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은 세계적으로 인류사의 오래된 딜레마다. 전세계에서 가장 글로벌화된 분야로 꼽히는 축구계도 예외는 아니다. 노골적으로 특정 인종을 모욕하거나 비하하는 행위들은 이제 금지되며 처벌을 받지만, 아직도 무의식적이거나 교묘하게 자행되는 차별적 행위 등은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 유럽무대에서 그 재능을 인정받은 한국인 축구스타들도 언제든 그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한국인 유럽파 축구선수를 대표하는 손흥민과 이강인은 최근 시즌 개막을 앞두고 뜻하지 않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놀랍게도 차별 행위로 구설수를 일으킨 주체가 일개 극성팬도 아닌, 공식적인 미디어 매체라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토트넘 홋스퍼는 유명 온라인 스트링 서비스 회사인 '아마존 프라임'과 손을 잡고, 구단의 비하인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올 오어 낫띵(All or Nothing/모 아니면 도)을 제작했다. 한국축구의 최고 스타 손흥민의 소속팀으로 친숙한 토트넘의 지난 시즌을 다룬 이야기이기에 국내 팬들에게도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본방송을 앞둔 예고편에서 손흥민이 경기중 팀동료 위고 요리스와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이 도마에 올랐다.

팀 동료 요리스와 말다툼 벌이는 장면 도마 위 

손흥민은 지난 7월 7일 에버턴과의 프리미어리그 경기 도중 전반이 끝나고 하프타임에 토트넘 선수단이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주장이자 골키퍼인 요리스와 언쟁을 벌인 바 있다. 요리스는 손흥민이 전반 막판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지 않은 상황을 지적하며 고성을 질렀고, 손흥민도 이에 지지 않고 맞대응하면서 몸싸움 일보직전까지 갔다. 이 장면은 당시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유럽 현지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던 해프닝이었다. 특히 국내 팬들은 요리스가 유독 손흥민을 겨냥하여 수비 가담 문제를 지적한 것이 인종차별적인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 의심했을 만큼 이미 당시에도 상당히 민감하게 여겨진 사안이기도 했다.

공개된 아마존 다큐 방영분에서는 손흥민과 요리스의 다툼을 둘러싼 뒷이야기를 조명한다. 두 사람의 언쟁은 라커룸으로 들어가서도 한동안 계속되었음이 드러났다. 요리스는 동료의 만류에도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손흥민을 비롯한 동료들을 향하여 "다들 마찬가지야(it's all the same)" "(팀을 위하여) 더 뛰어야지(Make the run)" "1분 남았잖아(One mimute to go) "(주장인) 나를 존중하라고(Respect me)" 등 호통을 치며 목소리를 높인다. 잔뜩 흥분한 상황이라 말의 내용과 발음이 두서가 없지만, 요리스의 발언들은 친절하게 화면 아래 영어 자막으로도 제시되어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아마존 측이 맞대응하는 손흥민의 발언에 대해서는 그저 'Shouting(소리침)'이라는 자막만으로 무성의하게 처리했다는 점이다. 당시 발언 내용을 살펴보면 손흥민은 요리스를 향하여 "내가 얼마나 열심히 뛰고 있는지 알기는 해?" "나더러 뭘 어쩌라고?" "나도 널 존중했다고, 네가 늘 그러라고 하니까"하고 역시 영어로 반박한다.

참고로 요리스는 프랑스인이고 손흥민은 한국인으로 둘다 영어가 모어가 아니다. 이미 국내에서는 손흥민이 영어로 어떤 말을 했는지 해석한 영상까지 나왔을 만큼 손흥민이 알아듣기 어려운 표현을 구사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작 아마존은 요리스보다도 더 정확한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드러낸 손흥민의 발언을 제대로 전달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이 장면은 이미 영국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손흥민과 요리스의 충돌을 둘러싼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여준다는 의도로 촬영된 화면이 오히려 새로운 인종차별 의혹을 부추긴 셈이 됐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눈찢기 조롱' 피해자 된 이강인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활약 중인 이강인은 서구권의 또다른 인종차별적 행위인 '눈찢기 조롱'의 피해자가 됐다. 스페인 유명 언론 아스는 지난 12일 이번 시즌 스페인 라리가를 대표하는 8인의 유망주를 캐리커쳐로 소개했는데 아시아 출신인 이강인과 레알 마드리드의 쿠보 다케후사(비야레알 임대)에 대해서는 유독 두 눈을 가늘게 가로로 찢어진 듯이 표현하며 다른 서구권 선수들과 차별화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마르틴 외데가르드, 세비야의 쿤데, 바르셀로나의 안수 파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주앙 펠릭스 등은 다른 선수들의 눈은 세로로 길게 묘사되어 있어서 이강인-쿠보와 확연히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다. 서양인에 비하여 동양인의 작은 눈을 비꼬는 눈찢기 묘사는 지금도 가장 빈번한 인종차별 행위로 불린다.

손흥민과 이강인은 유럽무대에서 그 재능을 인정받은 대표적인 아시아 선수들이다. 아마존 다큐에서도 손흥민은 토트넘의 핵심 선수로 평가받으며 구단, 감독, 팬들로부터 두루 존중받는 모습이 잘 묘사된다. 아스의 기사 역시 올시즌 이강인이 발렌시아와 스페인 라리가를 이끌 기대주로 분류되었다는 긍정적인 의도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정작 아마존과 아스는 표현과정에서 심각한 결례를 저지르며 선수와 그들을 응원하는 아시아 팬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말았다. 무지와 편견을 그대로 묵인하고 방치하는 것도 인종차별에 동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도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손흥민과 이강인을 둘러싼 씁쓸한 해프닝은 인종차별이 더 이상 먼나라에서 벌어지는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경각심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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