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시즌 KBO리그 프로야구가 어느덧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현재 순위표를 보면 예년과는 다른 색다른 부분을 느낄 수 있다. 순위표의 최상단을 장악하고 있는 선두 NC 다이노스-2위 키움 히어로즈-3위 kt 위즈의 공통점은 뭘까. 모두 2000년대 후반 이후 프로야구계에 새롭게 등장한 신생구단들이라는 점이다.

2007년 히어로즈가 해체된 전신 현대 유니콘스의 선수단과 프런트를 승계하여 창단했고, 2011년에는 NC가 프로야구 제 9구단으로 합류했으며, 2013년에는 마지막으로 kt위즈까지 가세하면서 프로야구의 현행 10구단 체제가 완성됐다. 해체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진 구단까지 포함하면 히어로즈-NC-kt는 각각 프로야구 역대 10~12번째 신생구단에 해당한다.

세 구단 모두 야구계에서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히어로즈는 모기업의 이름을 팀명으로 사용하는 다른 구단과 달리, 히어로즈라는 구단 자체가 단일기업체로서 후원사의 이름을 팀명으로 달아주는 '네이밍 스폰서'라는 독특한 사업 모델을 표방했다. 한국야구계에서 전례가 없었던 파격적인 시도였기에 성공 가능성에 상당한 의문부호가 붙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히어로즈의 팀명은 우리-넥센-키움 등으로 끊임없이 바뀌었으며 마땅한 스폰서를 구하지 못했을 때는 '서울 히어로즈'로 불리우던 시절도 있었다. 구단 운영이 자리잡지 못한 초창기에는 주축 선수들을 현금으로 팔아 운영비를 충당하며 '생계형 구단'이라는 웃지 못할 별명을 얻기도 했다. 오히려 프로야구 질서를 헤친다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NC와 kt의 창단은 10개 구단 체제의 성공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던 기존 구단들의 불만과 텃세가 있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특히 NC의 창단으로 연고지였던 PK(부산-경남)지역에서의 팬덤과 인프라를 손해보게 된 롯데 측에서는 당시 "준비 안 된 신생 구단들의 가세가 프로야구 수준을 질적으로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며 대놓고 악담을 퍼붓기도 했다. 가장 후발주자였던 kt는 막내 구단의 한계를 드러내며 1군 무대 합류 이후 3년 연속 최하위에 그치는 등 험난한 생존 적응기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2020시즌 세 구단은 그간의 설움을 청산하듯 보란 듯이 프로야구 무대를 휘어잡고 있다. NC는 5월 13일 이후 단 한번도 선두에서 내려오지 않으며 창단 이후 첫 정규리그 제패의 꿈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NC는 65승 3무 42패로 현재 리그 유일의 6할대 승률(.607)을 기록중이다. 소화한 경기수가 더 많은 키움은 67승 1무 49패(.578)로 승률에서는 밀렸지만 최다승을 기록하며 NC를 2.5게임차로 추격하고 있다. 그 뒤를 잇는 kt는 63승1무 47패(.573)으로 NC와 3.5게임차, 키움과는 1경기 차이에 불과하다.

NC는 8월 들어 11승12패(.478)에 그치며 다소 주춤했고 2위 그룹과의 격차가 사라지는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1위를 빼앗기지 않았다. NC는 지난 한주간 5승2패를 거두며 다시 힘을 내며 2위 키움과의 격차를 벌렸다.

투타의 주축인 구창모와 나성범이 부상으로 이탈해 있는 위기에서 보여준 성과이기에 더욱 값지다. 양의지-박민우-애런 알테어 등이 주축이 된 타선은 팀 타율 2위(.291), 팀 홈런 1위(143개)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약점으로 거론되던 불펜진이 9월들어 평균자책점 2.63(전체 1위)으로 반등하며 강점으로 바뀌었다는 게 선두 수성의 최대 원동력이다.

