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성공은 불행이라고 했던가. 장 마셸 바스키아는 1988년 8월에 28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활동 시기에 부와 명성을 얻었고 사후에도 그의 작품은 여전히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작품이 명성을 얻고 나면 작가에 대한 관심 또한 증가한다. 유명세는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는 창작자를 속박하는 족쇄가 되기도 하며 그로 인해 정신병을 앓거나 삶이 황폐해지기도 한다. 마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 원하는 능력을 갖게 된 파우스트의 고뇌를 보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바스키아 또한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결국 약물에 의존하다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난다.
 
 
 바스키아 스틸컷

바스키아 스틸컷 ⓒ 홍기표


 
영화 <바스키아>는 그의 작품 세계보다는 혼탁했던 삶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공원에 널빤지를 깔고 노숙한다.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며 위대한 화가를 꿈꾼다. 그러던 날 그는 값싼 가격의 아침 메뉴가 있던 허름한 브런치 카페에 들어가고 친절하고 이쁜 웨이트리스에게 반한다. 그는 소스를 테이블 위에 뿌리고 그녀를 그려 환심을 산다.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동거를 시작한다.

그의 여인 또한 화가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난  바스키아의 재능을 부러워하며 질투한다. 그러다 바스키아의 성공은 예고 없이 순식간에 찾아왔고, 그녀는 달라진 연인을 보며 더 이상 자신 곁에 둘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바스키아의 순수함을 대변하는 듯했고 그녀와의 멀어짐은 그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듯 불안했다.

갑자기 찾아온 성공

바스키아가 거리에 그린 그림을 본 유명한 비평가이자 미술 코디네이터 르네가 바스키아를 찾아온다. 그의 재능을 한 번에 알아본 그는 자신의 이력을 드러내며 그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 줄 수 있다고 함께 활동할 것을 제안하고 작업실을 마련해준다. 작업실을 가지게 된 바스키아는 그림에 열중하고 르네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다양한 콜렉터들에게 그의 작품을 소개를 한다. 그는 순식간에 뉴욕에서 제일 잘 나가는 아티스트가 된다. 당대 가장 유명한 현대 미술가 엔디 워홀이 그에게 관심을 가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고 그 둘은 서로가 멘토가 되어 함께 활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힙합 아티스트 노트리어스 비아지(Notorious B.I.G)의 가사 'more money more problem'이라는 메시지처럼 다양한 유혹들이 그를 둘러싸면서 갈등과 다툼이 이어지자 그는 점점 지쳐간다. 더 좋은 환경과 활동을 약속하는 미술업계 전문가들의 달콤한 몸짓과 그럴수록 점점 멀어져 가는 친구들과의 관계는 그를 외딴섬에 가둔 것 같은 상황을 만들어갔다. 미디어는 그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지만 그는 그런 세상의 숱한 질문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내 작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음악가에게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물어보세요"라고 그는 비웃음과 귀찮음으로 자리를 피하기만 할 뿐이었다.  
 바스키아 스틸컷

바스키아 스틸컷 ⓒ 홍기표


 
예술에 박제된 삶

아이러니하게도 바스키아는 유명해질수록 진짜 모습을 점점 잃어갔다. 세상은 그의 실체보다 그의 명성에만 반응했다. 그가 술과 약에 취해 비틀거리며 거리를 걷던 중 불량배들이 철문에 그려진 자신의 그림을 떼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그는 다가가 그 그림에 자신의 서명을 하려고 했지만 불량배들은 그를 내동댕이친다. 그는 자신이 바로 이 그림의 그린 세이모(SAMO) 출신의 바스키아라고, 서명이 있으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절규하듯 외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획득한 전리품을 뺏으려 드는 취객으로 치부하고 밀어버린다.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왜 그림을 그렸는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명성은 돈이 되었고 돈이 되는 것은 거래 상품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럴싸하게 포장된 작품들은 축축한 빈민가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진 그의 영혼을 홍보수단으로만 활용할 뿐이었다.

이후 그는 낙하했다. 그를 애타게 찾던 업계 전문가들은 새로운 자극을 찾으면서 그를 전과 다르게 냉대하기 시작했다. 한때 삶의 동반자였던 앤디 워홀의 죽음은 그를 추락의 끝으로 떨어지게 했다.

'옛날에 성에 갇힌 왕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구해달라는 신호로 왕관을 쓴 채로 쇠창살에 머리를 부딪혔는데 그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감탄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소리가 무엇 때문에 나는 소리인지는 몰랐고 그저 그 소리에만 관심을 쏟을 뿐이었다. 그렇게 왕자는 결국 성에서 나오지 못했다' - <바스키아> 대사 중

영화는 바스키아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혼자서 읊조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는 하와이에 가서 음악이나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하고 다녔다. 그를 대표하는 그림은 왕관을 쓴 공룡이다. 우리는 예술이 된 그의 삶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여전히 그의 작품은 전 세계를 누비고 있고, 그의 이름으로 된 인스타그램 계정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바스키아 인스타그램 캡쳐

바스키아 인스타그램 캡쳐 ⓒ 홍기표


 
 
바스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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