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일진 감독은 국내에서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산악 다큐멘터리 영화를 시도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 <히말라야> 특수촬영(VFX) 원정대장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 등반을 촬영하기 위해 원정대장으로 참여했다가 산사태를 만나 생을 마감하며 영화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산을 향한 그의 진심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알피니스트-어느 카메라맨의 고백>은 늘 카메라 뒤에서 산을 담아냈던 임일진 감독이 카메라 앞에 서서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산악인을 꿈꾸었지만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그 복잡한 감정처럼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알피니스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영광이 아닌 그 이면에 죽음과 고통을 보여주며 말이다.

'알피니스트(Alpinist)'는 모든 계절에 걸쳐 높은 산의 바위나 얼음 같은 지형을 통해 벽을 오르거나 정상에 오르는 예술적 행위를 말하는 '알피니즘(Alpinism)'을 실천하기 위해 높고 험난한 산을 대상으로 모험적인 도전을 하는 등산가를 뜻하는 말이다. 지난 2019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알피니스트들의 도전은 가슴 뛰는 열정과 감동을 선사하며 그들이 오르는 자리를 영광의 길로 보이게 만든다.
 
 <알피니스트> 스틸컷

<알피니스트> 스틸컷 ⓒ (주)민치앤필름


작품은 이런 영광의 길 뒤에 위치한 죽음을 보여준다. 임일진 감독은 다큐 촬영을 위해 알피니스트들과 함께 산을 올랐고 그들의 죽음을 카메라에 담았다. 함께 산에 오르며 그 감정을 공유한 그에게 동료의 죽음이란 언젠가는 이야기해야 될 주제이자 꼭 한 번 카메라에 담아야 될 장면이었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 선 그는 덤덤하게 현실적인 여건을 말한다. 그가 택한 단어와 어투에서는 알피니스트의 로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직장인이 매일 출근을 하듯 알피니스트가 하는 일은 매번 산에 오르는 것이라 말한다. 마치 해야 될 일이기에 하는 거라 답하고 영광 뒤에 숨겨진 고통에 대해 언급한다. 등산가가 되는 일에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후원을 받아야 된다. 후원을 받기 위해서는 이전에 했던 것보다 더한 도전이 필요하다. 그래서 히말라야의 8000m 이상의 고봉 14개를 정복하는 도전은 16개로 바뀌며 계속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작품에서도 촐라체 36시간 왕복이라는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은 김형일 대장과 장지명 대원, 무산소 등반을 도전했다 하산 중 숨을 거둔 서성호 대원 등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목숨을 잃은 이들이 여러 명 등장한다. 그들 곁에 임일진 감독은 함께했고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 그에게 숭고함과 로망은 어쩌면 좋게 만은 받아들이기 힘든 미디어의 포장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등산계의 어두운 부분을 폭로하고 잘못된 영웅주의를 비판하는 영화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알피니스트> 스틸컷

<알피니스트> 스틸컷 ⓒ (주)민치앤필름


그랬다면 수많은 산악인들이 앞서 이 영화의 시사회를 관람하고 깊은 공감과 슬픔 또는 감동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임일진 감독을 오랜 시간 옆에서 지켜봐 온 김민철 감독은 "오직 영광만을 위해서 이렇게 큰 위험에 도전한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디어가 조명하는 영광과 등산에 대한 로망 만을 생각하고 산악인들이 도전을 한다고 여기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왜 산을 올라야만 하는지'에 대한 '알피니스트'로서 임일진 감독의 복잡한 심리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감독은 자신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영광만이 아닌 고통도 보여줘야만 했고 수많은 산악인들이 공감하는 '나는 왜 산에 올라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진심이 담긴 답변을 보여준다. 이 답변은 스스로 알피니스트가 아니라 말하지만 최고의 알피니스트 중 한 사람이었던 그의 삶이 지닌 색깔이 진하게 묻어있기 때문에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알피니스트-어느 카메라맨의 고백>은 산을 너무나 사랑했던 한 남자의 담담한 고백이 다큐가 주는 매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극영화보다 더 예기치 못하고 상상할 수 없는 감정을 부여한다. 영광도 고통도 다 바라보면서 산에서 느꼈던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담아내는 이 영화는 카메라가 담아낼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알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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