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팅하는 손흥민.

슈팅하는 손흥민. ⓒ 로이터/연합뉴스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은 올시즌 좋은 페이스를 이어가고 있다. 토트넘은 2020-21시즌 EPL 개막전에서 에버턴에 0-1로 패하며 다소 불안하게 출발했으나 이후 7경기 연속 무패(6승1무)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빡빡한 일정으로 인한 체력적 부담을 딛고 유로파리그 조별라운드 진출을 확정지었고 카라바오컵(리그컵)에서는 첼시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8강에 올랐으며, A매치 기간을 앞두고 펼쳐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EPL 원정 경기에서는 무려 6-1의 대승을 거두며 화제가 됐다.

손흥민의 활약도 눈부시다. 올시즌 컵 대회 포함 6경기 7골 3도움으로 벌써 두자릿수 공격포인트를 달성했다. 리그 2라운드 사우샘프턴전에서는 개인 통산 최초로 '포트트릭(4골)'을 달성하는가 하면, 맨유전에서는 10경기 연속 무득점 징크스를 극복하고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절정의 컨디션을 과시했다. 어느덧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선수를 넘어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서 손색이 없는 활약이다.

최근 햄스트링 부상으로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던 손흥민은 예상을 깨고 맨유전에서 일주일 만에 복귀하며 놀라운 회복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6년째 같이 호흡을 맞추고 있는 해리 케인과의 시너지효과도 물이 올랐다는 평가다. 현재 프리미어리그 득점 공동선두(6골)에 올라있는 손흥민은 올해 역대 최고의 시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높다.

2015년부터 동행을 시작한 이래 함께 승승장구해온 손흥민과 토트넘에게 유일한 아쉬움은 아직 우승트로피가 없다는 정도다. 손흥민은 프로 데뷔 이래 독일 함부르크와 레버쿠젠을 거쳐 토트넘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대표팀까지 범위를 넓혀도 연령대별 대회였던 2018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정도가 유일하다. 토트넘 역시 이영표가 활약했던 2007-08시즌 리그컵 대회 우승 이후 12년째 무관이고, 1부리그로 국한하면 1961년 마지막 우승 이후 무려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올시즌은 토트넘이 모처럼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는 적기라는 평가다. 토트넘은 올해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하여 유로파리그-카라바오컵-FA컵 등에 도전한다. 유럽최고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놓친 것이 아쉽지만 대신 조제 모리뉴 감독 2년차를 맞이하여 몇 년 만에 알찬 전력보강에 성공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그동안 적극적인 투자에 인색한 짠돌이 구단이라는 오명을 안았던 토트넘이지만, 올시즌에는 효율적인 선수영입으로 각 포지션에 '더블 스쿼드'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앙 미드필드에 에밀 호이비에르, 풀백에 맷 도허티와 세르히오 레길론을 영입했으며,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 조 하트를 자유 계약으로 데려오며 골문까지 보강했다. 여기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돌아온 가레스 베일, 백업 스트라이커 카를로스 비니시우스까지 영입하며 기존의 케인-손흥민과 함께 두터운 공격진을 구축하게 됐다.

