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가요계에 한 시대를 풍미했다 사라진 가수들을 소환하는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시즌3>(이하 <슈가맨3>)가 6일 14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마지막회에는 영화 <클래식> OST 로 유명한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부른 자전거 탄 풍경과 90년대 중반 대표적인 '원히트 원더' '버스 안에서'를 부른 자자를 소환했다. 자탄풍과 자자는 나란히 100불을 성공시키며 <슈가맨3>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슈가맨3>가 14회 만에 종영하면서 38회까지 방송된 시즌1과 19회까지 방송된 시즌2에 비해 조금 일찍 막을 내렸다. 하지만 방송 후 신드롬에 가까운 화제를 몰고 온 양준일을 비롯해 교통사고 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완전체로 <슈가맨3>에 출연해 많은 감동을 안겨준 더 크로스, <복면가왕> 최초로 한 팀에서 두 명의 가왕을 배출했던 씨야, 2000년대 중반 미니홈피 배경음악 1순위였던 < Y >를 부른 프리스타일 등이 출연해 시청자들의 추억을 소환했다.

시즌1부터 시즌3까지 100팀이 넘는 많은 가수가 소환됐지만 시청자들은 아직 배가 고프다. 여전히 <슈가맨>을 통해 소환되지 못한 추억의 가수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아직 <슈가맨>에서 보고 싶은 가수를 만나지 못한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슈가맨4>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만약 제작진들이 <슈가맨4>를 계획하고 있다면 하루 빨리 이 가수들을 시즌4에 소환할 수 있도록 섭외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수많은 '후토크'를 기대할 수 있는 슈가
 
 슈가는 활동 당시 그리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해체 후 대중들에게 익숙한 스타들로 성장했다.

슈가는 활동 당시 그리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해체 후 대중들에게 익숙한 스타들로 성장했다. ⓒ 스타월드

 
'슈가맨'에서 섭외하기 힘든 가수의 대표적인 유형은 지금은 연예계가 아닌 전혀 다른 업종에 종사하거나 해외에 거주해 귀국이 쉽지 않은 경우다(생계를 위해 미국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양준일을 모셔 온 <슈가맨3> 제작진의 섭외력이 인정받는 이유). 반대로 그 가수가 지나치게 유명한 스타로 성장했을 경우에도 섭외가 쉽지 않다. 지금도 아쉬울 것이 없는 스타가 굳이 <슈가맨>에 출연해 과거의 흑역사(?)를 끄집어 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중들은 그 이유 때문에 더욱 스타의 풋풋했던 시절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 한다. 아마도 이 조건에 가장 맞아 떨어지는 팀이 2001년에 데뷔해 5년이라는 길지 않은 역사를 남기고 해체된 걸그룹 슈가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슈가의 황정음은 흥행보증수표 연기자로 성장했고 박수진은 원조 한류스타이자 주지훈, 정려원, 우도환 등이 소속된 배우 전문 매니지먼트사의 최대주주 사모님(?)이 됐다.

이렇게 쟁쟁한 이들이 속해 있던 팀이었지만 사실 슈가는 활동 당시 그렇게 큰 인기를 얻진 못했다. 막 데뷔했을 때는 S.E.S와 핑클이 나란히 활동을 접으며 걸그룹 시장이 크게 위축됐고 이듬 해 여름에는 '2002 월드컵 광풍'이 불었다. 당시 이 열풍에서 살아난 가수는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른 윤도현밴드 밖에 없었다(윤도현 밴드는 월드컵 당시의 인기 덕분에 1집에 들어 있는 < 사랑 TWO >가 역주행하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슈가가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 받은 노래, 다시 말해 '슈가송'으로 가장 적당한 곡은 2003년에 발매된 2집 타이틀곡 'Shine'이다. 멤버들의 개성 있는 보컬을 살린 미디움 템포의 발라드 'Shine'은 대부분의 무대를 라이브로 소화하며 탄탄한 실력을 뽐냈다. 당시 팀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아 메인보컬 및 센터 역할을 하던 아유미는 "이런 사랑에 감사해요"로 이어지는 후렴구에서 가사에 맞춰 관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안무를 소화하기도 했다.

물론 'Shine'은 차트를 점령했던 히트곡이 아니기에 <슈가맨>에서 많은 불을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황정음과 박수진, <온에어>,<찬란한 유산>,<시크릿 가든> 같은 인기드라마에 출연했던 육혜승(배우 활동명 한예원), 그리고 자타공인 슈가의 에이스였던 아유미가 뭉친다면 엄청난 양의 '후토크'가 나올 것이다. 여기에  '영상메시지' 등을 통한 배용준의 외조까지 나온다면 이보다 완벽한 그림은 없을 것이다.

두 MC 인맥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섭외할 수 있는 패닉
 
 패닉은 공식적으로 해채하지 않았지만 신곡을 발표한지는 무려 14년이 넘게 흘렀다.

