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블랙타운과 일본 오키나와에서 진행된 LG 트윈스의 2020 스프링캠프에서 최고의 수확 중 하나는 '선발 투수 송은범'의 재발견이다. 사실 송은범은 프로 17년 동안 560경기에 출전하면서 선발 등판은 193회에 불과(?)할 정도로 선발보다는 불펜에 더 익숙한 투수다. 실제로 송은범은 12승을 따냈던 2009년을 끝으로 지난 11년 동안 한 번도 풀타임 선발 투수로 활약했던 시즌이 없다.

그런 송은범이 올해는 류중일 감독으로부터 LG의 5선발 투수로 낙점 받았다. 지난 4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연습경기에서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던 송은범은 두 번의 자체 청백전에서도 8이닝 무실점으로 눈부신 호투를 펼쳤다. 최근 11이닝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송은범은 스프링캠프부터 이어진 연습경기 4경기에서 13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이우찬, 정용운, 여건욱 등 많은 후배 투수들이 노렸던 5선발 경쟁에서 실질적인 승자가 됐다.

송은범은 작년 시즌 LG 이적 후 25경기에서 2승 5홀드를 기록했던 핵심 불펜투수였다. 필승조로 활약했던 송은범이 선발로 올라갔다는 것은 불펜에 빈자리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류중일 감독은 송은범의 선발 전환으로 인한 우완 불펜의 부재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부상 복귀 후 몸 상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김지용과 김대현이 시즌 개막 일정이 발표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위보다는 제구로 승부하는 LG 마운드의 돌아온 마당쇠

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9라운드 65순위로 LG에 입단한 김지용은 낮은 지명순위가 말해주듯 크게 돋보이는 투수가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입단 첫 해 어깨를 다쳐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한 김지용은 프로 입단 후 5년 동안 1군에서 고작 5경기 밖에 등판하지 못했다. 추격조로 활약했던 2015년 24경기에서 1승 1패 평균자책점 4.13으로 가능성을 보이지 못했다면 김지용의 프로생활은 일찌감치 막을 내렸을 수도 있다.

김지용은 2016년 51경기에 등판해 3승 4패 17홀드 3.57을 기록하며 LG의 필승조로 우뚝 섰다. 177cm 81kg으로 투수로는 다소 왜소한 체격을 가진 김지용은 평범한 구위를 극복할 수 있는 뛰어난 제구력과 공격적인 투구로 마운드에서 자신만의 경쟁력을 가졌다. 김지용은 2017년 4승 3패 3세이브 8홀드 5.09로 성적이 다소 떨어졌지만 2년 연속 50경기 이상 등판하며 불펜투수의 필수조건 중 하나인 '연투 능력'을 인정 받았다.

하지만 류중일 감독을 비롯한 LG 코칭스태프는 '좋은 투수를 오래 활용하려면 그만큼 아껴 써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7월까지 무려 48경기에 등판하던 김지용은 7월 28일 kt 위즈전에서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자진 강판했다. 검사결과 김지용은 팔꿈치 인대가 파열됐다는 진단을 받았고 곧바로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으며 시즌 아웃됐다. 김지용은 LG가 3년 만에 가을야구로 복귀한 작년 시즌 1군에서 단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LG는 작년 시즌 타일러 윌슨과 케이시 켈리, 차우찬의 뒤를 이을 4,5선발 요원이 부족했음에도 선발 유망주 김대현을 불펜으로 활용하고 한화 이글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송은범을 영입했다. 그만큼 필승조 역할을 해줄 불펜 투수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만약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동안 38홀드를 기록했던 김지용이 있었다면 류중일 감독과 최일언 투수코치의 고민은 한결 줄었을 것이다.

2년 만에 스프링캠프에 참가한 김지용은 아직 연습경기 등판을 하진 못했지만 큰 무리 없이 훈련 과정을 소화하며 착실히 시즌을 준비했다. 김지용은 프로 통산 181경기에서 203.2이닝을 소화하면서 볼넷이 단 56개에 불과할 정도로 제구력이 검증된 투수다. 김지용은 광속 마무리 고우석을 거느리고 있는 LG에서 반드시 필요한 유형의 우완 셋업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기복 심했던 김대현, 작년 후반기 구위를 시즌 내내 유지할 수 있다면...

두산 베어스의 토종 에이스 이영하는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팔꿈치 수술을 받으며 동기들보다 데뷔가 늦었다. 하지만 2017년 3승을 올리며 프로 무대에 등장한 이영하는 2018년 10승 투수로 도약했고 작년 시즌에는 17승 4패 3.64의 성적으로 다승 공동 2위에 오르며 리그에서 가장 전도유망한 우완 투수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영하 정도의 약진은 아니었지만 이영하의 고교 동창 김대현 역시 작년 시즌 눈부신 발전을 이뤄내며 LG팬들을 설레게 했다.

이영하와 선린인터넷고의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LG의 1차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한 김대현은 프로 2년 차가 되던 2017년 LG의 5선발로 활약하며 5승 7패 5.36을 기록했다. 적어도 프로 2년 차까지 보여준 실적과 가능성은 김대현이 이영하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김대현은 데뷔 후 처음으로 100이닝을 돌파한 2018년 2승 10패 7.54로 뭇매를 맞으며 커다란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작년 시즌 첫 선발 등판 경기였던 4월 19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3.2이닝 8피안타 9실점을 기록한 김대현은 2군에서 한 달 간 교정기간을 거친 후 다시 1군으로 돌아왔다. 김대현은 1군 복귀 후 구위가 한결 나아지긴 했지만 2승 4패 5.59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쳤다. 하지만 김대현은 후반기 들어 눈부신 투구로 작년 LG의 최고 히트상품이었던 고우석 못지않은 대활약을 펼쳤다.

김대현은 후반기 23경기에 등판해 3승 9홀드 1.52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전반기 .308에 달했던 김대현의 피안타율은 후반기 .180으로 뚝 떨어졌다. LG가 작년 시즌 3년 만에 가을야구에 복귀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 프로 4년 차를 맞은 김대현의 성공적인 불펜 변신이 큰 몫을 차지했다(김대현은 키움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2경기에 등판해 3이닝 4실점으로 부진하는 '인간미'를 선보이기도 했다).

시즌이 끝난 후 오른쪽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김대현은 스프링캠프에서도 훈련과 재활을 병행하며 시즌을 준비했다. 만약 김대현이 작년 후반기 같은 구위와 성적을 유지한다면 LG는 정우영과 김대현, 고우석으로 연결되는 젊고 막강한 뒷문을 구성할 수 있다. LG가 올해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작년에 전혀 다른 전반기와 후반기를 보낸 김대현이 '후반기 모드'로 풀타임을 보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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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LG 트윈스 송은범 김지용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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