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WEC에서 활약하던 '코리안 좀비' 정찬성을 하이킥 실신 KO로 잠재우며 유명세를 탔던 조지 루프는 라이트급(-70.3kg)에서 활약하다가 페더급(-65.8kg)을 거쳐 밴텀급(-61.2kg)까지 체급을 내렸다. 185cm의 장신파이터 루프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파워를 긴 리치를 통해 만회하려 했지만 밴텀급 변신 후 7경기에서 3승 4패에 그치며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종합격투기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격투 스포츠들이 무게로 체급을 나누기 때문에 감량만 가능하다면 신장이 좋은 선수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루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지나치게 무게를 내릴 경우 파워하락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감량을 하는 게 꼭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라이트급의 더스틴 포이리에나 라이트 헤비급의 앤서니 존슨처럼 오히려 체급을 올려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선수도 얼마든지 있다.

결국 파이터들은 자신이 가장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체급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단지 체격의 우위를 살리기 위해 억지로 체급을 내리거나 감량의 어려움 때문에 섣불리 체급을 올린다면 오히려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상습적인' 계체실패로 미들급으로 체급을 옮겼지만 격투기 데뷔 후 첫 3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미들급 전향의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켈빈 가스텔럼처럼 말이다.
 
 가스텔럼(오른쪽)은 팔 길이 197cm의 허만손에게 막혀 격투기 데뷔 후 첫 3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가스텔럼(오른쪽)은 팔 길이 197cm의 허만손에게 막혀 격투기 데뷔 후 첫 3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 UFC.com

 
체중 조절 '삼진아웃' 당하고 미들급으로 쫓겨난(?) 웰터급의 신성

어린 시절 레슬링과 주짓수를 수련하다가 2010년 종합격투기에 데뷔한 가스텔럼은 UFC의 선수육성 프로그램 TUF의 17번째 시즌에 참가하며 얼굴을 알렸다. 미들급 토너먼트에 참가한 가스텔럼은 175cm의 작은 키와 180cm에 불과한 팔 길이 때문에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의외로 승승장구하며 결승까지 올랐고 결승에서 TUF 17의 스타 유라이어 홀을 판정으로 제압하고 UFC와 계약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가스텔럼은 UFC와 정식으로 계약을 한 후 웰터급으로 체급을 내렸다. 신장의 약점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파워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낮은 웰터급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웰터급으로 체급을 내린 후 브라이언 멜란콘과 릭 스토리를 상대로 연승을 거둘 때만 해도 가스텔럼의 웰터급 적응은 매우 순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카스텔럼은 2014년 6월 니콜라스 무소케전에서 체중을 맞추지 못하면서 계약 체중 경기를 치렀다(가스텔럼 판정승). 이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격투팬들은 어쩌다 있는 한 번의 실수라 여겼고 가스텔럼은 11월 제이크 엘렌버거전에서 계체를 무리 없이 통과하며 체중조절에 이상이 없음을 알렸다. 엘렌버거전에서 1라운드 서브미션 승리를 거둔 가스텔럼은 10승 무패에 빛나는 웰터급의 신성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15년 1월 UFC에서는 가스텔럼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훗날 챔피언에 오르는 상위랭커 타이론 우들리와의 경기를 잡았다. 하지만 가스텔럼은 체중을 무려 4.5kg이나 오버했고 가스텔럼은 계약체중경기로 치러진 우들리전에서 생애 첫 패를 당했다. 두 번의 체중조절에 실패한 가스텔럼은 미들급으로 강제로 체급을 올렸지만 여전히 웰터급에 미련이 많이 남아 있었다. 가스텔럼은 네이트 마쿼트를 KO로 제압하고 다시 웰터급으로 컴백했다.

웰터급으로 돌아온 가스텔럼은 닐 매그니에게 생애 2번째 패배를 당했지만 2016년 7월 전 챔피언 조니 헨드릭스를 판정으로 제압하며 웰터급에서의 경쟁력을 확인했다. 하지만 가스텔럼은 11월 도널드 세로니와의 경기를 앞두고 또 다시 계체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UFC의 대이나 화이트 대표는 프로 파이터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체중 감량을 세 번이나 실패한 가스텔럼에게 4번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짧았던 상승세 꺾인 채 3연패 수렁, 페게레도는 플라이급 정상등극

UFC의 화이트 대표는 "옥타곤에서 가스텔럼이 웰터급으로 뛰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가스텔럼의 미들급 '강제 전향'을 공식화했다. 많은 격투팬들은 체격이 작은 가스텔럼이 미들급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우려했지만 가스텔럼은 미들급 전향 후 베테랑 팀 케네디와 비토 벨포트를 연속 KO로 제압하며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하지만 앤더슨 실바와의 경기를 앞두고 마리화나 복용이 적발되면서 실바전이 취소되면서 벨포트전 승리까지 무효 처리됐다.

2017년 7월 크리스 와이드먼에게 서브미션으로 패한 가스텔럼은 2017년 11월 마이클 비스핑의 은퇴경기에서 1라운드 KO, 2018년5월에는 브라질 리우에서 호나우도 '자카레' 소우자를 판정으로 제압했다. 가스텔럼은 이날 소우자에게 여러 차례 큰 타격을 허용하고도 엄청난 맷집으로 견뎌내며 적지에서 이변을 연출했다. 당시만 해도 가스텔럼은 체격이 작은 파이터가 미들급에서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새로운 모델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가스텔럼의 짧았던 상승세는 소우자전이 마지막이었다. 작년 2월 로버트 휘태커와의 미들급 타이틀전이 휘태커의 부상으로 무산된 가스텔럼은 두 달 후 떠오르는 신예 이스라엘 아데산야와 잠정 타이틀전을 가졌다. 가스텔럼은 뛰어난 맷집과 저돌적인 돌격으로 아데산야와 대등한 승부를 펼쳤지만 리치의 열세와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만장일치 판정으로 패했다. 가스텔럼은 작년 11월에도 데런 틸에게 판정으로 패하며 연패에 빠졌다.

3연패의 위기에서 만난 상대는 미들급 6위 허만손이었다. 지난 19일(한국 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UFC 파이트 아일랜드에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172 코메인이벤트에서 가스텔럼은 허만손에게 패했다. 허만손은 81%의 피니시율을 자랑하는 강자지만 많은 레전드들을 꺾어온 가스텔럼이 두려워 할 상대도 아니었다. 하지만 신장 185cm, 팔 길이 197cm를 자랑하는 허만손은 가스텔럼에게 매우 위협적이었고 가스텔럼은 경기 시작 78초 만에 허만손의 기습적인 힐 훅에 걸려 서브미션으로 패했다. 가스텔럼이 충격적인 커리어 첫 3연패를 당하며 미들급에서 다시 한 번 한계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한편 UFN172의 메인이벤트로 열린 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는 랭킹 1위 데이브손 피게레도가 2위 조셉 비나비데즈를 1라운드 서브미션으로 제압하고 UFC 플라이급 3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경기 전부터 베나비데즈에게 생애 첫 서브미션 패배를 안기겠다고 호언장담했던 페게레도는 자신의 말을 지키며 플라이급의 왕좌에 올랐다. 베나비데즈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탭을 치지 않은 것이 페게레도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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