라호텔에서 4차 임시 이사회를 열고 10개 구단 선수단 투표 결과 양의지를 제11대 회장으로 선출했다고 발표했다.

선수협은 전임 회장 이대호가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지난 11월 30일까지 모바일 투표를 통해 새 회장 선거를 치렀다. 구단별 연봉 상위 3명씩 총 30명 후보를 놓고 투표했고 양의지는 456표 중 가장 많은 103표를 획득했다. 선출 결과를 수락하며 바로 신임 회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게 된 양의지의 임기는 2년이다.

선수협은 현재 대내외적으로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판공비(업무추진비) 사용을 둘러싼 셀프 인상과 투명성 논란에 휩싸이며 사실상 전임 회장과 사무총장이 모두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이대호 전 회장은 최근 한 시민단체로부터 법적인 고발까지 당했다. 단순히 금전상의 문제를 떠나 선수협의 정체성과 조직운영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는 게 더 큰 타격이다. 논란 속에 취임해야 하는 차기 회장도 시작부터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

논란 속 취임, 사과로 시작한 양의지
 
  7일 강남구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프로야구 선수협회 이사회에서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NC 양의지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7일 강남구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프로야구 선수협회 이사회에서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NC 양의지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선, 양의지 신임 회장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선수협 문제에 대하여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양의지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팬들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양 회장은 "어려운 시기에 회장이 됐다. 선수협 내부에 좋지 않은 일들로 인해 야구팬들과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잘못된 정관이나 내부 규정이 있는지 다시 한번 꼼꼼히 살피고, 필요한 부분에 있어 바르게 잡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양의지는 현재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에서 모두 주전 포수로서 우승을 달성했으며 2018년에는 FA 자격을 얻어 NC와 4년 125억원(계약금 60억원, 연봉 총액 65억원)으로 이대호(4년 150억)에 이어 KBO 역대 2위에 해당하는 대형계약을 달성했다. 리그 최고의 안방마님으로 꼽히는 선수답게 리더십이 뛰어나고, 진중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야구계에서 많은 인망을 얻은 데다 사생활에서도 지금까지 특별한 구설수가 없었을 만큼 모범적인 선수경력을 이어왔다. 여러 면에서 선수들을 대표하는 리더를 맡기기에 자격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야구선수로서 훌륭했던 것과 정치적-행정적 역량이 요구되는 공식단체의 수장을 맡는 것은 전혀 별개의 영역이다. 바로 전임 회장 이대호만 해도 야구선수로서는 흠잡을 데 없는 업적을 남긴 위대한 선수였지만, 정작 선수협의 대표로서는 사실상 흑역사에 가까운 오명을 남겼다. 본인이 애초에 선수협 회장에 의욕이 없었음에도 등 떠밀리 듯이 임명된 탓에 선수협의 정체성과 비전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했다. 판공비 논란에 대해서 관행으로 변명하거나, 자신이 직접 데려온 사무총장을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한 것이 드러나는 등 전체적으로 무능한 모습만 보여주며 실망감을 남겼다.

양의지 회장이 앞으로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선수협의 개혁은 단지 회장 개인의 능력과 의지에만 떠넘겨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물론 박재홍같이 유능한 회장이 있을 때는 선수협도 나름 잘 굴러갔지만, 회장 한 명이 바뀔 때마다 선수협의 존재감마저 오락가락한다는 것은 출범 20년이 넘는 선수협이 아직도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증거다.

회장만이 아니라 각 팀의 주장으로 구성된 이사진, 저연봉자나 젊은 선수들, 은퇴 선수들에 이르기까지, 프로야구 구성원들이 좀더 폭넓게 선수협 운영에 참여하고 권한과 책임도 함께 분산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회장도 현역 선수인만큼 임기내내 선수협 업무에 집중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설사 회장이나 사무총장이 바뀌더라도 안정적으로 선수협이 돌아갈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인수인계가 연속성 있게 이루어질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양의지 신임회장이 이끌게 된 새 집행부의 어깨는 무겁다. 일단 당장은 선수협 실무를 담당할 새로운 사무총장을 뽑아야 하고, 판공비 관련 논란에 대한 잘못된 관행 타파와 제도적 규정 보완도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그동안 선수협으로부터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저연봉 선수들과 귀족화된 선수협에 실망감을 느낀 팬들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어려운 숙제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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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지 선수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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