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020 미국프로농구(NBA) 우승을 차지한 LA레이커스 홈페이지

2019-2020 미국프로농구(NBA) 우승을 차지한 LA레이커스 홈페이지 ⓒ LA레이커스 홈페이지

 
1990년대와 2000년대 NBA를 즐겨 봤던 농구팬이라면 플레이오프나 파이널 같은 큰 경기에 유독 강했던 장신 포워드 로버트 오리를 기억할 것이다. 휴스턴 로키츠(1992~1996년)와 LA레이커스(1997~2003년), 샌 안토니오 스퍼스(2003~2008년) 등에서 활약한 오리는 현역 시절 3개 팀에서 무려 7번의 파이널 우승을 차지했다. 휴스턴과 레이커스, 샌 안토니오의 전성기에 모두 오리가 주축 멤버로 활약한 셈이다.

오리는 뛰어난 외곽슛과 건실한 수비를 앞세워 소속한 팀마다 우승반지를 수집했지만 실제로 팀을 이끄는 에이스로 파이널 우승을 차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휴스턴 시절엔 하킴 올라주원, 레이커스 시절엔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 샌 안토니오에서는 팀 던컨과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라는 주역들 사이에서 주로 외곽슛을 담당하는 조연, 또는 식스맨으로 나서는 것이 오리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2020년10월12일(이하 한국시각) 15년 전의 오리에 이어 또 다시 각기 다른 3개 팀에서 파이널 우승컵을 들어올린 선수가 탄생했다. 하지만 이 선수는 쟁쟁한 동료들을 만나 조연으로 우승반지를 수집한 것이 아닌 스스로 팀을 이끌며 자신이 속한 구단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북미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각기 다른 3개 구단에서 파이널 우승을 차지하며 파이널 MVP에 선정된 레이커스의 '킹' 르브론 제임스가 그 주인공이다.

마이애미-클리블랜드 거치며 3회 우승 차지한 제임스

'마이클 조던 이후 최고의 재능'. 매년 뛰어난 능력을 갖춘 대형신인이 등장할 때마다 지겹게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로 쓰리핏을 두 번이나 달성한 조던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진 신인은 나타난 적이 없다. 2003년에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 출신의 대형 유망주를 전체 1순위로 지명했다. 그리고 클리블랜드에 입성한 제임스는 자신을 향한 평가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나갔다.

제임스는 입단 첫 시즌에 올해의 신인, 입단 두 번째 시즌부터 올스타 개근, 입단 5시즌 만에 득점왕과 정규리그 MVP를 휩쓸며 NBA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제임스의 소속팀 클리블랜드는 NBA 최고의 슈퍼스타가 머물며 우승에 도전할 만큼 큰 도시가 아니었다. 제임스는 입단 4년째가 되던 2006-2007 시즌 클리블랜드를 파이널로 이끌었지만 파이널에서 샌 안토니오를 만나 한 경기도 잡지 못하고 4연패로 무너졌다.

2005-2006 시즌부터 2009-2010 시즌까지 5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도 파이널 우승에 실패한 제임스는 강한 동료의 필요성을 느꼈고 2010년 여름 마이애미 히트 이적을 단행했다. 클리블랜드 팬들은 제임스의 이적에 강한 배신감을 느꼈고 제임스의 유니폼을 불태우며 분노를 나타내는 강경한 팬도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 정도의 재능을 가진 선수가 전성기 구간에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 팀을 옮기는 것은 비난하기 힘든 일이다.

마이애미는 2003년 드래프트 동기인 제임스와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가 뭉치며 역대급 '빅3'를 구성했다. 제임스는 마이애미에서 활약하던 4시즌 동안 연속으로 파이널 무대를 밟았고 2011-2012 시즌 프로 데뷔 9시즌 만에 처음으로 파이널 우승을 경험했다. 제임스는 2012-2013 시즌에도 연속으로 파이널 우승을 차지했고 우승을 차지한 두 시즌 모두 마이애미의 파이널 MVP 주인공은 제임스였다.

2014년 클리블랜드로 돌아온 제임스는 자신이 없는 동안 외로운 에이스로 팀을 이끈 카이리 어빙(브루클린 네츠),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케빈 러브와 함께 또 다른 빅3를 구성했다. 제임스는 2017년 어빙이 보스턴 셀틱스로 이적하는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클리블랜드에서 다시 한 번 4시즌 연속 파이널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특히 2015-2016 시즌에는 파이널 우승과 함께 통산 3번째 파이널 MVP를 차지했다.

레이커스 이적 2시즌 만에 '파이널 우승 미션 클리어'

빌 러셀 시대의 보스턴 이후 처음으로 8연속 파이널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제임스는 '동부의 제왕'이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를 지우기 위해 2018년 여름 서부 컨퍼런스 도전을 선택했다. 4년 1억 5400만 달러의 대형계약을 통해 통산 파이널 16회 우승에 빛나는 레이커스의 골드&퍼플 유니폼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 영입에 온 신경을 쏟은 레이커스는 마이애미나 클리블랜드처럼 제임스의 조력자를 영입하는 데 실패했다.

클리블랜드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7-2018 시즌에도 전 경기에 출전해 경기당 평균 36.9분(1위)을 소화했던 제임스는 2018-2019 시즌 사타구니 부상으로 고전하면서 55경기 출전에 그쳤다. 레이커스 역시 82경기에서 37승45패, 서부 컨퍼런스 10위에 그치며 6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철치부심한 레이커스는 작년 여름 뉴올리언스 호네츠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현역 최고의 빅맨으로 불리는 앤서니 데이비스를 영입했다.

제임스와 데이비스로 이어지는 최강의 콤비에 포지션마다 두 선수의 구미에 딱 맞는 선수들을 배치한 레이커스는 52승19패로 서부 컨퍼런스 1번시드를 따내는데 성공했다. 만35세 시즌을 맞아 더욱 이타적인 선수가 된 제임스는 경기당 평균 10.2개의 어시스트로 생애 첫 어시스트 타이틀을 차지했다. 레이커스는 플레이오프에서도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휴스턴, 덴버 너기츠를 나란히 4승 1패로 꺾고 파이널에 진출했다.

레이커스는 파이널에서 동부 컨퍼런스 5번시드로 올라와 파이널에 진출한 '돌풍의 팀' 마이애미를 만났다. 레이커스는 마이애미의 젊은 선수들이 보여준 투지에 고전했지만 1, 2, 4, 6차전에서 평균 11.8점 차이로 승리하며 통산 17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6차전 트리플더블(28득점14리바운드10어시스트)을 포함해 파이널에서 29.8득점11.8리바운드8.5어시스트를 기록한 제임스는 통산 4번째 파이널 MVP에 선정됐다. 

NBA 역사상 4회 이상 파이널 MVP에 선정된 선수는 마이클 조던(6회)과 제임스 뿐이다. 하지만 제임스는 역대 최초로 각기 다른 3개 팀에서 파이널 MVP의 영광을 누린 선수다. 제임스는 데뷔 초기부터 농구팬들에게 꾸준히 호불호가 갈리던 슈퍼스타였다. 하지만 자신의 커리어에 쉽게 범접하기 힘든 대기록을 하나 더 추가한 제임스가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 되고 있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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