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 <마틴 에던>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마틴 에덴> 포스터

<마틴 에덴> 포스터 ⓒ 알토미디어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국내에 소개된 <마틴 에덴>은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 지난 10년간 베스트 영화 중 한 편"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극찬으로 시네필의 관심을 모았다.

미국 소설가 잭 런던이 자신의 자전적인 삶을 소재로 삼아 쓴 소설의 배경을 이탈리아로 바꿔 각색한 이 작품은 글로 세상과 맞서 싸운 한 남자의 패기와 우울을 다룬다.

20세기 중반 이탈리아 나폴리. 선박 노동자 마틴 에덴은 누구나 선망하는 잘생긴 얼굴에 좋은 체구를 지니고 있다. 주먹 하나로 부둣가를 제패한 그는 어느 날 상류층 여자 엘레나를 만나게 된다. 엘레나의 피아노 연주에 감탄하고, 보들레르의 시집을 받아 집에 돌아온 그의 마음에는 욕구가 피어난다.

이 욕구에는 두 가지 감정이 담겨 있다. 첫째는 엘레나에 대한 사랑이고, 둘째는 예술에 대한 갈증이다. 마틴은 엘레나에게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돈을 털어 책을 산다. 자신을 가르쳐 달라는 마틴의 말에 엘레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하라고 말한다. 과거 나이든 노인과 함께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받은 기억이 있는 마틴은 자신이 그에게 보냈던 조소를 다시 돌려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홀로 글을 써 보기로 결심한다. 전업 작가를 선언한 그는 열심히 글을 쓰지만 투고 작품은 매번 퇴짜를 맞는다.

문학적 감수성과 재능이 충분한 그의 작품이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 내용이 주는 감정 때문이다. 어둡고 불행한 삶을 살아온 마틴은 그 슬픔을 작품에 투영한다. 당시 문학은 사회의 모습을 담기 보다는 판타지를 추구했다. 행복과 교훈, 해피엔딩이 아닌 우울과 절망을 이야기한 작품은 평단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좌절을 겪던 마틴은 작가인 러스 브리센든을 만난다. 이 만남은 마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영화에서 마틴이 가장 행복해 한 순간은 두 번이다. 엘레나에게 마음을 고백했을 때와 처음 잡지에 소설이 실릴 때다. 특히 처음 소설 원고료를 받았을 때, 하숙집 아주머니와 그 아이들을 안고 기뻐하는 그의 얼굴은 감동으로 인해 상기돼 있다. 사회의 규칙에 구속받지 않으며 자신의 글로 성공을 갈구하는 마틴의 모습에는 로망이 담겨 있다. 펜을 통해 세상과 싸우겠다는 그의 다짐은 가슴 뛰는 순간을 보여준다.
 
 <마틴 에덴> 스틸컷

<마틴 에덴> 스틸컷 ⓒ 알토미디어

 
반면 그가 가장 불행해진 순간은 작가로 인기를 얻었을 때다. 러스는 엘레나와 정식으로 교제를 하고 싶어 하는 마틴의 소원을 이뤄주고자 한다. 마틴이 유명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 문학계의 흐름을 바꿔야 했다. 기존 사상을 뒤엎는 새로운 사상, 당시 노동자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사회주의 사상의 선봉장으로 마틴을 설정한 것이다. 마틴의 소설에는 절망스런 현실이 담겨 있고, 이 현실은 사회주의자인 노동계층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순간 자유로운 영혼이던 마틴은 무너진다. 그는 외적으로 강인해 보이는 인물이지만 내면엔 여린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작품은 흑백의 화면을 통해 마틴의 과거와 환상을 보여준다. 그는 누나와 함께 춤을 추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행복을 느낀다. 이 소박한 행복에 만족하는 청년은 어깨에 부담이 쌓이자 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난파하는 환상을 본다. 

낭만을 품은 예술가가 되는 것, 그것이 세상과 싸움에 나선 마틴의 무기였다. 초등학교도 졸업 못한 그는 문학가를 꿈꿨고, 부잣집 아가씨인 엘레나와 사랑을 나눴다. 돈을 버는 대신 꿈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유명해진 순간 그 날개가 묶이고 만다. 그의 작품은 사회주의의 선전에 이용되고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사회주의의 반대편에 선 자본계층인 엘레나와의 관계 역시 최악으로 치닫는다.

두 사람의 사랑이 슬픈 건 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기 때문이다. 신분의 벽보다 더 높은 생각의 벽은 거대한 산과 다름없다. 엘레나가 마틴에게 초등학교로 돌아가 교육을 다시 받으라고 한 건 자신과 같은 사람이 되길 원해서다. 하지만 마틴과 엘레나는 같을 수 없다. 엘레나는 마틴의 동네에서 만난 밑바닥 인생의 모습에 염증과 공포를 느낀다.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 엘레나는 마틴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마틴 에덴> 스틸컷

<마틴 에덴> 스틸컷 ⓒ 알토미디어

 
마틴 역시 엘레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은 노동자를 동정과 경멸의 대상으로 여긴다. 파업이 지속되며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는 대립을 이룬다. 엘레나의 식사 자리에 초대된 마틴은 판사를 상대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만 무시당한다. 그들은 마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엘레나라는 판타지를 위해 현실을 떠난 청년은 고독에 빠지고 삶의 방향을 잃게 된다.

<마틴 에덴>은 자신의 신념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 글을 무기로 세상과 맞서 싸운 남자의 이야기다. 넘치는 에너지로 판타지를 이뤄내고자 노력하는 마틴의 모습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전반부와 원하던 대로 세상을 이겼지만,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슬픔에 빠지는 후반부가 조화를 이룬다. 강인함과 섬세함이란 두 무기를 동시에 휘두르는 힘이 인상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마틴 에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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