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대전시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 한화 이글스 경기. 연패에서 탈출한 한화 코치진과 선수들이 활력을 되찾고 있다.

14일 오후 대전시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 한화 이글스 경기. 연패에서 탈출한 한화 코치진과 선수들이 활력을 되찾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악몽같은 18연패에서 마침내 탈출했다. 그리고 같은 날, 한화 구단은 연패 수렁에서 빠져나온 기쁨을 누리기에 앞서 사과문을 올렸다. 2020년 6월 14일은 한화 구단과 팬들, 그리고 프로야구 역사에 여러모로 잊지못할 하루로 남게됐다.

한화는 이날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홈경기에서 9회 말 2사 2, 3루 기회에서 터진 노태형의 극적인 끝내기 좌전 적시타에 힘입어 7-6으로 승리했다.

5월 22일 NC 다이노스전 승리 이후 지난 6월 12일 두산전까지 내리 18경기 연속 패배를 당한 한화는, 이미 종전 구단 최다연패(14연패, 2012-13년), 쌍방울 레이더스(17연패, 19999년)의 기록을 뛰어넘어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KBO리그 역대 최다연패' 타이기록을 수립한 상황이었다. 만일 한 경기만 더 패했으면 KBO리그를 넘어 대만-일본프로야구 기록까지 포함해도 '아시아 최다연패' 기록까지 경신하는 굴욕을 당할뻔했다.

뜻밖에도 '하늘이 내려준 기회'가 한화의 운명을 바꿨다. 한화가 기나긴 연패를 탈출하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13일 주말 3연전 2차전 경기에서 한화가 두산에 3-4로 끌려가던 3회 갑작스러운 우천으로 서스펜디드 게임이 결정됐다.

예전같았으면 우천 노게임이 선언될 상황이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리그 개막이 늦어진 올시즌에 한하여 KBO리그가 선수들의 체력 부담을 고려해 우천으로 중단된 경기를 다음날에 재개하는 특별 서스펜디드 규정을 임시로 도입했고 한화-두산전이 올시즌 첫 사례가 됐다.

19연패 기록이 걸린 절체절명의 승부에서 선발로테이션 붕괴로 신인투수 한승주를 마운드에 올려야했을만큼 상황이 절박했던 한화로서는 오히려 서스펜디드 게임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 셈이었다. 대신 14일 하루에만 2경기를 치러야하는 상황이 되면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자칫하다간 연패 기록을 끊는 것은 고사하고 하루에 20연패 기록까지 경신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화는 고민 끝에 정공법을 선택했다. 에이스 서폴드의 2차전 조기 투입 대신 원래 예정된 3차전 선발로 기용하고, 전날에 이어 재개된 2차전에서는 김범수를 첫 투수로 선택했다. 고민이 많았던 결단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대성공을 거뒀다.

경기 자체도 극적이었다. 한화는 두산과 동점과 역전을 주고받았다. 4회말 최재훈이 동점 적시타를 기록했지만, 두산이 김재환의 솔런 홈런으로 다시 앞서나갔다. 7회 말 정은원이 2타점 적시 2루타를 기록하며 승부를 뒤집자 두산에서 이유찬이 동점 적시타를 쳐 원점이 됐다.

연장전이 없는 이날 경기에서 6-6으로 무승부의 기운이 짙어가던 9회말 한화의 마지막 공격, 노태형이 9회 말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며 드라마틱한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연패 탈출이 확정되는 순간, 한화 선수단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라운드로 쏟아져나와 무려 23일 만에 다시 맛보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응원하던 치어리더와 구단 직원들도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세를 탄 한화는 30분 뒤에 재개된 3차전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선발로 등판한 서폴드가 6이닝 2실점(비자책)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고, 박상원-황영국-문동욱으로 이어진 구원진이 3이닝 무실점을 합작하며 3-2로 또 한번의 1점 차 승리를 지켜냈다. 황영국은 데뷔 첫 홀드, 문동욱은 데뷔 첫 세이브를 수확하며 필승조가 아닌 투수들로 강팀인 두산에게 아슬아슬한 1점 차 리드를 지켜냈다는 점이 더 고무적이다.

