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벤투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과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U-23(올림픽대표)팀이 9일과 12일에 걸쳐 두 차례의 '스페셜매치'를 치른다. 코로나19 여파로 정상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던 대표팀이 오랜만에 소집된 무대다. 벤투호는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김학범호는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우승 이후 한번도 소집되지 못했다.

외부 팀들과의 정상적인 평가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벤투와 김학범 감독 모두 선수 점검과 팀 전력 유지를 위해 이번 대결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8월 31일과 9월 8일로 예정되었던 경기일정이 한 차례 연기 끝에 어렵게 성사됐다. 양팀 모두 해외파가 합류하지 못하는 사정상, 국내파로만 선수명단을 꾸리게 되면서 일종의 'K리그 올스타전'같은 의미도 지니게 됐다.

성인대표팀과 올림픽팀이 단순히 연습이 아닌 공식 경기 형식으로 맞붙는 것은 무려 24년 만이다. 1996년 당시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이 이끌던 23세 이하 대표팀은 최종예선에서 일본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애틀란타 올림픽 본선진출을 확정지은 상태였다. 당시 최용수-윤정환 등 떠오르는 스타들을 앞세운 올림픽대표팀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높아지자 축구협회는 경기력 점검 겸 이벤트 차원에서 성인대표팀과의 친선경기를 추진했다.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팀과 성인대표팀의 맞대결에서는 수만 관중이 운집하며 대표팀의 높은 인기를 실감케했으며, 이례적으로 당시 김영삼 대통령까지 경기를 관람하러와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인팀과 올림픽팀의 친선전 아이디어를 축구협회에 처음 제안한 사람이 김 대통령이었다는 일화도 있었다. 당시 경기에서는 A대표팀이 김도훈과 황선홍의 연속골에 힘입어 2-1로 승리하며 형님의 자존심을 지켰다.

24년 만에 다시 성사된 A팀과 U23팀의 맞대결은 비록 코로나 사태로 인한 돌발 변수가 만들어 낸 이벤트이기는 하지만, 양팀 모두에게 충분히 윈윈이 될수 있는 기회다. 이번 경기는 대표팀이 공식 엠블럼과 유니폼 교체 이후 처음으로 공식무대에서 선보이는 기회이자, 한글날을 맞아 선수와 코칭스태프 모두 특별히 한글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나설 예정이다. 양팀은 평가전이라고 해도 양보없이 최선을 다하는 경기력과 공격적인 축구로 승리에 대한 선의의 경쟁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중요한 관전포인트는 승패 결과보다는 역시 '새 얼굴 발굴'이라는 의미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그간 해외파에 밀려 주목받을 기회가 적었던 K리거들의 경쟁력을 증명하고, 대표팀 인재풀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원두재(울산)는 이번 스페셜 매치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중 하나로 꼽힌다. 벤투와 김학범 감독은 이번 명단에서 최고의 선수를 데려라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펼쳤고, 논의 끝에 올림픽대표 선수중 일부를 A대표팀에서 데려가는 것으로 조율했다. U-23 챔피언십 MVP이자 김학범호의 핵심이었던 원두재와 이동준(부산) 이동경(울산)이 벤투호에 승선하게 됐다.

원두재는 한국축구에서 '제 2의 기성용 혹은 장현수'가 될만한 재목으로 꼽힌다. 원두재는 1m87의 장신에 넓은 시야와 준수한 패싱력을 갖췄다는 점에서는 기성용,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센터백까지 소화할 수 있는 멀티성과 리더십에서는 장현수를 연상시킨다.

원두재는 '스타군단'으로 꼽히는 울산에서도 주전으로 자리잡으며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가장 선호하는 포지션은 역시 4-1-4-1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지만, 스리백을 가동하는 상황에서는 센터백이나 포어 리베로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경험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아직 기성용에 미치지는 못해도, 젊은 선수치고는 경기를 운영하는 시야와 침착성이 우수하고 공간을 찾아들어가는 축구센스가 뛰어나 성장 가능성이 높게 평가된다.

빌드업과 발기술을 중시하는 벤투 감독은 기성용의 대표팀 은퇴와 장현수의 영구제명 이후 확실한 대체자를 찾지 못했다. 그나마 센터백 라인에는 김민재와 김영권이라는 안정된 조합이 있는 반면, 벤투호 빌드업의 핵심인 3선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는 황인범, 백승호, 정우영, 주세종, 이강인 등 수많은 자원을 기용하고도 아직 확실한 합격점을 받은 선수가 나오지 않았다.

굳이 이번 스페셜 매치가 아니라 해외파가 모두 합류하는 월드컵 예선이었다고 해도 원두재는 언젠가는 벤투호에 승선해야 할 선수로 거론된 이유다. 벤투 감독이 원두재를 어떤 포지션에 기용하느냐에 따라 A팀은 스리백에서 역삼각형 미드필드 라인까지 한결 다양하고 실험적인 전술운용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공격수 발굴은 양팀 모두에게 있어서 숙제로 꼽힌다. K리그가 외국인 선수 의존도와 토종 스트라이커 기근 현상에 허덕이면서 양대 대표팀을 합쳐 10골 이상을 기록한 국내 선수가 송민규와 한교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은 엄밀히 말해 측면 공격수에 가깝지 정통 스트라이커는 아니다. 24년 전 첫 스페셜 매치 당시 황선홍-최용수-김도훈-우성용 등 양팀 모두 확실한 대형 스트라이커들이 넘쳐나던 시절과 비교하면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대신 양팀 모두 풍부한 2선 공격수 자원들을 활용하여 빠른 공수전환과 빌드업, 세트피스를 통한 득점루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게 된 송민규는 이번 김학범호 소집 명단 가운데 가장 주목할만한 선수로 꼽힌다. 그동안 오세훈 외에는 이렇다할 공격수가 없었던 김학범호로서는 폭발적인 스피드는 물론이고 문전에서의 침착성과 탈압박능력을 갖춘 송민규의 성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 윙어임에도 준수한 신장과 위치선정 능력을 활용하여 리그에서 헤더로만 5골을 기록하는 등 제공권에도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선수라는 점에서 활용가치가 더 높다. 송민규가 이번 스페셜 매치에서 얼마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1년 뒤로 연기된 도쿄올림픽 본선을 앞두고 김학범호의 주전경쟁을 뒤흔들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대결은 양팀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철학의 장단점을 직접적으로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할 전망이다. 벤투 감독과 김학범 감독은 점유율과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큰 틀에서는 비슷하지만,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과 리더십의 색깔은 각기 다르다. 전세계 축구강국들을 봐도 성인대표팀은 연령대별 대표팀과는 추구하는 축구스타일이나 전술에서 연속성을 중요시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해서도 올림픽팀 선수들이 순조롭게 성장하여 성인대표팀으로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가장 이상적이다. 이번 스페셜매치는 단순히 형님과 동생 간의 경쟁이라는 측면을 넘어서 함께 발전해야 할 동반자로서 대표팀이 공통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공감하며, 서로에게 '건강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귀중한 기회로서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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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 김학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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