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결백> 포스터

영화 <결백> 포스터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주), (주)키다리

 
가족이 짐이 될 때가 있다. 어릴 적부터 아픈 남동생과 차별받으며 자라온 정인(신혜선)은 아버지와 의절한 상태다. 그래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TV에서 방영되는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에 엄마 화자(배종옥)이 용의자로 지목되자 급히 고향으로 내려왔다.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안 정인은 직접 엄마의 변호를 맡는다.

사건을 추적하던 중 배후에 숨겨진 사건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 사건과 관계된 마을 사람들이 농약으로 죽거나 다쳤고, 시장 추인회(허준호)를 중심으로 이상한 정황을 포착하지만 알아내기 쉽지 않다.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와 자폐성 장애인 동생의 말과 행동으로 혼선이 빚어진다. 무엇보다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마을 사람들 때문에 더 힘들다. 주변인과 목격자를 탐문하지만 아무도 협조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다.

게다가 이미 엄마를 범인으로 지목한 쪽에서 계속된 압박과 폭력이 동원된다. 하지만 정인은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엄마는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치매 노인이 계획적인 살인을 저지른다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생각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 정인이 가진 합리적 의심은 결백해야 한다. '엄마는 결백하다'라는 믿음을 정해두고 시작한다. 과연 엄마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을까.
 
 영화 <결백> 스틸컷

영화 <결백> 스틸컷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주), (주)키다리

 
<결백>은 합리적 의심이 어떻게 쓰이는지 영리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합리적 의심이란 특정화된 감이나 불특정한 의심이 아닌 구체적으로 명확한 사실에 기반한 의심이다. 영화에서 정인은 용의자인 엄마가 급성 치매 진단을 받은 노인이란 사실을 기반으로 변호한다. 남편 장례식에 조문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처지의 화자가 살인 용의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엄마가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존재한다면 유죄로 판단할 수 없다는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의 원칙'을 따르려고 든다.

그러나 이런 정인의 마음과 엄마는 엇나간다. 엄마는 아픈 자식 정수(홍경)가 혹여 잘못될까 두려워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범인이 되려 한다. 치매에 걸리기 전 알 수 없는 말을 자주 했다는 증언들이 이어지자 정인의 의구심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영화는 결백이란 제목처럼 결말은 정해져있지만 그 과정을 켜켜이 만들어 나간다. 그 흐름에 따라가다 보면 감출 수 없던 추한 진실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엄마의 결백을 위해서 잠시 덮어 두어야 할 사실도 더러 있었다. 털어서 먼지 나오지 않는 사람 없고, 아무런 허물없는 사람도 없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며 크고 작은 문제점들을 안고 살아간다.
 
 영화 <결백> 스틸컷

영화 <결백> 스틸컷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주), (주)키다리

 
영화는 그 부분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사건을 조사하면 할수록 또 다른 사건과의 연관성이 포착된다. 줄기를 뽑으면 줄줄이 따라 올라오는 감자처럼 캐면 캘수록 다른 사건과 엮이게 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가족을 변호해야 하는 정인의 입장은 난감하다. 변호사로서 객관적으로 사건을 마주하지 못하고 딸이기에 흔들린다.

이는 초반부터 속도감으로 밀어붙이며 쌓아올린 디테일을 동력 삼아 후반부 모녀 이야기로 옮겨 간다. 본 사건의 진실보다 여성의 연대성에 힘주고 있다. 아버지의 폭력과 제대로 방어해 주지 못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 준 딸의 진심이 드러난다. 여성의 아픔과 진실의 이면에는 남성들의 가부장적인 탐욕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서울에서 잘나가는 변호사인 정인이 철저히 고향집을 등지게 된 사연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조금은 아쉽다. 후반부에 동력을 잃어 카타르시스가 분산된 양상이다. 처음 고향집에 와 밝히려고 한 결백과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얻은 결백은 분명 다를 것이다. 정인이 조금만 더 일찍 찾아왔더라면 바뀔 수 있는 과거였을까. 결백을 밝히려 왔다가 곪아 터진 가족사가 밝혀진 불편한 진실은 극장을 찾는 관객의 마음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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