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봉을 내려놓은 손혁 키움 감독

지휘봉을 내려놓은 손혁 키움 감독 ⓒ 연합뉴스

 
히어로즈 구단과 손혁 감독의 동행이 결국 1년도 채 가지 못했다.

키움 히어로즈 구단은 8일 오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손혁 감독이 7일 NC 다이노스전 3-4 패배 후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자진의사를 밝혔고 구단이 이를 수용했다고 발표했다.손혁 감독이 이끌던 키움은 7일까지 79승1무58패의 성적으로 2위 kt 위즈에 1경기 뒤지고 4위 LG 트윈스에 1경기 앞선 3위를 달리고 있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키움은 포스트시즌 진출이 유력한 성적을 올리고 있었다.

손혁 감독의 사퇴 의사를 받아들이기로 한 키움은 김창현 퀄리티컨트롤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했다. 1985년생으로 키움의 좌완 불펜투수 오주원과 나이가 같은 김창현 대행은 대전고와 경희대에서 선수생활을 했지만 끝내 프로무대는 밟지 못하고 2013년부터 히어로즈의 전력분석팀에서 근무했다. 손혁 감독은 "기대한 만큼 성적을 내지 못해 죄송하다. 기대가 많았을 팬들께 죄송하고 선수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부상으로 꽃 피우지 못한 기교파 투수

공주고 시절 '코리안 특급' 박찬호와 함께 팀의 원투펀치로 활약하던 손혁 감독은 고려대를 거쳐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1라운드(전체 7순위)로 LG 트윈스에 지명됐다. 루키 시즌 단 1승을 올리는데 그친 손혁 감독은 2년 차 시즌부터 LG의 선발 한 자리를 차지하며 8승을 거뒀고 1998년 11승,1999년 10승을 따내며 LG 마운드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손혁 감독은 불 같은 강속구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유형의 파워피처는 아니었지만 영리한 투구패턴과 다양한 변화구로 타자들을 현혹시키는 능력은 단연 발군이었다. 하지만 LG는 이병규(LG타격코치)와 류지현(LG수석코치), 김재현(SPOTV 해설위원) 등과 함께 '신바람 타선'을 이끌 강타자가 필요했다. 결국 LG는 2000년 3월 손혁 감독과 현금 5억 원을 붙여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해태 타이거즈로부터 강타자 양준혁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하지만 손혁 감독은 이 트레이드에 반발하며 해태 선수단 합류를 거부했고 해태는 손혁 감독을 임의탈퇴 시켰다. 손혁 감독 입장에서는 선수의 의향이 반영되지 않는 트레이드가 자행되는 문화를 바꾸려는 시도였지만 예나 지금이나 트레이드는 구단끼리의 거래일 뿐이다. 결국 2000 시즌 한 해를 통째로 건너 뛴 손혁 감독은 2001년 그라운드에 복귀했지만 2년 동안 단 2승을 추가하는데 그치며 LG시절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2003년 다시 한 번 트레이드를 통해 또 다른 서울팀인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손혁 감독은 이적 첫 해 4승6패 평균자책점3.65를 기록하며 재기 가능성을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2004년 단 2경기만 소화한 후 돌연 은퇴를 선언했고 2007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으며 메이저리그에 도전했지만 30대 노장 투수의 뒤늦은 빅리그 도전은 쇄골부상과 함께 트리플A에서 멈추고 말았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MBC스포츠 플러스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손혁 감독은 2015년 염경엽 감독(SK 와이번스 감독)의 부름을 받아 히어로즈 투수코치로 합류하면서 10여 년 만에 KBO리그 현장으로 컴백했다. 히어로즈에서 2년 동안 투수들을 가르치며 지도력을 인정 받은 손혁 감독은 2018년부터 작년까지 SK에서 투수코치를 역임하다가 작년 11월 키움의 감독에 전격 선임됐다.

포스트시즌 유력했던 3위 감독의 사퇴 미스터리

키움은 작년 시즌 준플레이오프에서 LG, 플레이오프에서 SK를 꺾고 5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따라서 3년의 계약기간이 끝난 장정석 감독(KBS N SPORTS 해설위원)과의 재계약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하지만 키움은 장정석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감독 경험이 전무한 손혁 SK 투수코치를 새 사령탑으로 임명했다.

흔히 감독이 바뀌면 코칭스태프도 감독과 가깝고 감독이 신뢰하는 사람으로 전면 교체되는 게 일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손혁 감독은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된 허문회 수석코치 자리에 홍원기 수비코치를 내부승격시킨 것을 제외하면 장정석 감독 시절의 코칭스태프를 대부분 유임시켰다. 그리고 손혁 감독은 부임 첫 해 초보 감독의 우려를 씻고 키움의 전력을 잘 유지시키며 꾸준히 상위권의 성적을 이끌었다.

사실 올 시즌 손혁 감독에 대한 키움팬들의 평가는 부정적인 편이다. 특히 지나치게 이닝을 쪼개는 빈번한 투수교체와 야수들의 지나친 멀티 포지션 강요, 잦은 보내기 번트 작전 등은 전임 장정석 감독의 과감한 야구와 크게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초보 감독으로서 그토록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키움은 6월부터 한 번도 4위 밑으로 성적이 떨어진 적이 없다.

부임 첫 해부터 이 정도의 성적을 유지한다면 초보 감독의 철학을 밀고 나가면서 포스트시즌에서 과감하게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성적이다. 하지만 손혁 감독은 정규리그를 단 12경기 남겨두고 '중도하차'를 선택했다. 아직은 손혁 감독이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형식적인 멘트 외에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각종 '음모론'을 비롯한 온갖 추측이 오가고 있다. 

키움은 추석 연휴기간 동안 KIA 타이거즈에게 스윕패를 당한 것을 포함해 최근 10경기에서 3승7패로 부진했다. 하지만 지난 6일 NC를 상대로 끝내기 승리를 거두는 등 분위기 반등의 계기는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손혁 감독은 키움의 운명을 김창현 감독대행에게 맡기고 팀을 떠났다. 시즌 막판 야구팬들을 놀라게 한 손혁 감독의 사퇴 소식은 과연 훗날 어떤 뒷이야기를 남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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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키움 히어로즈 손혁 감독 김창현 감독대행 자진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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