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유타 재즈의 루디 고베어가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으며 전면 중단됐던 미프로농구 NBA는 지난 7월 전격 재개돼 현재 플레이오프 1라운드를 치르고 있다. NBA 사무국은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디즈니 월드에 '올랜도 버블'이라 불리는 코로나 청정지역을 만들어 이곳에 선수들이 모여 합숙을 하며 잔여 시즌을 치르고 있다. 무관중에 전 경기가 중립경기로 치러지다 보니 과거와 같은 홈 코트 이점은 기대할 수 없다.

이번 시즌을 마무리하기 위해 새로 만들어진 '올랜도 버블'의 코트엔 예년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구가 있다. 바로 코트 중앙 시청자들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문장이 크게 새겨진 것이다. 대다수 흑인 선수들이 지지하고 있는 흑인인권운동과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NBA사무국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의미를 담은 문구다.

하지만 한창 진행 중인 LA클리퍼스와 댈러스 매버릭스의 서부컨퍼런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백인 선수가 흑인 선수에게 인종차벽을 당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단지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종차별을 당했지만 '댈러스의 새로운 별' 루카 돈치치는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이틀 후 다시 만난 클리퍼스를 상대로 연장전 결승 위닝슛과 함께 43득점17리바운드13어시스트로 트리플더블을 작성하며 실력으로 정의구현(?)을 해줬다.

5월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으로 피어난 흑인인권운동

평화롭던(?) NBA에 갑자기 흑인의 인권과 인종차별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것은 지난 5월에 있었던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20달러 짜리 위조지폐를 사용하다 적발돼 경찰에게 체포되던 플로이드는 백인경찰에게 무려 8분 동안 무릎으로 목을 눌려 질식사했다. 물론 범법을 저지르던 플로이드를 '순교자'인양 미화해선 안되지만 그가 비무장 상태였음을 고려하면 이는 엄연한 경찰 쪽의 과잉진압이었다.

이 과정이 담긴 영상이 퍼지면서 미국 전역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물론 평화적인 시위로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각종 매체를 통해 강조된 것은 약탈과 폭력을 동반한 일부 과격시위들이었다. 경찰 역시 이를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시위대와 경찰의 갈등은 더욱 커졌고 이는 중남미와 유럽, 호주, 뉴질랜드 등 세계 각지로 번져 나갔다(한국에서도 지난 6월 차별금지법 추진을 촉구하는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플로이드의 죽음 소식이 알려지자 현지 셀럽들의 입장표명도 이어졌다. 가수 비욘세와 레이디 가가, 테일러 스위프트, 배우 드웨인 존슨, 리즈 위더스푼 등 많은 유명인들이 SNS를 통해 플로이드의 죽음을 애도했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유명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는 인종차별 반대시위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등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는 축구 선수들도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글귀를 언더셔츠에 적어 놓고 골 세리머니를 했다.

미국의 4대 프로 스포츠 중에서 흑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NBA에서도 적극적인 의사표현이 이어졌다. 특히 평소 정치적 발언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은 "불의에 맞서는 평화로운 표현을 계속하고 투표를 통해 의사를 보여 주어야 하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협력해 한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이 구단주로 있는 샬럿 호네츠 홈페이지의 대문에 올리며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수 많은 흑인스타들을 거느린 NBA에서도 흑인 인권과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동참했다. 70%가 넘는 흑인 비율을 자랑하는 NBA에서 흑인 선수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것은 리그를 재개할 의지가 없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한 흑인 인권문제는 미국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안고 있던 고질병이기 때문에 이 기회(?)에 NBA가 나서서 흑인 문제에 대한 평화로운 목소리를 내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인종차별 반대 앞장 서는 NBA에서 인종차별 발언

코트에 'BLACK LIVES MATTER'라는 문구를 새기고 시즌을 재개한 NBA는 선수들 역시 각자의 바람을 담은 메시지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볐다. 정의(Justice)와 평등(Equality), 자유(Freedom), 평화(Peace)처럼 비교적 흔한 단어를 적은 선수도 있었고 투표를 통해 세상을 바꾸자는 의미로 투표(Vote)를 새긴 선수도 있었다. 각자가 원하는 문구를 단 선수들은 우승을 위한 치열하고 정정당당한 경쟁을 이어갔다.

그러던 지난 22일 평화적인 흑인인권과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이어가던 NBA에서 절대 나오지 말아야 할 장면이 나왔다. 클리퍼스와 댈러스의 서부컨퍼런스 1라운드 3차전 경기에서 클리퍼스의 포워드 몬트레즐 해럴이 경기 도중 댈러스의 간판스타 돈치치에게 "빌어먹을 백인 놈(Bitch Ass White Boy)"이라는 인종차별 발언을 한 것이다. 흑인인권을 주장하던 해럴이 역으로 슬로베니아 출신의 백인 선수 돈치치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

농구경기에서는 상대 선수를 자극하기 위해 트래시 토크를 주고 받는 경우는 비교적 흔한 편이고 감정이 상할 경우 몸싸움이나 난투극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돈치치 역시 하렐의 독설을 듣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지만 다행히 몸싸움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하지만 돈치치가 경기 도중 왼쪽 발목을 다친 댈러스는 3차전을 122-130으로 패하며 시리즈 전적 1승2패로 밀리게 됐다.

3차전에서 심한 인종차별 발언을 듣고 부상을 당하면서 팀까지 패하는 '삼중고'를 겪은 돈치치는 24일에 열린 4차전에서 3차전의 아쉬움을 한 번에 털어 버렸다. 연장전을 포함해 45분 동안 코트를 누빈 돈치치는 43득점17리바운드13어시스트로 맹활약하며 댈러스의 135-133 승리를 이끌었다. NBA 역사상 단일 경기에서 40득점과 15리바운드, 야투 성공률 50% 이상을 기록하며 트리플 더블을 작성한 선수는 1993년의 찰스 바클리와 돈치치 뿐이다.

해럴은 4차전을 앞두고 돈치치에게 3차전에 있었던 인종차별 발언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했고 돈치치도 이를 받아 들였다. 해럴은 4차전에서도 아무런 징계 없이 17분을 소화했지만 이번 '올랜도 버블' 시즌을 관통하고 있는 최대 화두인 인종차별 이슈를 정면으로 건드린 해럴에 대한 농구팬들의 분노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가 소중히 지키고 존중해야 하는 것은 흑인만의 인권이 아닌 이 지구에 사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인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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