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만의 올림픽 본선무대 진출에 성공한 여자농구 대표팀의 새로운 사령탑은 누가 될까. 최근 대한민국 농구협회가 실시한 여자농구 국가대표 감독 공개모집에 지원한 총 4명의 지도자가 공개됐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6일 오후 마감한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 공개모집에 김태일, 전주원, 정선민, 하숙례 등 총 4명의 농구인이 지원했음을 발표했다. 농구협회는 10일 경기력향상위원회를 통해 면접 등 이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여자농구 대표팀은 2월 초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최종 예선을 통과하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예선을 지휘한 이문규 감독이 2월 말로 계약이 만료되었고 예선 과정에서 혹사 논란과 전술 부재 등 여러 가지 구설수에 휘말림에 따라 협회는 이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하고 올림픽 본선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의 공개 모집에 나섰다.
  
 24일 오후 충남 아산시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하나은행 - 우리은행 경기가 코로나19 영향으로 관중없이 진행되고 있다. 여자프로농구는 지난 21일 부터 무관중 경기가 이어지고 있다.

여자프로농구 경기장. ⓒ 연합뉴스

 
감독과 코치 후보가 '2인 1조'를 이뤄 함께 지원하도록 하는 등 지원 방식과 평가 기준에도 변화를 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김태일 후보는 양희연 전 선수를, 전주원 후보는 이미선 삼성생명 코치, 정선민 후보는 권은정 수원대 감독을, 하숙례 후보는 장선형 전 선수를 각각 자신을 보좌할 코치 파트너로 지명했다.

당초에는 WKBL 현역 감독의 국가대표 겸임이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었으나 정작 프로팀 감독중에서는 지원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두 팀을 겸임해야 하는 부담과 촉박한 준비시간, 올림픽 성적에 대한 압박 등이 이유로 꼽혔다.

이번 공모에서 눈에 띄는 것은 4인의 감독 후보중에서 여성 농구인만 무려 3명이나 등장했다는 점이다. 김태일 감독을 제외하면 전주원, 정선민, 하숙례 코치는 모두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레전드들이다.

과거에도 정미라, 박찬숙 등 여성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주로 존스컵이나 동아시아대회처럼 비중이 낮은 친선대회였거나 단기적인 임시 감독 성격이 강했다. 여자농구 대표팀이 출전할 수 있는 가장 큰 무대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 본선에서 여성 감독이 지휘봉을 잡게 된다면 한국농구 사상 최초가 된다.

WKBL에서도 여성 감독을 보기는 흔치 않다. 여자프로농구에서 여성이 정식 감독을 맡은 것은 2012년 KDB생명 이옥자 감독과 현재 유영주 BNK 감독, 단 2명뿐이다. 하지만 이옥자 감독은 성적부진으로 한 시즌 만에 사퇴했고 유영주 감독이 이끄는 BNK도 신생팀의 한계를 드러내며 올 시즌 최하위에 그칠 만큼 여성 감독들의 족적은 아직까지 미미한 편이다.

이번 대표팀 감독 응모에 지원한 여성 농구인들도 모두 코치들이다. 특히 전주원 아산 우리은행 코치와 정선민 전 인천 신한은행 코치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 멤버이자 '레알 신한'의 전성기를 이끌며 한국 여자농구의 전설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인물들이다. 하숙례 신한은행 코치는 2018년 아시안게임과 농구월드컵, 도쿄올림픽 최종 예선 등에서 코치로 활약하며 대표팀 경험이 가장 풍부한 게 강점이다.

시대 흐름상 여성 농구인들도 지도자로서 능력을 증명할 기회가 주어질 때가 된 것은 맞다. 다만 감독으로서의 첫 데뷔무대가 다른 대회도 아닌 '올림픽 본선'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 자칫 파격을 넘어 위험한 도박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의 현역 시절 명성이나 여자농구에 대한 열정은 흠잡을 데가 없지만 코치와 감독의 역할은 엄연히 다르다.

경력 면으로 볼 때는 김태일 감독이 가장 유리하다. 공모 지원자 중 유일하게 감독 경력자인 데다 2004년 겨울리그에서 금호생명을 이끌고 창단 첫 우승을 이끄는 등 성과를 낸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다. 하지만 2006년 이후로는 국내 농구 현장과 떨어져 있었다는 점이 단점이다. 김 감독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중국 여자프로농구에서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현재는 야인으로 머물고 있다.

대한민국 농구협회가 지난 대표팀 감독 공개모집 당시 이전부터 구설수가 많았던 이문규 감독에게 유독 높은 점수를 주고 몇 년씩이나 기회를 보장 한데서 알 수 있듯, 보수적이고 변화를 꺼리는 성향이 강하다. 원로들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힘든 경기력향상위원회가 그간의 전례를 깨고 모험을 감수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여성 감독의 파격 발탁을 선택할지는 미지수다.

냉정히 말하면 이번에 응모한 4명의 감독 후보 모두 성별을 떠나 커리어나 능력 검증 면에서 올림픽 대표팀을 맡기기에는 다소 아쉬운 부분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가뜩이나 여자농구에서 감독을 맡을 인재풀도 부족한 상황인데, 능력 있는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추대해도 모자랄 판에 공개모집에 지원하는 형식으로 한정되다 보니 후보군은 더욱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시간은 촉박하게 다가오고 누군가는 무거운 책임을 맡아야한다. 협회가 과연 누구에게 여자농구와 올림픽의 운명을 맡길지, 농구팬들은 협회의 최종선택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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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원 정선민 여자농구대표팀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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