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워터 릴리스> 포스터

영화 <워터 릴리스> 포스터 ⓒ (주)영화특별시SMC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국내외 평단과 관객의 극찬을 받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톰보이>에 이어, 2007년 스물일곱에 만든 데뷔작 <워터 릴리스>까지. 우리나라에 세 편의 영화가 선보였다. 이미 셀린 시아마의 세계에 매료된 관객들은 시간을 거슬러 공통점을 발견하고 곱씹으며 꽤나 즐거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누구나 처음의 서툴렀던, 그래서 도망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흑역사 혹은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그렸다.

영화는 처음으로 사랑에 눈을 뜬 10대 소녀들의 알록달록한 성장담이자 아델 에넬의 풋풋했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소녀가 자신의 생각을 갖고 결정하기까지의 고군분투가 담겼다. 사소한 고민도 인생 고민이 되는 10대 시절의 사랑과 욕망도 거침없이 담아냈다.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를 마주한 소녀들의 성(姓)정체성에 초점을 맞춘다. 남성이 보는 여성의 몸이 아닌, 여성이 들여다보는 몸을 관찰한다.

성정체성에 눈을 뜬 혼란스러운 소녀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대회, 초등부의 엉성한 경기가 지나자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중등부 경기가 이어진다. 한껏 치장한 소녀들의 동작은 서로가 동작을 맞춤으로써 물속에 핀 백합처럼 환해진다. 친구 안나(루이즈 블라쉬르)의 응원차 대회에 갔던 마리(폴린 이콰르)는 첫눈에 플로리안에게 매료된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선수로 맹활약 중인 플로리안(아델 에넬)은 주변 친구들의 시샘을 받는다. 또래보다 성숙한 외모와 차가운 성격, 실력까지 갖추며 남성들의 여신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플로리안은 자신의 매력을 이용해 남성들과 가까이 지내지만 속내는 알 수 없다. 정말 좋아해서 만나는 것인지, 소문대로 아무나 만나고 다니는 것인지 비밀을 품고 있다.
 
 영화 <워터 릴리스> 스틸컷

영화 <워터 릴리스> 스틸컷 ⓒ (주)영화특별시SMC

 
마리는 플로리안과 가까워질 방법이 없자, 플로리안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수영장에 입성하게 된다. 가까운 친구가 되어 플로리안을 관찰하고 싶은 그녀의 시선은 또래 소녀들 사이에서 단연 도발적이다. 카메라는 마리의 눈이 되어 플로리안을 탐닉한다. 이때 깔리는 감각적인 일렉트로닉 음악과 비비드 색감의 수영복은 소녀들의 욕망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플로리안과 마리는 여러 에피소드를 겪으며 절친한 친구 사이로 발전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는 마리의 착각이었다. 플로리안은 마리를 클럽에 데려가거나 남자친구와 만나기 위해 이용하기만 한다. 마리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화를 냈다가도 풀어지기도 하는 격정적인 감정 기복을 쏟아낸다. 내가 왜 이러는 건지, 일종의 질투심인지, 우정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다.

한편, 마리의 친구 안나는 수영부 남학생 프랑수아와 첫키스의 달콤함을 꿈꾼다. 우연히 자신의 알 몸을 본 프랑수아에게 욕망을 느끼며 첫경험의 대상이길 꿈꾸고 있다. 프랑수아의 맘에 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것은 물론 적극적으로 욕망을 표출하기에 여념 없다. 결국 계속된 구애 끝에 프랑수아와 첫경험에 성공하나 달콤한 첫키스는 끝내 좌절된다. 이로써 안나가 원했던 것은 간절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몸에 관한 따끔한 성장통
 
 영화 <워터 릴리스> 스틸컷

영화 <워터 릴리스> 스틸컷 ⓒ (주)영화특별시SMC

 
영화는 처음에 관한 세 소녀의 세심한 마음 보고서이자 따끔한 육체의 성장통이다. 마치 속마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꿰뚫는다. 십대들의 흔한 고민인 '사랑'을 다루며 플로리안과 안나라는 대비되는 캐릭터를 선보인다. 두 사람 사이에 껴 있는 마리는 플로리안에게는 사랑을, 안나에게는 우정을 느낀다. 첫경험을 절친한 친구에게 부탁하는 플로리안, 어떤 경험도 받아들이지 않음을 선택한 마리, 꿩 대신 닭이라도 첫경험을 원했던 안나. 세 소녀는 타인을 통해서만 평가되는 시선에서 자유롭고 주체적인 몸의 주인으로 서서히 자리 잡게 된다.

비슷한 또래이나 뚜렷한 성장의 차이가 있는 세 소녀를 통해 사회가 규정한 미의 기준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기준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공간, 즉 수영장은 소녀들의 욕망이 분출되는 작은 세계다.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몸에서 스스로 몸을 사랑하기까지 고군분투가 솔직하게 투영되어 있다. 따라서 몰래 훔쳐보는 시선보다 관객이 소녀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 그중 하나의 캐릭터에 감정이입한다면 좀 더 환상적인 여운을 경험할 수 있다.
워터 릴리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