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021 V리그 남자부는 시즌 초반 '케이타 열풍'이 거세다. KB손해보험 스타즈의 새 외국인 선수 노우모리 케이타는 시즌 개막 후 5경기에서 203득점과 공격성공률 56.02%, 세트당 0.59개의 서브득점으로 득점 1위, 공격성공률과 서브 부문에서는 2위를 달리고 있다. 케이타의 엄청난 활약 덕분에 이경수와 김요한이 활약하던 2010-2011 시즌을 끝으로 봄 배구에 진출하지 못했던 KB손해보험은 5전 전승으로 쾌조의 출발을 보이고 있다.

'케이타 열풍'에 다소 가려 있긴 하지만 OK금융그룹 읏맨의 초반 상승세도 대단히 무섭다. V리그의 '생존왕' 펠리페 알톤 반데로가 공격을 이끄는 가운데 최근 몇 시즌 동안 부상으로 제 몫을 하지 못했던 '토종 에이스' 송명근도 화려하게 부활했다. 여기에 FA로 영입한 베테랑 센터 진상헌이 시즌 초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블로킹 1위(세트당 1.15개)를 달리면서 OK금융그룹의 무패행진을 견인하고 있다.

하지만 해가 환히 비추는 곳 이면에는 그늘이 존재하는 법. KB손해보험과 OK금융그룹이 나란히 5연승으로 시즌을 시작한 반면에 컵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이번 시즌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올랐던 한국전력 빅스톰은 1라운드를 6전전패로 마감했다. FA 대어 박철우와 205cm의 외국인 선수 카일 러셀, 그리고 뛰어난 신인 임성진이 가세했지만 전력보강 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V리그에 자리 잡지 못한 '공기업' 한국전력의 한계
 
 한국전력은 서재덕이 활약하던 시기에만 세 차례 봄 배구를 경험했다.

한국전력은 서재덕이 활약하던 시기에만 세 차례 봄 배구를 경험했다. ⓒ 한국배구연맹

 
한국배구연맹은 지난 2005년 드디어 꿈에 그리던 프로 출범에 성공했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남자부 4개, 여자부 5개에 불과한 부족한 팀 숫자가 가장 큰 문제였다. 한국배구연맹은 적은 팀 숫자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자부에서 한국전력과 상무를 아마추어 초청팀 자격으로 리그에 참가시켰다. 공기업으로 프로전환을 거부했던 한국전력이 V리그에 발을 들여 놓은 계기였다.

하지만 가뜩이나 약한 전력에 외국인 선수까지 없었던 한국전력은 매 시즌 상무와 최하위를 다투며 프로팀들의 승점 자판기 노릇 밖에 하지 못했다. 특히 2008-2009 시즌에는 개막 후 25연패라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던 2008년 국가대표 거포 문성민(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이 프로에 진출할 나이가 되자 한국전력은 준프로 구단으로 전환하면서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비록 문성민은 한국전력 입단을 거부하며 해외로 진출했고 결국 트레이드를 통해 현대캐피탈로 이적했지만 한국전력은 문성민이 남긴 유산으로 전력을 재정비했다. 특히 2011-2012 시즌에는 외국인 선수 안젤코 추크와 대형 신인 서재덕(사회복무요원)의 활약에 힘입어 프로 출범 후 처음으로 봄 배구에 진출하기도 했다(물론 같은 해 승부조작 파문에 한국전력 선수 8명이 연루되면서 창단 첫 봄 배구 진출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진 못했다).

2013년 '리틀 신진식'으로 불리던 전광인이 가세한 한국전력은 미타르 쥬리치가 활약한 2014-2015 시즌과 아르파드 바로티가 활약한 2016-2017 시즌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하며 간간이 봄 배구에 얼굴을 비췄다. 한국전력은 2017년 FA시장에서 최고 대어로 떠오른 서재덕을 예상을 깨고 연봉 4억3000만 원에 잔류시키면서 전력유지에 힘썼다. 

하지만 한국전력은 2017-2018 시즌이 끝난 후 FA 자격을 얻은 또 한 명의 대어 전광인과의 협상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전광인은 연봉 5억2000만원을 제시한 현대캐피탈로 이적했다. 팀을 지탱하던 양 날개 중 한 쪽을 잃고 휘청인 한국전력은 지난 두 시즌 동안 1할대 승률에 머물며 연속 최하위에 자리했다. 이는 아마추어 초청팀이던 시절과 비교해도 크게 다를 게 없는 성적이었다.

FA 2명이나 영입했지만... 리시브 흔들리며 1라운드 전패
 
 한국전력의 믿음직한 공격수 러셀은 서브리시브를 할 때는 급격히 작아진다.

한국전력의 믿음직한 공격수 러셀은 서브리시브를 할 때는 급격히 작아진다. ⓒ 한국배구연맹

 
사실 공기업인 한국전력은 FA시장이나 외국인 선수 선발 등에서 프로구단과 경쟁이 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항상 순위 싸움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즌이 거듭될수록 프로와 아마추어의 격차가 커지면서 2015년의 나경복(우리카드 위비) 정도를 제외하면 리그에 큰 영향을 끼친 대형 신인도 등장하지 않았다. 최근 V리그에 고졸 신인이나 대학과정을 마치지 않은 '얼리 드래프트' 선수들이 점점 늘고 있는 이유다.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며 투자의 중요성을 느낀 한국전력은 FA시장에서 남자부 최초로 5000득점을 돌파한 베테랑 공격수 박철우를 총액 7억 원에 영입했다. 여기에 내부 FA였던 오재성 리베로를 연봉 3억 원에 잔류시켰고 윙스파이커 이시몬과도 1억3000만 원에 계약했다.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던 외국인 선수 러셀도 컵대회에서 MVP에 선정되며 이번 시즌 활약을 기대케 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본 결과 한국전력은 1라운드 6경기에서 전패를 당하며 매우 실망스런 출발을 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러셀이 득점 5위(142점),박철우가 득점 7위(120점)를 달리며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팀 내 득점 3위가 21득점의 센터 안요한일 정도로 공격이 좌우쌍포에게 집중돼 있다. 케이타만큼 압도적인 위력을 보여주는 공격수가 없다면 단순한 공격패턴은 상대 블로킹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윙스파이커로 출전하고 있는 외국인 선수 러셀의 리시브 효율은 심각한 수준이다. 러셀은 이번 시즌 공격 성공률(46.77%)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21.36%의 리시브 효율에 그치며 김명관 세터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러셀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면 박철우가 중앙으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는데 이는 가뜩이나 7개 구단 최하위의 공격성공률(47.67%)을 기록 중인 한국전력의 공격을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여자부의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는 박정아의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임명옥 리베로와 문정원에게 서브리시브를 전담시키는 '2인 리시브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시속 120km를 넘나드는 속도의 강한 서브가 날아드는 남자부에서 2명에게 리시브를 맡기는 건 무모한 일이다. 결국 리시브가 안정되고 러셀과 박철우에게 집중된 공격을 다분화하지 않으면 이번 시즌에도 한국전력의 도약은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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