패닉은 공식적으로 해채하지 않았지만 신곡을 발표한지는 무려 14년이 넘게 흘렀다. ⓒ 케이앤씨뮤직

 
90년대 초,중반 서태지와 아이들의 서태지와 N.EX.T의 고 신해철, 공일오비의 정석원은 대중 음악계의 '3대 천재'로 불렸다. 하지만 겸손한 듯 거만한 공일오비의 정석원은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을 천재로 부르는 시선이 부담스럽다며 새 시대를 이끌 '3대 천재 음악인'을 소개했다(물론 친분이나 취향에 따른 의견일 수도 있다). 정석원이 지명한 차세대 전재들은 토이의 유희열과 솔리드의 정재윤, 그리고 전람회의 김동률이었다.

당시 또래 뮤지션들보다 데뷔가 조금 늦었던 패닉의 이적은 이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적 역시 90년대 중반 '차세대 천재 뮤지션'에 포함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1995년10월 1집을 발표하며 데뷔한 패닉은 난해한 느낌의 타이틀곡 '아무도'가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앨범 구석에 숨어 있던 수록곡 '달팽이'가 엄청난 사랑을 받으면서 대반전을 만들었다. 패닉은 '달팽이'에 이어 '왼손잡이'까지 히트시키며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패닉은 1996년 2집 <밑>을 통해 대중의 기대를 완전히 배신해 버렸다. '혀', '벌레', '냄새',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같은 기괴한 제목의 노래들로 가득한 패닉 2집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음악팬 중에는 패닉2집을 패닉, 그리고 이적이 만든 앨범 중 최고의 명반으로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 패닉은 1998년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가 들어 있는 3집을 끝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이적이 솔로와 밴드 긱스, 김진표가 솔로와 밴드 노바소닉으로 활동을 이어가다가 다시 뭉친 패닉은 2005년 12월 조금은 갑작스럽게 4집을 발표했다. 패닉은 4집에서 '로시란테'와 '정류장'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팬들을 기쁘게 했지만 김진표의 개인사로 인해 활동을 길게 하지 못했다. 이적과 김진표는 패닉 4집을 마지막으로 10년 넘게 패닉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지 않았지만 아직 공식 해체를 발표한 적은 없다.

사실 패닉은 <슈가맨>의 MC 유재석과 유희열을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섭외가 가능하다. 유재석은 지난 2011년 <무한도전-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를 통해 이적과 '처진 달팽이'를 결성한 바 있다. 게다가 이적은 토이 앨범의 객원보컬로 참여했을 만큼 유희열과도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두 MC의 인맥을 통해 이적을 캐스팅하고 이적이 '아는 동생' 김진표를 데려 오면 <슈가맨4>에서 패닉을 소환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연년생 세 자매 한스밴드가 들려준 순수한 음악들
 
 친자매 3명으로 구성된 한스밴드는 순수한 이미지로 또래 학생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친자매 3명으로 구성된 한스밴드는 순수한 이미지로 또래 학생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주)웰메이드 예당

 
1970,80년대 음악팬들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인 록밴드 산울림을 기억할 것이다. 산울림의 음반은 2007년 음악전문 웹진 가슴네트워크에서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사 100대 명반에서 5,6위에 올라 있을 만큼 대단한 밴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산울림이 형제 밴드라는 점인데 어떻게 한 집안에서 이처럼 대단한 인재들이 나올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비록 산울림 같은 불세출의 밴드가 되진 못했지만 1990년대 후반에도 대중들에게 신선한 매력을 안겨 주던 가족 밴드가 있었다. 바로 지난 1998년 1집 앨범으로 데뷔했던 자매 밴드 한스밴드였다. 한스밴드는 데뷔 년도를 기준으로 맏언니 김한나가 중3, 둘째 김한별이 중2, 셋째 김한샘이 중1이었다(김한샘 밑으로 1989년생 막내 김한집도 있다). 한스밴드는 김한나가 드럼, 김한별이 베이스와 바이올린, 김한샘이 키보드와 섹소폰을 연주했다. 

1집 타이틀곡은 학교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소녀의 순수한 마음을 담은 '선생님 사랑해요'.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와 김건모의 '스피드', 쿨의 '슬퍼지려 하기 전에' 등을 만든 최준영이 쓴 발라드였다. 전주에서 바이올린을 켜던 김한별이 언니가 노래를 부르는 사이 베이스를 메고 연주하는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시험을 망친 학생이 오락실에서 실직한 아빠와 마주친다는 웃픈 내용의 '오락실' 역시 한스밴드를 대표하는 히트곡이다.

사실 노래의 분량은 큰언니 김한나가 가장 많았고 비주얼 멤버는 둘째 김한별이었지만 한스밴드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멤버는 단연 셋째 김한샘이었다. 하회탈 같은 귀여운 눈웃음이 당시 가장 잘나가던 개그맨 남희석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희석은 한스밴드의 2집 '호기심' 활동 당시 클놈(지상렬, 염경환)과 함께 한스밴드의 컴백 무대에 서기도 했고 김한샘과 빵대신 밥으로 만든 햄버거 CF를 같이 찍기도 했다.

하지만 한스밴드의 어머니는 세 딸이 학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만 활동하길 원했고 이는 수익을 내길 원하는 회사의 방침과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한스밴드는 2001년 3집 <친구야 사랑해>를 끝으로 사실상 활동을 접었고 2007년에 발표한 4집은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한스밴드가 <슈가맨4>에서 초기의 히트곡 '선생님 사랑해요'나 '오락실'을 부른다면 충분히 많은 시청자들의 추억을 소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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