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프로축구 K리그 승강전쟁이 '각본 없는 드라마'를 남기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다음 시즌 K리그1으로 승격할 마지막 주인공이 가려졌다. 수원FC는 29일 오후 3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2 2020 승강 플레이오프 최종전에서 경남FC와 1-1로 비겼다. 승강플레이오프에서는 무승부일 경우 정규리그 순위가 높은 팀에 어드밴티지를 주는 규정에 따라, 정규리그 2위였던 수원이 3위 경남을 제치고 5년 만에 K리그1 무대로 복귀하게 됐다.

경기 전 많은 사람들은 수원의 낙승을 예상했다. 수원(승점 54)과 경남(승점 39)의 정규시즌 순위 차이는 불과 한계단이었지만 승점은 수원이 무려 15점이나 앞섰다. 올시즌 세 번의 맞대결에서 모두 수원이 승리했다. 상대팀인 설기현 경남 감독마저 수원이 승격할 것 같다하며 자신들의 열세를 인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설 감독의 발언은 엄살이었다. 오히려 철저하게 준비하고 나온 경남이 내내 경기를 주도하며 수원을 압박했다. 경남은 전반 26분 최준의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며 선제골까지 넣었다. 경남은 정규시간이 끝날때까지도 수원에 앞서가며 1년만의 1부 승격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 추가시간 양팀의 운명은 또 한번 뒤바뀌었다. 후반 추가시간 4분도 넘긴 종료직전, 경남의 페널티박스에서 양팀 선수들이 뒤엉켜 공중볼 경합을 벌이던 혼전 상황 속에 수비 강화를 위하여 교체투입된 경남 김형원이 수원 정선호의 몸을 뒤에서 팔로 감싸며 넘어뜨렸다.

처음에는 그대로 넘어가는 듯 했으나 주심이 비디오판독을 통해 당시 상황을 다시 확인하고 결국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키커로 나선 안병준은 페널티킥을 침착하게 성공시켰고 이때의 시각은 99분을 넘기고 있었다. 사실상 수원의 극적인 승격을 완성하는 '버저비터'였다. PK와 함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양팀 선수들 모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수원은 기쁨에, 경남 선수들에게는 통한의 눈물이었다.

승강제였기에 가능한 드라마였다. 2013년부터 K리그에 '반 강제'로 승강제가 도입된 이후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제 승강제는 K리그 흥행을 위하여 없어서는 안될 최고의 히트상품임이 증명됐다. 매년 승격과 잔류를 둘러싼 1, 2부 리그 팀들의 생존 경쟁은 시즌 막판에 우승팀을 가리는 것보다 더 흥미진진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올시즌도 1,2부리그 모두 막판에 드라마같은 명승부와 반전이 쏟아져나왔다. 1부리그에서는 강등위기에 몰렸던 성남과 인천이 기적적으로 회생하고, 부산이 강등 당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부산은 마지막 2경기에서 1경기만 비겨도 잔류를 확정할수 있었으나 하필이면 강등 경쟁팀이던 인천과 성남에게 연패를 당하며 1부 복귀 1년만에 다시 충격적인 두 번째 강등을 경험했다.

K리그2는 예년과 달리 올 시즌에는 1부리그 팀과의 별로 승강 플레이오프 없이 K리그2 자체 플레이오프 최종 승자가 마지막으로 1부 리그에 올라가는 상황이었다. 연고지 이전으로 자동 강등이 예정된 상주 상무와 최하위 부산 아이파크까지 2부리그로 내려올 2팀, K리그1 선두를 차지하는 제주FC까지 승격 1팀은 모두 확정된 상태였다.