한화가 연승을 거둔 것도 5월 21일 kt-22일 NC전 승리 이후 23일만이다. 한화는 5월 15-17일 열린 롯데전(2승1패) 이후 7전 8기 끝에 한 달여 만에 값진 위닝시리즈를 달성했다. 올시즌 단 한번도 연패가 없었던 두산이 공교롭게도 최하위 한화를 상대로 시즌 첫 연패를 기록했다는 것도 이변이다. 야구가 그만큼 예측불가능하고 변화무쌍한 스포츠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이나 <퍼펙트게임>은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주인공의 '인생경기'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훗날 한화의 이야기가 혹시라도 영상화된다면 이날의 경기를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만큼, 한화의 연패탈출 과정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스토리의 연속이었다.

물론 모두가 달콤한 여운에만 빠져있었던 것은 아니다. 경기 후 한화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구단 차원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한화는 "이글스를 사랑해주시는 팬 여러분의 응원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최근 계속되는 연패와 무기력한 경기로 허탈감과 큰 실망을 안겨드린 점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자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덧붙여 한화는 "빠른 시일 내 팀의 정상화를 위한 재정비와 쇄신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 다시 한 번 한화 이글스를 사랑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변화된 모습을 통해 반드시 도약하는 이글스가 될 것을 약속드린다"라고 다짐했다.

한화는 왜 하필 어느때보다 기쁜 승리를 거둔 날, 사과문을 올렸을까. 18연패 기간 동안 한화에는 정말 많은 일이 벌어졌다. '이글스 레전드' 출신인 한용덕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계약 마지막해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사임했고, 장종훈-김성래-정민태 등 코치진과 베테랑급 선수들까지 대거 퓨처스-육성군으로 강등당했다. 김태균 등 기대에 못 미친 주전 선수들은 많은 비난에 시달리며 마음고생을 해야했다. 패배가 늘어날수록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졌고 덕아웃 분위기는 한없이 어둡기만 했다.

연패도 연패지만 결과를 떠나 경기 내용도 지나치게 무기력했다. 연패 기간 동안 한화의 팀 타율 .206, 팀 평균자책점은 8.01로 투타 모두 리그에서 압도적인 꼴찌를 기록했고 접전 상황도 거의 없는 무기력한 패배가 속출했다. 한화의 연패 기록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화제가 되는가 하면 세계 야구사의 각종 연패팀들과 흘러간 기록들까지 줄줄이 소환되며 웃음거리로 전락하기도 했다. 모처럼 어렵게 연패를 끊기는 했지만 마냥 기쁨에 빠지기에는, 그동안의 상처와 혼란이 남긴 후유증이 너무나도 뼈아팠던 '악몽의 23일'이었다.

어렵게 18연패를 끊어내고 연승까지 기록하기는 했지만, 이것이 아직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한화의 현실은 9승 27패(승률. 250)로 여전히 최하위다. 선두 NC와는 17.5게임차, 9위 SK와도 3.5게임치다. 아직까지 시즌 두 자릿수 승리를 따내지 못한 팀은 한화가 유일하다.

한화에는 올시즌 아직도 108경기나 남아있다. 그말은 아직 반등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지만, 반대로 또 다른 연패의 악몽에 빠질 가능성도 열려있다는 의미다. 한화는 여전히 리그 최약체팀으로 꼽히며 매경기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야 승리를 기대할까말까다. 당장 이번 주에는 리그 1, 2위팀들인 LG-NC와의 6연전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리빌딩과 세대교체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숙제다.

다만 한화에게는 지난 23일간의 고된 여정이 '1승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달은 값진 시간이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어렵고 힘든 시간이 계속되겠지만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것도 최악의 부진속에서도 여전히 한화의 선전을 묵묵히 기대하고 응원해준 모든 야구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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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이글스 18연패 김태균 한화사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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