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스포츠에서 감독의 운명은 파리 목숨이라는 말이 있다. 성적에 대한 책임은 감독이 져야 할 몫이라는 게 당연한 상식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 감독을 선택한 책임은 바로 구단에게 있다. 한번 감독을 믿고 맡겼다면 최선의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고 존중하되, 성과가 좋든 나쁘든 결과에 대한 책임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현실은, 실패의 책임을 감독에게만 전가하여 소모품이나 희생양으로 삼는 경우가 더 많다.

최근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는 손혁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퇴 파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구단은 지난 8일 손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임했다고 발표했다. 여론은 구단의 발표를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손 감독은 작년 11월 장정석 감독의 후임으로 히어로즈의 지휘봉을 잡은지 불과 11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사임 당시 팀은 73승 58패 1무(승률 .557)의 성적으로 3위에 올라 있었다. 9월 이후 다소 부진하며 선두경쟁에서는 밀려나기는 했지만 가을야구 진출을 거의 확정짓고 플레이오프 직행티켓이 주어지는 2위 싸움이 한창이었다. 올시즌 처음 지휘봉을 잡은 초보 감독으로서는 결코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그것도 정규시즌 종료가 12경기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감독직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야구계와 언론의 반응은 대체로 히어로즈 운영진이 자진사임을 가장하여 손혁 감독을 사실상 경질시켰다고 보는 시각에 무게가 쏠렸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감독을 비롯하여 코칭스태프의 권위와 독립성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야구도 결국 사람이 하는 스포츠다. '데이터 야구'라는 명분을 내세워 감독조차도 수뇌부 입맛에 따라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일개 부속품 정도로 취급하면서 선수단의 기강이나 신뢰를 기대할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김인식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나 이순철 해설위원 등 감독직을 경험해 본 야구인들은 "자신있으면 본인(구단 수뇌부)들이 직접 감독을 해보라"며 히어로즈 구단의 파행적인 행보를 성토하기도 했다.

비슷한 사례는 올시즌 축구계에서도 벌어졌다.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전환한 K리그2 대전 하나시티즌은 지난 9월 8일 초대 사령탑이었던 황선홍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임을 발표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전은 황 감독이 물러날 당시 승점 30점으로 승강 PO진출권인 리그 3위에 올라 있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성적부진으로 인한 자진사임이었지만, 사실상 구단과의 갈등으로 인한 경질이나 다름없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대전은 황 감독의 후임으로 조민국 전력강화 실장을 감독대행에 임명했다. 그런데 조민국 대행은 불과 얼마전까지 대학축구 청주대 감독을 역임하다가 대전의 프런트로 부임한지 몇주 되지 않은 시점에 다시 사령탑을 겸임하게 됐다. 프로축구 무대는 2014년 울산 이후 무려 6년만이었고 2부리그나 승강 경쟁은 아예 처음이다.

섣부른 감독 교체로 상황은 더 '악화'

설상가상 히어로즈와 대전 모두 섣부른 감독교체 이후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 2위싸움에 갈길 바쁜 히어로즈는 지난주 열린 최하위 한화와의 주말 3연전에서 1승 2패로 루징시리즈를 기록하며 오히려 4위로 추락했다. 5위 두산에게도 1게임차이로 추격을 당하고 있다.

히어로즈는 다음주 가을야구 경쟁팀인 KT-두산과의 6연전을 앞두고 에릭 요키시의 등판 로테이션을 조정하는 등 변칙적인 용병술을 단행했다. 이번 시리즈 전까지 상대전적 11승 4패의 우위를 점하고 있던 한화를 다소 만만히 보고 내린 선택이었지만, 가뜩이나 1승이 아쉬운 상황에서 오히려 상대 타선의 기만 살려주며 팀분위기를 더 꺾는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현장 경험이 없는 김창현 대행과 데이터 만능주의의 한계를 보여준 장면이다.

조민국 대행이 이끄는 대전은 최근 5경기에서 고작 1승 4패에 그쳤다. 황선홍 감독이 사임할때만 해도 1위 제주 유나이티드와 승점 5점차에 불과했는데, 한달 사이에 수원FC-제주와 어느덧 15점차까지 벌어졌다. 이 기간 대전은 상위권 진입의 분수령이었던 상위 1-3위팀과의 맞대결에서 모조리 패한 것이 뼈아팠다.

대전은 이제 승점이 같은 경남FC에 다득점에서 밀리며 5위까지 추락하여 1부리그 직행은 고사하고 4강까지 주어지는 승강 PO진출조차 장담할 수 없는 절박한 위기에 몰렸다. 수뇌부의 조급증과 독선이 팀을 어떻게 망가뜨릴수 있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스포츠계에서는 프런트 야구, 프런트 축구 같은 용어들이 유행하고 있다. 현장의 경험과 권위에 의존하던 과거에 비하여 합리적인 데이터와 체계화된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구단 운영이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또다른 핵심은 '분업화'에 따른 상호 존중과 공생이다. 현장과 프런트는 동등한 관계이며 각자 고유의 영역이 있다.

무엇보다 프로 감독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는 야구인, 축구인들이라면 수십년 동안 한 분야에서 평생을 바친 '전문가'라는 이야기다. 언제부터인가 프로 감독이라는 자리가 구단 운영진의 독선을 무마해주는 화살받이로만 전락하는 듯 하여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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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혁 황선홍 히어로즈 대전하나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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