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행> 포스터

영화 <비행> 포스터 ⓒ 아이 엠(eye m) , kth

 
세계 연극계의 한 획을 그은 독일의 극작가 겸 연출가 브레히트는 '소격효과(Verfremdungseffekt)'라는 기법을 통해 연극계 패러다임을 바꿨다. 이 효과는 관객이 주인공에게 몰입하는 게 아닌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관찰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한 마디로 극에 강하게 빠져들어 공감과 위로를 얻기 보다는 한 발짝 뒤에 인물들을 바라보며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의 누벨바그, 미국의 뉴웨이브 시네마 등 기존 영화계의 틀을 깨고자 했던 운동들은 이 소격효과를 통해 주인공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바라봐 주고자 하는 시도를 선보였다. <비행>은 최근 문화계의 트렌드라 할 수 있는 공감과 위로 대신에 이런 소격효과를 통해 인물의 행동에 대한 생각과 판단을 관객들에게 맡기는 다소 파격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비행> 스틸컷

<비행> 스틸컷 ⓒ 아이 엠(eye m) , kth

 
'비행(飛行)하기 위해 비행(非行)할 수밖에 없었던'이라는 언어유희를 활용한 소개 문구처럼 작품은 하늘 위로 날아오르기 위해 나쁜 행동을 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근수는 목숨을 걸고 탈북을 했고 탈북한 형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자신과 형이 함께 남한에서 살아갈 꿈을 꾼다. 하지만 형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한 만큼 근수의 마음속에는 돈에 대한 걱정이 크다.
 
지혁은 밑바닥 인생이다. 전과가 있는 그는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며 조그마한 방에서 직원과 함께 생활한다. 자기 방 하나 없는 그는 가게의 경영난으로 월급이 밀리자 슬슬 불만을 품게 된다. 지혁이 근수의 집으로 배달을 가고 사건이 발생해 근수가 지혁을 폭행하면서 두 사람은 더럽게 엮이게 된다. 지혁을 폭행하면서 합의금이 필요한 근수를 지인은 꼬드기게 되고 그에게 마약 운반책을 맡기고자 한다.
 
엉뚱하게도 근수의 집에 들이닥친 지혁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일은 꼬이게 된다. 지혁은 마약을 우리가 처분하면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다고 유도하고 근수는 그 말에 넘어간다. 두 사람은 시가 20억 원에 달하는 필로폰을 들고 도주한다. 그들은 이 비행(非行)이 밑바닥 삶을 털어내고 하늘 높이 오를 수 있는 비행(飛行)이 되기를 원한다.
  
 <비행> 스틸컷

<비행> 스틸컷 ⓒ 아이 엠(eye m) , kth

 
조성빈 감독은 이 스토리에 공감과 위로를 허락하지 않는다. 잘못된 길을 택한 청춘들에게 어쭙잖은 공감을 보내며 사회가 나쁜 거라 외치는 위로를 바라는 대신 청춘들이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면서도 힘이 넘치게 담아낸다. 마약 판매 과정을 디테일하게 담아내며 인물들의 비행(非行)을 섬세히 보여주며 편집점을 거칠게 잡아내며 감정을 이입할 흐름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돈이 인생의 전부라 여기고 돈을 통해 성공하고 싶어 하는 20대 청춘들의 욕망과 실수를 조명한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두 사람은 사회에서 올라서는 방법이 오직 돈 밖에 없다고 여기며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 어떤 방법도 허용된다고 여긴다. 그들은 넘치는 에너지를 범죄에 사용하지만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친구에게 진 푼돈을 갚거나 성매매 여성을 부르는 데 사용하는 지혁의 모습은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비행> 스틸컷

<비행> 스틸컷 ⓒ 아이 엠(eye m) , kth

 
관객들은 한 발짝 뒤에서 이들의 행동을 바라보며 늪에 빠진 청춘들의 모습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시간을 지니게 된다. 감정적인 공감을 배제한 대신 청춘이 지닌 에너지와 디테일한 사건 묘사를 통해 몰입을 더한다. 이런 시도는 사회의 문제를 차갑고 관조적으로 조명하는 다양성영화 본연의 색을 강조하는 미덕이라 할 수 있다.
 
<비행>은 청춘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공감, 아프지 않아도 된다며 안아주는 영화가 아니다. 밑바닥 인생의 청춘들이 위로 올라가기 위해 오물을 뒤집어쓰는 다소 격한 영화다. 어두운 사회의 뒷골목을 차가운 시선을 지닌 카메라로 담아내던 다양성 영화의 모습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생각과 판단을 요구하는 이 영화의 자세는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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