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가 죽던 날> 포스터

영화 <내가 죽던 날>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누구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절망적인 순간들을 만난다. 자의든 타의든 불쑥 찾아오는 절망의 시기는 자신은 물론 주변까지 우울하게 만든다. 대다수는 그런 절망적인 순간을 맞닥뜨리면 혼자만의 시간을 선택한다. 술에 의존하거나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우울감은 더욱 극대화되고, 주변인들과도 서서히 멀어진다. 그리고 그 우울한 터널 속에서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 어떤 이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대다수에게 찾아오는 절망의 시기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강도에 차이가 있다. 그것이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그것을 맞이하는 당사자에게 크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큰 절망일 것이다. 그 절망 속에서 사람들과 멀어져 가면서도 당사자는 외부에 어떤 방식으로든 신호를 보내려 한다. 자의든 타의든 작은 신호라도 보내기 위해 손을 잡아달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고통 속에서 먼 곳을 바라본다.

그 사람이 먼 곳으로 떠난 후에야, 주변의 사람들은 그 신호를 눈치챈다. 그 사람이 떠나기 직전까지 보여준 행동과 메시지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자살 추정 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 <내가 죽던 날>
 
 영화 <내가 죽던 날> 장면

영화 <내가 죽던 날>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내가 죽던 날>은 자살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주인공 현수(김혜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랜 공백 후 다시 형사로 복직하려고 한다. 복직을 위해 한 소녀의 실종을 자살로 종결짓기 위해 한 섬으로 가게 되고 그 소녀의 주변을 조사한다.

현수는 이혼 소송 중으로 본인의 상황도 굉장히 절망적이고 우울해 보인다. 잠을 못 자거나 설사 잠이 들더라도 악몽을 꾸면서 깨는 것을 반복하는 그는 우울한 눈빛을 숨기고 사건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그렇게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우울감을 잊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살로 추정되는 소녀 세진(노정의)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세진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본다. 세진의 아버지와 오빠의 범죄로 인해 가정은 파탄이 난다. 세진은 증인 보호란 명목 하에 섬에 고립돼 버린다. CCTV가 여기저기 설치된 집에서 감시를 받으며 생활하는 세진의 얼굴은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어도 악몽을 꿔 식은땀을 흘리면서 깬다. 현수가 겪었던 상황을 세진도 똑같이 겪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정황이 자살이라는 결론으로 가고 있음에도 현수는 작은 가능성 하나라도 짚어 보고 넘어가려 한다. 세진과 연관된 경찰, 마을 사람들, 가족을 모두 한 번씩 만나 보고 나서야 결론으로 한 발 나아가는 현수의 모습에서 사건 해결에 대한 의지 못지않게 삶의 의지 또한 느껴진다. 

절망의 끝, 자살로 향하는 인물의 심리를 세심히 담다
 
 영화 <내가 죽던 날> 장면

영화 <내가 죽던 날>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는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의 걸음 걸음을 세심하게 따라간다. 세진에게 찾아온 절망과 그로 인해 고립되어 버린 첫 번째 과정 뒤에는 혼자 그 고통을 감내하는 두 번째 과정이 이어진다. 그리고 세 번째로 주변에 소통이 가능한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은 위로의 말을 던지지만 몇 번 그런 상황이 반복된 이후에는 무뎌진다. 영화는 극단적인 기로에 서 있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줘야 한다는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아주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고 해도 적어도 주변에 그를 지지하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하나 정도는 있기 마련이다. 영화 <내가 죽던 날>에도 그런 존재가 등장한다. 현수의 친구 민정(김선영)은 끊임없이 현수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는다. 그의 걱정이 당장 현수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민정은 끝까지 현수의 손을 놓지 않는다. 

세진 옆에도 그를 돕는 인물이 있다. 바로 세진이 머물던 섬의 집주인인 순천댁(이정은)이다. 그는 어떤 과거로 인해 말을 못 하는 인물이지만 몸짓과 글씨로 세진에게 도움을 주려 노력한다. 느리지만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종이에 쓰는 그는 절망의 늪에 빠진 세진을 꺼내주려 노력하는 인물이다. 현수에게 민정이라는 친구가 있었던 것처럼, 세진에게도 순천댁이 그런 존재가 된다. 

현수는 세진의 마지막 여정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어떤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세진에게도 그를 걱정해주고 지지해주는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수는 그 속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하고 자신의 삶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지고 가려고 마음을 다잡는다. 

영화 전반에 세진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가 깔려있다. 하지만 그것이 주요 내용이 되기보다는 그 미스터리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적이고 드라마적인 요소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극단적 상황에 놓인 이들이 겪는 심리적 혼란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우리가 누굴 지켜야 할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알려준다. 

세 배우가 보여주는 훌륭한 앙상블과 연기
 
 영화 <내가 죽던 날> 장면

영화 <내가 죽던 날>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드라마를 더욱 강화시키는 건, 배우 김혜수와 이정은, 노정의가 보여주는 훌륭한 연기다. 우울한 상황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현수를 연기한 배우 김혜수는 깊은 절망을 담은 듯한 표정과 몸짓으로 진지하게 사건을 대하는 경찰을 잘 표현했다.

순천댁 역의 이정은은 말없이 몸짓과 표정만으로 긴장과 걱정을 담은 따뜻한 인물을 훌륭하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세진 역을 맡은 노정의는 절망 속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인물을 여린 모습으로 묘사해 눈길을 끈다.  

결국 영화 <내가 죽던 날>은 한 섬에서 벌어진 사건을 바탕으로 절망 속에 있던 현수, 세진, 순천댁을 하나의 지점으로 불러낸다. 절망에서 자살까지 우울하게만 보이는 상황에 갇혀 있던 인물들은 서로를 만나 대화하면서 희망과 연대의 어떤 지점을 찾아내고야 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내가 죽던 날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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