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외국인 토론 예능 < 77억의 사랑 >(아래 < 77억 >)이 초기의 기획의도에서 벗어나 갈수록 산으로 가는 분위기다. < 77억 >은 전 세계 인구 77억 명을 대표하는 세계 각국의 청춘 남녀가 국제커플들의 고민이나 사례를 통해 요즘 세대들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이성에 관한 생각과 문화를 함께 이야기하는 연애 토론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방영 두 달 만에 소재 고갈과 단조로운 구성의 한계에 직면한 < 77억 >은 최근 연애에서 시사로 사실상 방향을 바꿨다. 초기에는 동거, 비혼, 프러포즈, 마마보이, 바람, 결혼식 문화, 혼전 계약서 등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주로 다뤘다면,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 육아 휴직, 신흥 종교 등 시사 프로그램에 가까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어 6일 방송분에서는 심지어 주식, 가상화폐, 부동산 등 재테크까지 주제로 등장했다.

물론 같은 날 방송된 '싱글 부모' 나 다음주 예고편에서 언급된 '성범죄' 등 젠더 문제와 연관된 주제들도 계속 나오고 있지만, 최근에는 출연자 개인의 경험담이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공감대보다는 정책이나 사회 문제 위주의 시사적인 내용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넓게보면 연애나 결혼도 그 시대의 사회적 현안이나 분위기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수 없다. 물론 주제의 범위를 넓힌다고 해서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문제는 당위성이 부족한 프로그램 콘셉트의 변화가 본래 이 프로그램이 내세운 정체성과 그다지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 77억 >은 방송 시작전부터 같은 채널의 전작이었던 <비정상회담>과 비교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외국인 출연자들이 한국어로 토론한다는 콘셉트에서 3MC 체제, 스튜디오-코너 구성과 멤버들의 자리배치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비정상회담>의 로맨스 버전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었다. 같은 포맷을 활용한 일종의 '스핀 오프'라는 점에서 색다른 시도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 77억 >은 이 프로그램만의 고유한 색깔을 찾아가기보다는 전작을 답습하는 매너리즘에 스스로 갇혀버린 것으로 보인다. 프로그램이 최근 시사 토론으로 방향을 옮겨가면서 차별화가 사라진 < 77억 >은 이제는 정말로 <비정상회담> 시즌2나 다름없게 되어버렸다. 알베르토, 타일러 등 <비정상회담> 출연진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심화시킨다. 굳이 남녀 성비를 맞추어야 할 이유도, 출연자를 청춘남녀로 한정할 필요도 없게 됐다.

포맷 변화전과 똑같은 점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성이 너무 지루하다는 것. 토론에 어울리는 시사 지식과 한국어 능력을 겸비한 출연자가 한정되어있다보니 몇몇 멤버에게 발언이 집중되거나 차라리 게스트의 존재감이 더 돋보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방송 초기에 비하여 예능적인 요소와 일상적 공감대는 갈수록 줄어들고있는 반면, 굳이 이 프로그램에서만 볼수 있는 새로운 내용이나 참신함이 없다보니, 출연자들끼리 아무리 진지한 토론을 주고받아도 지루함만 더할 뿐이다.

<비정상회담>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지만, 시사 이슈는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과 정확한 팩트 체크를 필요로 한다. 중국과 미국의 사례처럼 각국의 문화나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대목에서는 출연자들의 발언이 민감해지거나 혹은 조심스러울수밖에 없다. 또한 시사 전문가가 아닌 일반 외국인에 불과한 출연자들이 한정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깊이있는 한국어 토론을 이어가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신동엽-유인나-김희철로 구성된 연예인 3MC들도 시사토론을 진행하는 데 어울리는 구성과 거리가 멀다보니 방송 초기처럼 대화에 활발하게 참여하거나 분위기를 이끌어나가지 못하고 대본에 의존하거나 평범한 관찰자에 머무는 경우도 잦아졌다.

이처럼 < 77억 >이 처음부터 방향성을 두고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본 틀'을 구상하는 것부터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소재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연애 이슈를 두고 찬반식으로 토론을 진행한다는 식의 구성부터가 어울리지 않았다.

연애나 이성문제는 정답이 정해져 있거나 결론이 분명하게 나오기 어려운 사안이다. <미녀들의 수다>나 <마녀사냥>같은 자유롭고 편안한 '토크쇼' 포맷이 어울리는 소재를 두고, <비정상회담>스타일의 딱딱한 '시사 토론'방식으로 풀어내려고 하다보니 애초에 시작부터 '몸에 맞지않는 옷'을 입힌 셈이다.

현재 < 77억 >의 출연자는 많지만 대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인물은 몇 명되지 않는다. 고정 출연자를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대신 게스트의 비중을 유연하게 늘려서 대화 주제에 심도있게 집중하는 것이 필요해보인다. <마녀사냥>이나 <연애의 참견>처럼 1, 2부 구성을 나누거나 시청자의 사연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 77억 >은 앞으로 프로그램의 방향성에 대한 확실한 재정비가 필요해보인다. 지금처럼 어정쩡하게 <비정상회담>의 아류 이미지로 연명할 것인지, 아니면 본래의 기획 취지에 맞게 프로그램의 포맷과 구성을 다시 리빌딩할 것인지 선택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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