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구단 역사상 최다 연패 신기록이라는 불명예 역사를 다시 썼다. 한화는 9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롯데와의 시즌 4차전에서 3-9로 대패했다.

이로써 한화는 2012시즌 최종전부터 2013시즌까지 이어졌던 구단의 기존 최다 14연패 기록을 7년만에 갈아치웠다. 한화의 연패 기록은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18연패),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17연패), 2002년 롯데·2010년 KIA 타이거즈(이상 16연패)에 이어 KBO리그 역대 단일 구단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한화가 치욕적인 역사를 경신한 날, 공교롭게도 파격에 가까운 라인업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한용덕 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면서 이날 롯데전은 최원호 감독대행 체제로 치른 첫 경기였다. 한화는 연패 기간  중 부진한 모습을 보인 송광민-이성열-장시환 등 기존 1군 주전급 선수와 베테랑을 무려 10명이나 2군으로 내려보낸 상태였다.

이날 경기 라인업을 보면 기존 1군에서 꾸준히 활약하던 선수는 에이스 워윅 서폴드를 비롯하여 이용규-김태균-제라드 호잉-노시환 정도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백업 선수나 2군에서 올라온 입단 1,2년차 위주의 신예들로 채워졌다. 하위 타선에 있던 노시환이 4번 타자로 올라서는가 하면 1군경기 경험이 없던 박정현과 최인호가 2-3번 타순에서 공식적인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7~9번에서 하위 타순을 구성한 이동훈·박상언·조한민도 올 시즌 한화 1군에서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 못한 백업 선수들이었다. 마운드에서도 서폴드의 뒤를 이어 문동욱-황영국-윤호솔 등이 출장하여 경기 후반을 책임졌다.

좋게 말하면 과감한 변화와 분위기 쇄신으로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라인업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이기기를 포기한 라인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결과는 패배였고 한화는 구단의 최다 연패 기록이 경신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한화의 15연패를 지켜 본 팬들과 전문가들의 반응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화의 파격 실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다소 진통을 감수하고라도 오랜 기간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한화 1군에 필요한 변화였다고 평가한다. 한화는 지난 수년간 리빌딩과 육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그렇다고 그동안 꾸준한 기회를 얻었던 기존 주전과 베테랑들이 자기 몫을 다한 것도 아니다. 차라리 팀성적이나 기존 선수들의 반발에 연연하지 않고 과감한 혁신을 시도하기에는 최적의 타이밍이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한화는 비록 이날 경기에는 패했지만 젊은 선수들의 가능성과 달라진 덕아웃 분위기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은 나름 희망을 남겼다. 실책쇼를 남발했던 지난 경기들과 달리 한화의 젊은 선수들은 갑작스러운 1군경기 투입으로 긴장감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수비를 보여줬다.

공격에서도 조한민과 최인호가 멀티히트를 기록하는 등, 한화 타선은 이날 무려 10안타 4볼넷을 뽑아냈다. 비록 후속타 불발로 7회에만 3득점에 그친 게 아쉬웠지만 젊은 선수들 위주로 꾸린 첫 경기였음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6회까지 0-8로 점수차가 벌어지며 승부가 기우는 상황에서도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서로를 독려했다. 지난 경기들에서 한번 리드를 빼앗기면 금세 덕아웃 공기가 가라앉던 것과는 분명히 달라진 분위기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거기까지가 한계이기도 했다. 순위가 확정되거나 시즌이 막바지라면 몰라도, 아직은 시즌 초반이고 심지어 한화는 구단 역사상 최다 연패기록이 현재진행중이다. 매경기에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1.5군도 아닌, 2-3군급 라인업을 들고 나온 것은, 한마디로 경기에 이기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에이스 서폴드가 등판한 이날은 한화 입장에서는 연패를 반드시 끊어야 하는 기회였다. 그러나 포수 박상언과는 이날 처음으로 갑자기 호흡을 맞췄고, 타선과 수비의 지원도 받지 못한 서폴드는 롯데 타선을 상대로 5이닝 13피안타 7실점(7자책)으로 난타당했다. 삼미의 역대 연패 기록까지 -3경기밖에 남지 않았다.

프로 1군경기는 선수를 실험하는 무대가 아니라 증명하는 무대다. 승부를 가리기 위하여 매경기 최상의 전력을 발휘하는 것은 프로의 의무이자 팬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기도 하다. 

그나마 9일 롯데전은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파격 라인업을 들고 나온 첫 경기였기에 '졌잘싸'(졌지만 잘싸웠다) 같은 정신승리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연패를 끊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화의 무모한 실험은 용납될 수 있을까.

한화와 비슷하게 한때 장기 연패를 당했다가 탈출한 삼미, 기아, 롯데 등도 분위기 쇄신을 위하여 선수단에 변화를 준 사례는 있지만 그렇다고 대책 없이 2군 선수들만 대거 투입한 경우는 없다. 연패를 끊은 경기에서도 베테랑들과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조화를 이룬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악의 연패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파격적인 실험을 선택한 한화의 결단은 과연 과감한 용기일까, 아니면 무모한 오기일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한화15연패 최원호감독대행 김태균 삼미18연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