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두산 베어스는 2위 SK 와이번스에 무려 14.5경기 앞선 압도적인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조쉬 린드블럼(밀워키 브루어스)과 세스 후랭코프, 이용찬, 유희관, 이영하로 이어지는 선발 5인방이 모두 두 자리 승수를 거뒀고 .309의 팀 타율도 독보적이었다. 많은 야구팬들이 "어차피 우승은 두산"이라며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두산은 한국시리즈에서 SK를 만나 2승4패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두산의 준우승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두산이 한국시리즈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외국인 타자의 부재가 결정적이었다. 두산은 2018년 외국인 타자 지미 파레디스와 스캇 반 슬라이크가 역대급 부진 속에 조기 퇴출되며 외국인 타자 없이 한국시리즈를 치렀다. 결정적인 상황에서 한 방을 기대할 수 있는 외국인 타자가 없는 두산은 제이미 로맥, 최정, 한동민 등 홈런타자들이 즐비한 SK와의 화력대결에서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작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이어 올 시즌에는 창단 첫 우승에 도전하는 키움 히어로즈도 비상이 걸렸다. 작년 시즌 홈런왕이자 팀의 간판 슬러거 박병호가 손등부상으로 사실상 정규리그 복귀가 힘들어진 가운데 외국인 타자마저 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단 당시만 해도 키움의 구세주가 될 거 같았지만 지금은 어느덧 '계륵'신세로 전락해 버린 외국인 타자 에디슨 러셀 이야기다.

모터 보낸 키움, 빅리그 올스타 출신 러셀과 깜짝 계약

작년 시즌 타율 .305 28홈런113타점100득점으로 리그 타점왕에 올랐던 제리 샌즈(한신 타이거즈)가 일본으로 떠날 때만 해도 키움은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 들였다. KBO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외국인 선수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받아 미국이나 일본 구단과 계약하는 것은 비단 히어로즈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키움은 샌즈를 보낸 후 2020년을 함께 할 외국인 선수로 내외야를 두루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 테일러 모터를 영입했다.

사실 2017년 kt위즈에서 활약했던 조니 모넬이나 작년 NC 다이노스 유니폼을 입었던 크리스티안 베탄코트의 경우처럼 KBO리그에서 유틸리티 외국인 선수는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다 보면 그만큼 타석에서 집중력이 떨어져 구단이 원하는 만큼의 타격 성적을 올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입단 초기 외야와 3루, 2루까지 병행하던 SK의 로맥이 1루에 집중한 후 타격성적이 급격히 향상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모터 역시 여러 포지션을 전전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선수로 전락해 버린 선배들의 전철을 밟고 말았다. 3루수와 1루수, 우익수를 오가던 모터는 10경기에서 타율 .114(35타수4안타)1홈런3타점OPS(출루율+장타율).335라는 민망한 성적을 남기고 시즌 개막 한 달도 채 안돼 퇴출됐다. 모터는 2017년 타율 .140을 기록한 후 퇴출된 대니 돈을 능가하는 히어로즈 역사상 최악의 외국인 타자라는 불명예를 쓰고 말았다.

모기업의 지원 없이 스폰서에게 광고비를 받아 구단을 운영할 정도로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한 히어로즈이기에 새 외국인 선수에 대한 기대치도 그리 높지 않았다. 물론 2018년의 샌즈처럼 시즌 중에 데려온 외국인 선수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준 경우도 있었지만 인센티브가 포함된 연봉 총액이 고작 10만 달러에 불과했던 샌즈의 대폭발은 사실 '복권당첨'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히어로즈가 2년 전 샌즈를 영입했을 때처럼 크게 알려지지 않은 마이너리거를 영입해 또 한 번 복권을 긁어볼 거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히어로즈는 모터가 퇴출된 지 20여 일이 지난 6월 20일 야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대형 뉴스를 전해왔다. 모터의 대체 선수로 2016년 내셔널리그 올스타이자 시카고 컵스 월드시리즈 우승멤버인 에디슨 러셀과 계약한 것이다.

홈런도 못 치고 타율도 낮은 히어로즈의 '계륵'

2015년 빅리그에 데뷔한 러셀은 작년까지 컵스의 주전 내야수로 활약했다. 물론 작년에는 하비에르 바에즈라는 또 한 명의 걸출한 내야수에게 주전 유격수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빅리그에서, 그것도 컵스라는 인기구단에서 5년 동안 주전 센터라인 내야수로 활약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러셀은 빅리그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은 내야수라는 뜻이다.

작년 시즌이 끝난 후 컵스에서 방출된 러셀은 가정폭력 전력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맺지 못했다. 그렇게 소속팀을 잃은 러셀은 과거 뉴욕 메츠의 에이스였던 맷 하비, 류현진의 옛 동료 야시엘 푸이그 등과 함께 KBO리그 진출 가능성이 거론됐다. 결국 러셀은 모터와 결별하고 외국인 타자 한 자리가 비어있던 키움과 총액53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하고 KBO리그 도전을 선택했다.

입국 후 자가격리와 퓨처스리그 경기 출전으로 컨디션 조절을 마친 러셀은 7월 말부터 1군에 올라왔다. 러셀은 8월까지 27경기에 출전해 타율 .317 1홈런16타점을 기록했다. 빅리그에서 한 해 21홈런까지 때렸던 선수임을 고려하면 장타생산에서 아쉬움을 보였지만 3할이 넘는 고타율을 기록하며 키움의 중심타선에서 꾸준한 활약을 선보였다. 2루수와 유격수를 오가는 수비 역시 손혁 감독이 선수기용폭을 넓히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하지만 러셀의 방망이는 선두경쟁을 위해 본격적으로 힘을 내야 할 9월 들어 차갑게 식어 버렸다. 실제로 러셀은 9월 22경기에 출전해 홈런 없이 타율 .202 8타점7득점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8월에 비하면 볼넷은 줄어들고 삼진은 늘어나면서 점점 실속 없는 타자로 전락하고 있다. 러셀은 지난 주말 더블헤더가 포함된 두산과의 3연전에서도 10타수 무안타5삼진에 그치며 시즌 타율이 어느덧 .263까지 떨어졌다.

올 시즌 러셀의 OPS는 .661로 이는 이정후(.964)나 김하성(.920)은 말할 것도 없고 올 시즌 타율 .240을 기록하고 있는 전병우(.686)보다 못하다. 그렇다고 득점권(.273)에서 특별히 강한 면모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김하성을 유격수, 서건창이나 김혜성을 2루수로 활용할 수 있다면 굳이 러셀을 주전으로 쓸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빅리그 올스타에서 키움의 계륵이 된 러셀은 남은 시즌 동안 외국인 타자로서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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