영국 현지에서도 토트넘의 전력보강에 대하여 좋은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베일의 가세로 토트넘은 손흥민-케인-베일로 이어지는 이른바 'K·B·S' 조합이라는 막강한 스리톱 공격 라인을 구축하게 됐다. 올시즌 EPL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리버풀(살라-피르미누-마네)이나 맨체스터시티(아게로-제주스-스털링-데브라이너) 등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또한 새로운 선수들의 영입으로 인한 자극은 기존 선수들에게도 각성 효과를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모리뉴 감독 체제에서 부진한 경기력으로 방출 위협에 시달리던 중앙 미드필더 탕귀 은돔벨레와 풀백 세르주 오리에, 윙어 에릭 라멜라 등이 최근 부쩍 향상된 경기력을 보여주며 주전경쟁에 불을 붙인 것이 대표적이다. 모리뉴 감독과의 불화로 이적설이 거론되던 델레 알리도 우여곡절 끝에 일단 팀에 잔류했다. 첼시-레알 마드리드-인터밀란 등 부임 2년차에 항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던 모리뉴 감독이 과거 맡았던 팀들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두터운 스쿼드가 완성됐다.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선 흔히 '손·차·박(손흥민-차범근-박지성)' 대전으로 불리우며 한국축구 역대 최고선수를 가리는 논쟁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다. 개인 기록 면에서는 이미 차범근과 박지성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는 손흥민이 유일하게 선배들보다 부족한 부분이 바로 우승 커리어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서 UEFA컵(유로파리그의 전신)을 2번이나 우승한 바 있고, 박지성은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최전성기를 함께하며 정규리그와 챔피언스리그까지 무수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서 비교적 전력이 떨어지는 중위권 팀에서 이룬 성과였고 너무 오래된 과거의 이야기라 영상화된 자료가 부족하여 현대의 팬들이 그 위상을 체감하는게 한계가 있다.  박지성은 팀기여도 높았지만 주전과 벤치를 오가는 로테이션 멤버로서 화려한 기록이나 주연으로서의 위상보다는 '조연'의 이미지에 가깝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해외축구의 레전드 위상을 돌아보면 아무리 뛰어난 개인기록을 남긴 선수라고 할지라도 우승트로피가 없다면 후대의 평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반감되는 경우가 많다. 토트넘은 손흥민이 입단한 2010년대 중반이후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신흥 강호로 부상했지만, 우승에 익숙한 전통의 명문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손흥민이 전성기에 우승할 수 있는 빅클럽으로 이적해야한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아스널 시절 탁월한 개인성적에도 소속팀의 한계로 우승과는 인연이 없다가 이적 직후 정상에 올랐던 로빈 판 페르시나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손흥민은 토트넘 이적 이후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정상급 선수치고는 유난히 이적설이 드문 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손흥민이 토트넘을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할만큼 매력적인 빅클럽의 제안이 없었다. 영국이나 스페인 등 유럽 현지언론에서도 이를 두고 '손흥민은 과소평가받은 선수'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손흥민이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월드클래스의 반열에 오른 것은 토트넘 입단 이후인 20대 중반부터다. 독일 시절에도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분데스리가를 제외하고 유럽 빅리그의 우승권 클럽에서 인지도가 높은 정도는 아니였다. 손흥민 이전에 유럽 빅리그에서 성공한 한국인 공격수의 사례가 드물기도 했고, 병역문제 해결이 늦어지며 장기적인 미래가 불투명했다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손흥민은 26세가 된 2018년에야 아시안게임을 통하여 병역을 합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때는 이미 토트넘과 장기계약으로 묶여있는 시점이다.

2020년 현재 손흥민은 28세이고, 한국 나이로는 몇 달 후면 서른이 된다. 축구선수로서는 완연한 전성기에 돌입한 시점이지만 젊은 유망주로서의 시기는 한참 지났다. 지금 시점에서 프리미어리그는 유럽 최고의 리그이고, 손흥민이 이적한다면 토트넘보다 우승권에 근접했다고 할만한 빅클럽이어야하는데 그만한 위상을 지닌 구단은 EPL을 떠나 유럽에서도 현재 몇 되지 않는다.

앞으로 손흥민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는 '토트넘의 레전드'로 남으면서 전성기가 지나기 전까지 우승트로피에 도전하는 것이다. 토트넘이 최근 몇 년간을 통틀어 최상의 전력을 갖췄으며 모리뉴도 단기간에 전력을 극대화하여 우승트로피 수집에 최적화된 유형의 지도자다. 훗날 손흥민의 축구인생을 거론할 때 올시즌이 커리어 평가의 중대한 분기점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손흥민이 개인 최고의 기록을 남기며 기왕이면 올시즌 프리미어리그나 유로파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다면 명실상부하게 차범근이나 박지성의 아성을 진정 뛰어넘었다고 평가하기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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