키움도 주포 박병호의 손가락 골절과 메이저리거 에디슨 러셀의 부진, 여기에 요키시-최원태-안우진 등 부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꾸준히 선전하고 있다. 두산의 뒤를 잇는 새로운 '화수분 맛집'이라는 평가처럼 키움은 올시즌 고비마다 오히려 조영건, 변상권, 송우현 등 가능성 있는 젊은 선수들을 끊임없이 배출해내며 성장하고 있다. 장정석 전 감독의 뒤를 이어 올시즌부터 키움의 지휘봉을 잡은 손혁 감독은 올해 데뷔한 초보 감독 3인방(롯데 허문회, 삼성 허삼영)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주목받고 있다.

kt의 3위 반등은 올시즌 가장 놀라운 변화다. kt보다 불과 2년 일찍 1군무대에 합류한 NC는 이미 포스트시즌 진출 5회에 한국시리즈(2016년)도 1차례나 나가봤고, 키움도 포스트시즌 진출 6회, 한국시리즈 진출 2회를 기록한 어엿한 강팀이다. 하지만 올해로 1군 6년차인 kt는 아직까지 한번도 가을야구를 밟지 못했고 최고성적은 지난 2019 시즌 기록한 6위에 불과했다.

창단 초기에는 타 구단들과의 현격한 전력차를 절감하면서 승수자판기 신세를 감수해야했지만 최근 몇 년간 시행착오를 자양분삼아 FA 시장서 수준급 선수들을 수집하고 꾸준한 유망주 육성 정책도 서서히 효과를 발휘하면서 올 시즌 드디어 빛을 보는 모양새다. kt는 지난 시즌도 NC에 2게임차로 밀려 가을야구 티켓은 아쉽게 놓쳤지만 구단 사상 첫 시즌 5할승률(71승 2무 71패, .500)를 기록하며 발전 가능성을 증명했다. 그리고 작년의 아쉬움을 만회하듯 올 시즌에는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kt는 최근 5연승을 내달리며 내친김에 구단 역사상 역대 최고 순위는 물론이고 사상 첫 정규리그 우승에 대한 꿈까지 키워가고 있다. MVP급 시즌을 보내고 있는 로하스와 원투펀치 데스파이네-쿠에바스까지 올시즌 kt의 외국인 선수 농사는 10개구단중 가장 성공적이다.

여기에 유력한 신인왕 후보 소형준을 필두로 배제성, 김민수로 이어지는 젊은 선발진과 필승조 주권-김재윤이 이끄는 뒷문도 탄탄하다. 타선에서는 강백호-황재균-유한준으로 이어지는 이상적인 신구조화 속에 9월에만 끝내기 홈런을 두 차례나 터뜨린 배정대의 활약까지 더해지며 팀분위기에 날개를 달았다.

가을 야구 진출 가능성

현재로서 세 팀이 모두 나란히 가을야구에 진출할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10구단 체제가 시작된 이후 NC와 히어로즈는 2015-16, 2019시즌까지 함께 가을야구에 나가본 경험이 있지만, kt까지 세 팀의 동반 진출은 사상 처음이 된다. 또한 어느 팀이 정규리그를 제패하더라도 역시 최초다. 프로야구 원년(82년)을 제외하고 KBO리그에 뛰어든 신생 구단중 정규 시즌 1위에 올라 본 팀은 한화의 전신인 빙그레 이글스(1989년, 창단 4년차)와 SK 와이번스(2007년, 창단 7년차) 두 팀 뿐이다.

세 팀 모두 올 시즌 창단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도전한다. '신생구단 창단 이후 한국시리즈 첫 우승'사례는 지난 2007년 통합우승을 차지했던 SK(7년차)가 마지막이었다. '창단 이후 가장 한국시리즈 우승이 오래 걸린' 사례는, 프로야구 원년 멤버였던 삼성 라이온즈의 21년(2002년)이었다. 참고로 현재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 기록이 가장 오래된 팀은 롯데 자이언츠로 92년 마지막 우승 이후 지난 2019시즌까지 27년째 무관을 기록 중이다.

어느덧 무섭게 성장한 후발주자 '동생'들의 기세에 형님들이 쩔쩔매고 있는 것도 재미있는 광경이다. 디펜딩챔피언인 두산(5위), 최다 우승에 빛나는 KIA(6위) 등 원년부터 역사를 이어온 전통의 명문구단들이 올시즌 5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하고도 가을야구 진출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려있다. 스포츠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지만, 10구단 체제가 시작된 지 십 년도 안 돼 프로야구 판도가 이렇게 바뀌었다는 것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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