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은 2000년대부터 팀 내부에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육성시스템을 통하여 우수한 선수들을 끊임없이 배출했다. 두터운 선수층 때문에 주전 선수들 중에 빈 자리가 생겨도 대체해 줄 수 있는 선수가 금세 나오곤 했다. 이제는 '화수분'이라는 표현 자체가 스포츠에서의 선수육성의 모범사례이자 사실상 두산 야구를 대표하는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매김했다.

두산은 화수분 야구를 내세워 KBO리그를 대표하는 강호로 자리매김했지만, 한편으로는 일종의 '역기능'도 존재했다. 선수를 너무 잘 키우다 보니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두산에서 충분히 기회를 얻지 못하는 선수들도 나온다. 나이를 먹은 베테랑들은 몸값이 비싸지는 FA가 되면 잇달아 두산을 떠나는 상황이 발생했다. 또한 두산의 화수분 야구가 명성을 떨치면서 야구계에서는 너나할 것없이 '믿고쓰는 두산 출신' FA나 준주전급 유망주들을 탐내는 현상도 일어났다. 언제부터인가 두산의 화수분이 더 이상 두산만의 것이 아니라 KBO리그 전체가 공유하는 화수분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 사례가 바로 2차 드래프트였다. 두산은 2차 드래프트가 첫 시행된 2012년부터 이번 시즌까지 총 5번의 지명회의서 10개구단 중 가장 많은 23명의 선수들이 타 구단에 지명돼 팀을 떠나야 했다. 지난 2019년 2차 드래프트 때도 두산은 4명의 선수가 다른 구단에 지명될 동안 단 한 명의 선수도 영입하지 않았다. 그만큼 두산 출신들에 대한 신뢰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두산 입장에서는 한편으로 공들여 육성한 선수들을 충분한 보상도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심지어 시즌 중에 이루어지는 트레이드 시장에서도 두산 출신의 인기는 여전하다. 두산은 올시즌 벌써 두 번의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두산은 지난달 29일에도 포수 이흥련- 외야수 김경호를 내주고, SK로부터 투수 이승진과 포수 권기영을 영입하는 2대 2 트레이드가 이뤄졌다. 7일에는 내야수 류지혁을 내주고 기아로부터 투수 홍건희를 영입하는 1대1 트레이드를 단행하기도 했다.

두 번의 트레이드에서 핵심은 역시 두산 출신인 이흥련과 류지혁이었다. 이흥련은 한때 수준급 포수 유망주로 꼽혔던 자원이고, 류지혁은 내야 여러 포지션을 소화 할수 있는 전천후 자원으로 활용도가 높은 선수였다. 선발 이용찬의 부상공백과 불펜 투수들의 집단 난조 등으로 현재 마운드 보강이 가장 절실했던 두산으로서는, 포수 자원이 필요했던 SK-주전급 내야수를 원했던 기아와 각각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트레이드를 바라보는 두산 팬들의 여론은 아쉬움이 크다. 이흥련이야 이미 박세혁-정상호가 있는 팀사정상 어차피 기회를 많이 주기 어려웠음을 감안해도, 공수주를 두루 갖춘 류지혁까지 내보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다른 팀에서는 충분히 주전급으로 활용될만한 선수들을 둘이나 내주면서 받아온 카드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도, 두산 팬들이 이번 트레이드에 의구심을 보내는 이유다.

다만 선수 입장에서는 두산을 떠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측면이 있다. 이흥련은 이미 SK 이적과 동시에 주전 자리를 꿰차며 '복덩이'로 거듭났다. SK는 기존 주전 포수였던 이재원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그 자리를 메워야 할 백업 포수들의 활약이 부진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흥련이 가세하면서 본업인 투수리드는 물론 타석에서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며 SK의 반등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류지혁은 두산이 아니었으면 어느 팀에 가서도 주전을 차지할만한 선수로 꼽힌다. 두산은 올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는 30대 내야수만 4명이나 된다. 두산의 FA시장 전례를 감안할 때 이들을 모두 잡을 가능성은 낮고, 누군가가 떠난다면 이를 메울 적임자는 누가봐도 류지혁이 1순위였다. 두산 팬들이 '1년만 기다렸으면'하고 아쉬워하는 이유다. 류지혁은 기아에서는 당장 취약 포지션인 3루수에 주전으로 꾸준히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두산에게는 앞으로 두 가지 증명해야 할 숙제가 남았다. 첫 번째는 트레이드 효과의 손익계산이고, 두 번째는 화수분 시스템의 효율성에 대한 재점검이다.

두산은 지난 10여년간 여러 차례 트레이드를 단행했지만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는 적었다. 물론 2012년 히어로즈와의 오재일 트레이드 같은 성공사례도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야수 쪽이었고 투수 쪽은 성과를 거둔 경우가 드물다.

두산의 화수분에서 유일한 취약점이 투수 육성이었고, 최근까지도 전력보강 포인트가 된 것이 투수 영입이었는데 트레이드로는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올해로 두 번의 트레이드로 영입한 홍건희와 이승진을 어떻게 활용하고, 얼마나 성장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평가는 극명하게 달라질 것이다.

두산의 화수분 시스템에 대한 지나친 자만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두산은 그동안 주전급 스타 선수들이 잇달아 팀을 떠나는 와중에도 항상 대체자들을 만들어냈다는 자신감이 있다. 류지혁이나 이흥련을 예상보다 쉽게 떠나보낸 것도 다른 선수들로 얼마든지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으면 내리기 어려운 선택이다.

하지만 두산은 몇 년째 FA나 2차드래프트, 트레이드 시장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전력 '보강'보다 '유출'이라는 평가에 더 방점이 찍히고 있다. 야수에 비하여 투수 육성에서 성과가 더디다는 것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더구나 올시즌이 끝나면 두산은 주전급 선수들이 7명이나 한꺼번에 FA로 나온다. 화수분으로 메꿀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두산의 전력구성에 지각변동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화수분야구의 계속된 성공이 불러온 자만과 방심이, 장기적으로 두산에 큰 부메랑으로 돌아 올 수도 있다. 두산이라고 해도 언제까지 마르지 않은 화수분이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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