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 히포'가 떠난 자리에 '4쿼터의 사나이'가 돌아왔다. 프로농구 창원 LG가 23일 구단 제8대 감독으로 조성원 명지대학교 감독을 선임했다. 전임 현주엽 감독이 올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된 후 자진 사임을 선택한 지 약 2주만이다. 또 한 번 '의외의 카드'를 꺼내든 LG 구단 선택에 농구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성원 신임 감독과 현주엽 전 감독은 여러모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다. 프랜차이즈 스타는 아니지만 현역 시절을 LG에서 보냈다는 것도 비슷하다. 현 감독은 2005년 FA 자격을 얻어 LG로 이적한 이래 2009년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조 감독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LG에서 선수생활을 보냈기에 두 감독이 현역 시절 같은 팀에서 한솥밥을 먹을 기회는 없었다.

스타플레이어로서의 인기나 화제성은 현주엽 감독이 높지만, 프로무대에서 남긴 업적이나 위상은 오히려 조성원 감독이 독보적이다. 조 감독은 대전 현대-전주 KCC 시절 이상민-추승균과 함께 이른바 '이조추' 황금라인의 한 축으로 활약하며 3회의 챔프전-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주역이었다.

농구선수로서는 작은 키(공식신장 180cm)에도 불구하고 한 시대를 풍미한 특급 슈터이자 승부처에서 누구보다 강한 강심장으로 '캥거루 슈터', '4쿼터의 사나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과 달리 정작 프로무대에서는 우승은커녕 챔프전 한 번 올라보지 못한 '비운의 천재'로 마감한 현주엽 감독과 대조되는 프로 커리어다.

지도자 경력 풍부한 조성원 감독

LG에서도 보낸 시간은 짧았지만 임팩트는 누구보다 강렬했다. 조 감독은 2000-01시즌 평균 25.7점(국내 선수 1위)을 퍼붓는 가공할 득점력을 앞세워 팀을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으로 이끌며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까지 선정됐다. LG 선수가 MVP에 오른 것은 조 감독과 2013-14시즌의 문태종(은퇴), 단 2명에 불과하다. 당시 조 감독의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국내 선수 단일시즌 최다 평균득점 1위 기록으로 남아있다.

또한 그가 있었을 당시 LG는 1997년 프로 원년을 제외하고 KBL 역사상 유일한 팀 평균득점 100점대를 넘긴 팀으로 이름을 올렸다.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당시 LG의 화끈한 공격농구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여전히 많다. 조 감독은 2005-2006시즌을 끝으로 KCC에서 은퇴했고, 정규리그 통산 3점슛 1002개(7위), 챔피언결정전에서는 통산 558점(2위)이라는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조성원 감독은 지도자 경력도 풍부한 편이다. 2006년 여자프로농구 청주 KB 코치를 시작으로 KB 감독, 남자농구 서울 삼성 코치, 수원대-모교인 명지대 감독 등을 역임했다. KBS N스포츠에서 최근까지 농구 해설위원을 겸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도자로서 확실한 성과가 부족하다는 점, 남자프로농구 감독직은 LG가 처음이라는 것은 역시 불안요소다. 첫 사령탑을 맡았던 KB 시절은 2008년 6승 14패라는 저조한 성적에 그치며 8개월 만에 자진 사퇴했고, 삼성 코치 시절이던 2011-12시즌에는 팀이 최하위로 추락하며 김상준 감독이 경질되자 1년 만에 함께 물러나야했다. 최근에 맡은 수원대 여자팀이나 명지대 남자팀은 전력상 강팀이나 농구계 주류와는 거리가 있는 팀들이다.

챔히언결정전에 목마른 LG

LG는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유난히 목마른 팀이다. 1997년 창단 이래 부산 KT-인천 전자랜드와 함께 아직 우승 경험이 없는 3팀 중 하나다. 감독이 당장 성과를 보여줘야한다는 기대치와 부담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LG는 현주엽 감독의 스타성을 믿고 '초보 사령탑'에 3년을 맡기는 모험을 걸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물론 2018-19시즌 4강진출이나, 예능프로그램 출연으로 인한 인기몰이와 관중동원 효과 등 나름의 성과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승 실패를 비롯하여 3년간 63승 87패(2시즌 이상 재임한 LG 감독 중 최악의 승률)에 그친 정규시즌 승률이나, 팀 고유의 색깔을 잃었다는 점 등에서 '농구적인 측면'만 놓고보면 실패한 카드라고 볼 수 있다. 

조성원 감독은 이전부터 LG 사령탑 후보로 꾸준히 이름이 거론되던 인물이기는 했지만 사실 유력한 우선순위라고는 할 수 없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은퇴한 지 10여년이 넘었고 현주엽 감독처럼 미디어 노출이 많이 된 인물도 아니었던 탓에 젊은 농구팬들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우승이 절실한 구단의 눈높이를 만족시켜줄만큼 지도자 경력에서 그리 두각을 나타냈던 것도 아니다. 냉정히 말해 프로무대에서는 백지 상태에서부터 새롭게 검증을 받아야한다는 점에서는 현주엽 감독과도 크게 다를 게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조성원 감독이 기대되는 이유

그래도 기대되는 부분은 있다. 조성원 감독은 명슈터 출신으로 조성민, 강병현, 김동량 등 LG의 국내 선수 자원들의 공격력을 끌어올리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LG는 지난 시즌까지 외국인 선수에 대한 공격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고, 국내 슈터들을 활용하는 패턴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다.

조 감독 특유의 온화한 성품이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선수들과의 소통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 LG는 감독이 오히려 선수들보다 지나치게 돋보이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현주엽 감독은 젊은 사령탑이었음에도 오히려 선수들을 이끄는 면에서는 권위적이거나 유연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 시즌 성적 부진으로 침체된 팀 분위기와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리빌딩을 시작해야한다는 것은 조성원 신임감독에게 내려진 시급한 과제다. 무엇보다 조 감독이 역대 어느 사령탑도 이루지 못했던 LG의 첫 챔프전 우승이라는 숙원을 이뤄줄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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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원감독 현주엽 창원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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