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감독의 하이브리드 전술이 전북을 애먹였다.
 
상주는 2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하나원큐 K리그1 2020 17라운드 경기에서 전북에 1-2로 패했다. 전반 2분 만에 이성윤에게 이른 선취골을 허용하며 끌려갔고, 오현규가 빠르게 만회골을 성공시켰지만 후반 42분 구스타보에게 일격을 얻어맞으며 패배했다. 상주는 승점 28점을 유지하며 3위를 지키긴 했으나, 4위 대구(승점 26)와의 승점차를 벌릴 기회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패배를 기록하긴 했으나 상주는 4연승을 거두며 절정의 상승세를 달리고 있던 전북을 상대로 만만치 않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전반 초반 이성윤에게 선취골을 허용할 때까지만 해도 전북에게 끌려 다닐 것이란 예상이 주를 이뤘지만, 오현규가 동점골을 성공시킨 이후로 흐름이 급변했다. 오히려 전북의 공격을 조급하게 만들었고, 심지어는 골을 만들 뻔한 장면도 있었다. 게다가 이번 경기에서 상주는 올 시즌 5경기도 뛰지 못한 선수들이 9명이나 나왔다.
 
경기 감각이 100%가 아닌 선수들을 데리고도 이처럼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김태완 감독의 하이브리드 전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태완 감독은 이날 경기에서 전반에는 후방 빌드업을 통한 점유율 축구를 구사했고, 후반에는 선수비 후역습의 카운터 어택 전술을 들고 나왔다. 이는 전북의 공격과 수비를 억제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김태완 감독은 4-3-3 포메이션으로 선수단의 명단을 제출했지만 전반 이들의 실질적인 포메이션은 3-5-2에 가까웠다. 오현규와 송승민이 최전방 투톱으로 움직였고 중원에는 김민혁과 이동수, 이찬동이 위치했다. 안태현과 강지훈이 좌우 윙백처럼 움직였으며 수비라인은 권경원 박병현 고명석이 스리백을 구성했다.

 
 동점골을 성공시킨 뒤 기뻐하는 오현규

동점골을 성공시킨 뒤 기뻐하는 오현규 ⓒ 한국프로축구연맹

 
이른 시간 선취골을 내줬음에도 상주는 계획한 대로 전반은 침착하게 빌드업을 통해 공격을 전개해 나갔다. 전북이 특유의 스피드와 활동량을 앞세워 거세게 전방압박을 가했지만 허둥대지 않았다. 수비라인에서는 간결하게 볼을 처리하며 불안감을 최소화했고, 동시에 미드필더진이 적극적으로 후방까지 내려와 주면서 숫적 우위를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상주는 매끄럽게 볼을 순환시키며 전북의 압박을 뚫고 유유히 하프라인을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한 것은 권경원이었다. 권경원은 후방에서부터 볼을 안정적으로 소유하고 중원으로 배급해주면서 후방 빌드업의 중추 역할을 수행했다. 권경원의 발을 거친 볼은 중원을 거쳐 좌우 측면 윙백들에게로 전달됐고, 특히 왼쪽 측면에 위치했던 안태현에게로 대부분의 볼이 향했다. 볼을 이어받은 안태현은 매순간 적극적인 오버래핑과 돌파를 시도하며 전북의 수비진을 흔들었다.
 
오현규의 동점골로 빠른 시간 안에 만회에 성공한 상주는 조급해진 전북을 상대로 여유 있게 볼을 돌렸다. 전북은 구스타보를 비롯한 공격진이 적극적으로 압박을 시도했지만 미드필더들과 풀백들의 지원이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오지 못하면서 볼을 뺏는데 실패했다. 본디 볼을 오래 소유하고 빠른 측면 공격을 통해 상대팀을 공략하던 전북이었지만 볼을 소유하지 못 하게 되자 효과적으로 공격을 전개하지 못했다.
 
전반을 지배한 상주는 후반부터는 완전히 반대의 전술을 들고 나왔다. 여전히 스리백이었지만 사실상 수비에 치중한 파이브백에 가까웠다. 오현규 1명만을 전방에 남겨둔 채 5-4-1 포메이션으로 전북의 파상공세에 선수비 후역습으로 대처했다.
 
 
 볼 경합 중인 오현규(상주)와 김보경(전북)

볼 경합 중인 오현규(상주)와 김보경(전북) ⓒ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에 전북은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져가며 공격을 주도했으나 이렇다 할 공격 기회를 창출해내진 못했다. 두터운 중앙수비에 막혀 측면으로 볼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구스타보의 제공권을 앞세워 크로스 공격을 시도했지만 중앙에 위치한 세 명의 수비수를 홀로 이겨내기 쉽지 않았다. 후반 16분에는 쿠니모토를 투입해 중원의 기동력과 창의성을 높이는 방책을 시도했으나 밀집한 상주 수비수들에게 번번이 차단되면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틈을 타 상주는 역전골까지 노렸다. 수비에 성공한 상주 선수들은 볼을 잡기만 하면 전방의 오현규를 향해 패스를 뿌렸다. 오현규는 저돌적인 돌파로 전북의 수비진을 따돌리며 골문에 근접했고, 슈팅까지 날리며 전북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후반 2분과 후반 13분 오현규가 날린 슈팅이 좀만 더 정확했다면 경기가 끝난 후 웃는 팀은 전북이 아닐 수도 있었다.
 
김태완 감독은 오현규를 빼고 박동진을 투입하며 공격진에 기동력을 보강했다. 동시에 5-4-1 포메이션에서 측면 미드필더를 담당하고 있던 송승민을 전방으로 끌어올려 5-3-2 형태의 포메이션으로 전북의 공격에 맞섰다.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는 전북의 공격 루트를 앞선에서부터 견제함과 동시에 역습 상황에서 더 많은 숫자의 공격수를 가져가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이는 오판이었다. 공격수의 숫자가 늘어나자 풀백들의 공격 가담을 억제해줄 측면 자원의 숫자는 반대로 줄어들었다. 파이브백 수비라인을 구성하고 있어 한교원과 바로우 등 윙 포워드들의 공격은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었지만, 김진수와 최철순 등 풀백들의 오버래핑까지는 막아내기 버거워졌다. 결국 후반 42분 아무런 견제 없이 자유롭던 김진수가 구스타보를 향해 정확한 크로스를 배달했고, 구스타보가 이를 마무리하면서 상주의 골문을 뚫었다. 90분 가까이 잘 막아내던 상주로선 아쉬울 수밖에 없었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전, 후반 각기 달랐던 김태완 감독의 변화무쌍 전술은 전북을 뒤흔들기엔 충분했다. 막판 전북의 크로스 공격에 대한 대처 미흡이 아쉬운 부분이긴 했으나, 경기 전체적으로 상대의 조급함을 이끌어내고 효율적인 공격을 구사한 것은 상주였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경기에서의 경기력은 경기 감각이 떨어져 있는 선수들을 위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상주는 올 시즌 '레알 상주'로 불리며 K리그1 순위표에서도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사령탑 김태완 감독은 매 경기마다 번뜩이는 전술과 찰떡같은 선수기용으로 상주의 선전을 이끌고 있다.
 
다음 시즌 K리그2로 강등이 확정되긴 했으나 훌륭한 경기력을 바탕으로 역대급 성적을 노리는 상주다. 과연 시즌을 마쳤을 때 이들이 순위표 어느 곳에 위치해 있을지 축구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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