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의 한 장면

<담보>의 한 장면 ⓒ CJ E&M

 
코로나 시국이라 누구나 그렇겠지만 신작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코로나가 잠시 잠잠했을 때 이 때다 싶어 한 편 본 것을 빼고는 개봉하는 영화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때가 많다.

영화를 선택할 때 대체로 우리나라의 영화를 고른다. 이유는 언어의 장벽도 없고 영화의 배경도 정서도 익숙해서 쉽게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들게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영화의 상황에 쉽게 빠지고 길게 여운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남편이 어디서 재미있다는 말을 들었는지 어떠냐며 물어온 영화가 <담보>였다. 

주말 영화 소개 코너에서도 자주 소개돼서 영화를 안 봤음에도 다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실제로 보고 나면 짧은 소개로 추측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역시 영화는 처음부터 찬찬히 봐야 제맛이다. 늘 화나 있는 것 같고 툴툴거리며 막말을 하는 듯하지만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채업자 두석(성동일)이 영화의 중심을 받쳐 준다. 

'츤데레' 사채업자 두석과 그의 군대 후임 중배(김희원)는 떼인 돈을 받으러 갔다가 얼결에 9살 승이(박소이)를 담보로 데리고 온다. 시간적 배경이 1993년이라고 해도 재중동포인 승이 어머니 명자(김윤진)가 75만 원에 딸을 빼앗기는 장면은 마음이 아프다. 

영화는 사채업자의 무도한 일상이나 물질적 냉혹함을 드러내기보다는 담보인 승이와 두석, 중배의 인간적이고 따뜻한 마음의 교류를 이야기한다.  

딸을 담보로 빼앗긴 승이의 엄마(명자)는 재중동포이며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범죄에 연루되어 있기도 한 명자는 경찰에 잡힌 뒤 바로 강제 출국될 위기에 처한다. 출국 직전 명자는 두석에게 승이를 큰아버지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한다. 승이의 큰아버지는 흔쾌히 명자의 빚을 갚아주고 승이를 부잣집에 입양 보낸다고 데려가지만, 실제로는 술집에 팔아 넘긴다. 

승이 큰아버지의 행동을 석연치 않게 보았던 두석은 승이에게 삐삐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주었지만, 술집에 팔려간 승이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한편, 승이는 돌봄을 받기는커녕 술집의 잡일까지 다 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렵게 연락이 되고 승이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은 두석은 승이를 찾아가고 자신의 전 재산인 차를 팔아서 승이의 몸값을 치르고 데려온다. 

이후 두석은 승이의 보호자가 된다. 담보로 데려온 승이에게 기꺼이 인생을 담보 잡힌다. 자신의 병도 돌보지 않고 승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두석이 아빠로 인정받는 날, 두석은 사고를 당하고 사라진다. 

사채업자와 담보라는 관계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만든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어떤 가족보다 진하다. 영화의 후반부에 슬픈 장면이 이어지지만 억지스럽지는 않다. 극한에 처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담보>의 한 장면

<담보>의 한 장면 ⓒ CJ ENM

 
실화를 바탕으로 했던 강대규 감독의 전작 <하모니>에도 역시 아이를 떠나보내는 엄마가 나왔다. 교정시설 내에서 출산하고 양육해오던 18개월의 아이를 떠나보내는 역할 역시 김윤진 배우가 연기했다. 애끓는 모성과 이별의 아픔을 그린 영화 <하모니>에서의 인물들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 승이와 엄마도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다.

척박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둡지 않게 풀어간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 같다. 물론 실제 상황과 괴리가 있지만, 영화가 실제 상황을 재현하여 어둡고 칙칙하게 이어진다면 급격한 피로감을 동반할 것이 틀림없을 테니.

예능 프로그램 <바퀴 달린 집>을 통해서 김희원 배우를 접하고는 영화에서 보이는 모습과 너무 달라 의외라고 생각했다. <담보>에서의 캐릭터는 악역으로 나올 때의 모습보다는 관찰 예능에서 보여준 그의 본래의 모습에 더 가깝다. 개인적으로 영화 <아저씨>에서의 모습이 김희원 배우와는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승이 역의 박소이 양이다. 어린 나이임에도 슬프거나 처량하거나 순진하거나 영악하거나 하는 모습들을 적절히 잘 보여주며 영화를 빛내고 있다. 아역이 영화를 지배하기 힘들 것 같은데 박소이 양의 연기는 영화를 지배하는 느낌이다.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 라인과 다소 뻔한 전개가 아쉽기는 하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보았던 모습과 다르지 않은 듯한 두석이라는 역할은 드라마에서의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요즘처럼 힘든 시대를 헤쳐갈 때 필요한 건 역시 가족의 연대와 온기라고 영화가 말해주는 것 같아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담보 김희원 성동일 박소이 김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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