2013년부터 K리그에 합류한 수원은 2015년에 K리그2 2위의 성적으로 1부리그에 승격한 경험이 있으나, 이듬해인 2016시즌 1부 리그 최하위에 그치며 1년 만에 다시 2부로 내려간 바 있다. 지난 2019시즌에는 K리그2에서도 8위에 그치며 올 시즌을 앞두고 수원의 승격 가능성을 기대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수원은 탄탄한 전력을 과시하며 일찌감치 상위권을 질주했다. 1위로 직행한 제주와는 6점차에 불과했지만 3위 경남과는 무려 15점 차로, K리그2 역사상 2위와 3위간의 승점차가 가장 컸던 기록이다. 이러고도 만일 단기전인 플레이오프에서 1경기를 놓쳐서 1부행에 실패했다면 수원 팬들에게는 두고두고 한이 되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무승부 어드밴티지' 규정에 불만을 표시하는 팬들도 있다. 하위 팀은 반드시 승리해야 하지만, 상위 팀은 비기기만 해도 된다. 상위팀보다 더 많은 경기를 치러야하고 원정의 불리함도 극복해야하는 하위팀에는 과도한 이중삼중의 핸디캡이라는 지적이다. 무승부 어드밴티지 규정없이 수원과 경남의 대결이 만일 연장전이나 승부차기까지 갔다면 승부는 장담할 수 없었고 오히려 더 흥미진진한 내용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경남도 올시즌 바로 이 규정의 수혜를 입었다. 경남은 4위 대전과의 준PO에서 1-1로 비기고도 승자가 되어 수원과의 최종 PO에 오를 수 있었다. 단기전이고 변수가 많은 축구라는 스포츠에서 정규시즌에 더 뛰어난 성적을 올린 팀에게 확실한 어드밴티지를 부여하는 것도 필요하다.

극적인 승부일수록 안타까운 패자 혹은 희생양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경남 수비수 김형원은 단 한 번의 실수로 졸지에 경남의 일년 농사를 망친 역적이 됐다.

경남 유스인 진주고 출신의 김형원은 2018년 경남의 우선지명을 받았고 연세대학교를 거쳐 올시즌을 앞두고 프로에 첫 입단한 유망주다. 수비수-공격수-미드필더까지 여러 포지션을 두루 경험했고 올시즌에는 김학범 감독의 눈길을 받아 U-21 대표팀에도 승선했을만큼 '경남의 미래'로 꼽히는 대형 기대주였다.

착실하게 성장하던 김형원이 하필 올시즌 팀의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대형사고를 칠줄 누가 알았을까. 의욕만 앞섰던 김형원은 긴장감에 몸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보였고 돌아 들어가는 공격수를 순간적으로 놓치며 해서는 안 될 파울을 저질렀다. 김형원이 후반 추가시간 네게바를 대신해 출전하여 정선호에게 저지른 파울은 교체투입된지 불과 1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결과론일 수도 있지만 수비 안정이 가장 필요했던 중요한 순간에 베테랑 선수들을 두고 굳이 경험이 없는 신인을 기용한 '초짜 사령탑' 설기현 감독의 책임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김형원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지만 이것 역시 축구 선수로서 경험하고 극복해야할 과정의 일부다. 축구는 수많은 실수 속에서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스포츠다. 내노라하는 성공한 스타 선수들도 '흑역사' 한두 개 쯤은 당연하게 보유하고 있다. 국가대표 수비수 김영권은 2013년 숙적 이란과의 월드컵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치명적인 실수로 결승골을 헌납했고, 이동국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우루과이전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날리는 '물회오리슛'으로 두고두고 욕을 먹었으며, 조원희는 K리그 수원 삼성 시절 남겼던 그림같은 '헤딩슛 자책골'이 지금까지 자학개그의 소재가 쓰일 정도다.

김형원은 앞으로 걸어갈 축구 인생이 훨씬 더 많이 남은 선수다. 실수에 낙심하고 주저앉으면 평생 그 정도의 선수로만 남을 뿐이지만, 극복하고 일어서면 팀과 팬들에게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는 언젠가 또 찾아온다. 축구 팬들도 어린 선수의 실수에 대하여 지나치게 가혹한 시선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지만 이런 장면도 모두 축구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김형원 경남FC 수원FC 승강플레이오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