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진짜 농구, 핸섬타이거즈>의 한 장면

SBS <진짜 농구, 핸섬타이거즈>의 한 장면 ⓒ SBS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한국농구의 현실을 비판할 때마다 흔히 나오는 레퍼토리가 있다. '한국 농구 선수들은 기술을 연마할 시간에 산을 타고 다녀야한다'는 것이다.

한때 프로농구단에서 산악훈련이 크게 유행하며 비시즌 필수 훈련코스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프로구단들이 현재 다음 2020-2021시즌을 앞두고 한창 팀훈련을 진행중인 가운데 아직도 몇몇 구단에서는 감독의 성향과 소신에 따라 산악훈련을 시행하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슈가 됐다.

산악훈련은 체력 훈련의 일종이다. 산을 탄다는 이미지 때문에 무식하게 정말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어디까지나 아스팔트로 포장된 자동차 전용도로, 그것도 오르막만 달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10여 년 전에는 정말로 산길을 달리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었다. 1980-1990년대 일부 프로야구팀들이 정신무장 차원에서 뜬금없이 한겨울 계곡을 찾아가 얼음을 깨고 입수했다는 전설적인 무용담과도 비슷하다.

산악훈련의 필요성을 옹호하는 지도자 및 농구인들은 '체력훈련은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라고 주장한다. 정규리그만 54경기 일정을 소화해야하는 한국 프로농구에서는 전술에 앞서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절대 버틸 수 없다. 이미지만 보고 구시대적인 훈련이라는 오해와 달리, 고산지대에서의 러닝은 심폐 지구력을 키워 체력 강화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본인의 정신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인내심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현장에서도 산악훈련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해외무대를 경험하고 온 외국인 선수들이나 귀화혼혈출신 선수들은 한국의 산악훈련에 대하여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는 이런 식의 훈련을 접해 본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단체훈련을 진행해도 외국인 선수들은 산악훈련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은퇴한 귀화선수 출신인 전태풍은 이러한 한국농구의 비효율적이고 강압적인 훈련 문화를 가장 앞장서서 비판해온 인물중 한 명이다.

또한 최근에는 국내 선수들도 개성이 강하고 자기 주장이 뚜렷한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산악 훈련의 효율성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활약하는 미국 NBA나 유럽은 물론,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하지 않는 훈련을 '한국 스타일'이라면서 고집하는 게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농구는 어디까지나 코트 위에서 공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다. 그래서 이제는 이러한 산악훈련을 시행하지 않는 구단들도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훈련 논란의 진정한 핵심은 단지 산을 타느냐 안타느냐 효율성의 문제를 넘어, 프로 선수를 '관리와 자율' 사이에서 어떤 대상으로 바라보느냐는 인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 프로농구에서 체력훈련은 주로 개인의 자기관리 영역에 가깝고 주로 전술 훈련에 치중한다면, 한국에서는 단체훈련의 필수적인 코스로 여겨진다. 르브론 제임스같은 NBA 스타들도 산을 타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개인트레이너까지 고용해서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기본으로 수행한다.

반면 많은 국내 지도자들은 한국 프로 선수들에게는 아직도 엄격한 통제와 관리를 통하여 몸상태를 끌어올리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집단주의적 마인드가 강하다. 지도자들의 공통된 불만은, 명색이 억대 연봉을 받는 프로 선수들이 비시즌간 개인적인 몸관리나 기량 발전은 소홀히 하면서, 팀훈련만 힘들다고 징징대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선수들이 각자 알아서 몸을 만들어온다면, 지도자도 전술이나 조직력 강화 등 농구 자체에만 투자할 시간이 늘어나서 오히려 더 좋은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엄연히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한 시즌 내내 선수단 전체를 어떻게든 이끌어 가야하는 감독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최근 이슈가 되었던 하승진과 현주엽의 사례는 한국농구에 많은 여운을 남긴다. 은퇴한 하승진은 최근 유투브를 통하여 자신의 현역 시절 경험을 토대로 한국농구의 문제로 '지도자들의 권위적인 지도 문화'를 꼬집은 바 있다. 하승진의 발언에 따르면 "지도자들이 자기만족을 위해 선수들이 괴로워할 때까지 훈련을 시킨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자율 야간 훈련을 실시한다고 해놓고, 감독이 숙소에서 체육관 가는 길목에 서서 누가 훈련하고 누가 안 하는지 감시하듯 지켜본다"고 경험을 털어놨다. "강압적이고 강도 높은 훈련 때문에 늘 지친 상태로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이 재미있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하승진의 발언이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아 프로농구 창원 LG 구단이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비시즌 단체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 방송됐는데, 놀랍게도 하승진의 발언과 그대로 일치하는 내용 일색이라 큰 화제가 됐다. 당시 LG의 사령탑이었던 현주엽 감독은 산악훈련을 진행하면서 몸상태가 좋지 않은 선수들에게 훈련을 강요하는가 하면, 허리 부상으로 휴식을 필요로 하는 선수의 요청을 무시하는 등 시종일관 '불통'에 가까운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높은 몸값을 받고 뛰는 프로선수니까 어느 정도 아픈 건 참고 뛰어야한다"는 등 스포츠나 의학적 전문성과도 거리가 먼 근거없는 소신을 내세우기도 했다. 예능 프로그램이라 희화화되었지만 선수들이 시종일관 감독의 눈치를 보는 모습은 연민을 자아내기도 했다

핵심은 결국 같은 훈련이라도 지도자가 선수들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유발하는가에 달렸다. 선수들에게 훈련의 목표와 당위성을 정확히 인지시키는 훈련은 '발전'이 되지만, 지도자의 강압이나 관행에 따라 억지로 따라가야하는 훈련은 그저 힘겨운 '노동'에 불과하다. 굳이 농구만이 아니라 많은 종목에서는 예전에 많이 실시했던 훈련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나 선수들의 특성에 걸맞게 훈련 방식에도 창의적인 혁신을 고민하는 추세다. 단체훈련만을 강요하기보다는 선수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한다. 선수들이 몸은 힘들어도 훈련만큼은 즐겁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결국 선수도 감독도 함께 변해야 한다. 과거보다 운동할수 있는 환경이나 대우가 더 좋아졌는데도 오히려 이충희-허재-서장훈같은 특급 선수들을 보기가 더 어려워진 것은 선수들도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비시즌에 기량 발전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몸관리에 소홀하여 팀훈련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는 선수들은 프로로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다. 반면 지도자들은 농구의 트렌드는 갈수록 변화하고 있는데 아직도 낡은 훈련방식이나 권위적인 태도로 의식 자체가 달라진 신세대 선수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농구와 인기나 수준이 1980-1990년대만도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가 오래됐다. 그랬다면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훈련방식의 효율성, 선수와 감독의 관계, 소통의 방식 등에서 기존의 관행을 그대로 고집하고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선수나 감독들 모두 제 3자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한국농구의 문제점일 수도 있다는 성찰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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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산악훈련 하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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