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사 새옹지마'(人生萬事 塞翁之馬)라는 표현처럼 행복과 불행은 늘 동시에 온다. 아시아 첫 EPL 50골 고지 돌파,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100번째골, 개인 첫 5경기 연속골 등 화려한 기록을 남기며 승승장구하던 손흥민에게 돌연 부상이라는 악재가 찾아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 구단은 18일(한국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손흥민이 지난 애스턴 빌라와 경기 도중 오른쪽 팔이 부러져 수술을 받게 됐다고 발표했다. 재활기간까지 감안하면 두 달 이상의 공백이 불가피하고 최악의 경우 시즌 아웃될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손흥민은 2017년 8월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 예선 카타르 원정 경기에서도 같은 부위를 다쳐 수술대에 오른바 있다.

최근 상승세이기에 더욱 안타까운 부상이다. 손흥민은 해리 케인이 부상을 당하고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인테르로 이적한 데다 델레 알리마저 슬럼프에 빠진 가운데 무너진 토트넘의 DESK 라인에서 유일하게 제 몫을 해주며 에이스 역할을 하던 상황이었다.

손흥민은 이미 빌라전 초반부터 상대 선수와의 충돌로 오른팔에 통증을 호소했고 경기 내내 몸상태가 불편한 모습을 보였다. 팔이 부러진 상태에서도 풀타임을 소화하며 결승골 포함 2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다는 이야기가 된다. 손흥민의 강인한 정신력과 투쟁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쩌면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기도 하다. 많이 부각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그동안 손흥민은 커리어 내내 큰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손흥민처럼 스피드와 활동량을 주무기로 삼는 공격수들이 서른 즈음만 되도 부상과 노쇠화에 시달리는 경우가 잦다는 것을 감안할 때 손흥민의 내구성이 돋보였던 부분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사이에 손흥민의 위상이 높아지며 소속팀과 대표팀 모두 출전시간과 경기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상대의 집중견제 대상이 돼 부담도 높아졌다. 이미 오른팔 부상 이전부터 체력저하와 잔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손흥민은 올시즌 각종 대회에서 16골 9도움을 기록중이었다. 최근의 페이스를 감안할 때 자신의 시즌 최다 득점인 2016~2017시즌의 21골 기록을 경신할 수 있다는 기대도 높았지만 부상으로 물거품이 될 상황에 놓였다.

손흥민 개인으로서는 유독 악재가 많은 시즌이기도 하다. 에버턴전과 첼시전에서 잇달아 레드카드를 받으며 공백기를 보냈다. 특히 에버턴 안드레 고메즈의 발목골절을 불러온 백태클로 한동안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손흥민을 토트넘으로 데려온 사령탑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그런데 손흥민도 토트넘도 상승세를 탈만한 시점에서 이번 부상이 또 발목을 잡았다. 

토트넘은 손흥민의 활약에 힘입어 최근 5경기에서 4승 1무를 기록중이었고 리그순위도 5위로 뛰어올랐다. 리그 2위 맨체스터 시티가 파이낸셜 페어플레이(FFP) 위반으로 유럽축구연맹(UEFA)으로부터 챔피언스리그 2년 출전 정지의 중징계를 받게 되었다는 것도 UCL 티켓 경쟁 속 갈길 바쁜 토트넘에겐 호재였다. 

하지만 라이프치히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전과 EPL 첼시전 등 본격적으로 올시즌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경기들을 앞둔 상황에서 손흥민의 장기 이탈은 치명적이다. 수비축구의 대가라는 무리뉴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도 토트넘은 18경기 21실점에 그치는 불안한 수비력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제는 케인에 이어 손흥민이라는 팀내 최고의 공격무기까지 잃게됐다. 자칫하면 올시즌도 무관에 그치는 것을 넘어 다음 시즌 UCL 티켓도 장담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지난 몇 년간 다니엘 레비 회장이 지나치게 인색한 투자로 전력보강에 소홀했던 것이 올시즌 전례없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꼴이다. 손흥민의 빌라전 부상이 아니었다고 해도 가뜩이나 1주일에 2~3경기를 치러야 하는 빡빡한 강행군에서 체력이나 부상 문제가 나오지 않는 게 더 힘들어 보인다. 

케인이 부상당한 이후에 현재 토트넘 1군에 정통 스트라이커는 한 명도 없을 만큼 열악한 선수층은 빅클럽을 노리는 구단이 맞나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손흥민의 부상은 불운일지 몰라도 토트넘의 위기는 인과응보에 가깝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도 '주장' 손흥민의 공백을 대비해야 한다. 다행히 대표팀에겐 당장 손흥민의 공백이 크지는 않을 전망이다. 벤투호는 오는 3월 26일과 31일 각각 투르크메니스탄과 홈경기, 스리랑카와 원정경기를 앞두고 있는데 손흥민이 없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고 이겨야만 할 상대들이다. 다만 대표팀에서 본인이 직접 골을 넣지 않아도 상대 수비를 2~3명씩 끌고다니며 동료들의 활약할 공간을 만들어주던 손흥민의 존재감이 사라진 건 분명히 아쉬운 부분이다.

어쩌면 '손흥민 없는 축구'를 펼치는 시간동안 벤투 감독의 위기관리능력과 플랜 B를 확인해볼 수 있다. 벤투 감독은 지난해 유럽파가 없는 상황에서도 동아시안컵을 당당히 우승으로 이끌었다.  손흥민의 혹사 논란을 비롯하여 주전 멤버와 점유율 축구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평가를 받았던 벤투 감독으로서는 이 기회에 새로운 변화를 시험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사실 손흥민은 소속팀에서의 활약과 달리, 벤투호에서는 특유의 득점력을 좀처럼 살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손흥민은 부상이 아니었다면 3월 A매치에서도 대표팀에 소집될 것이 확실했는데 이미 체력적 부담이 한계치에 이른 상황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는 보장은 없었다.

회복기간을 고려하면 손흥민의 대표팀 복귀전은 6월에 열리는 북한-레바논전(홈)이 될 것이 유력하고 최종예선 진출의 운명도 여기에서 갈리게 될 전망이다. 비록 원치않은 강제 휴식기를 맞이하게 됐지만 차라리 이 기회에 피곤한 몸을 추스르고 완벽한 몸상태로 돌아오는 게 손흥민에게나 대표팀에게나 더 전화위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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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부상 토트넘홋스퍼 벤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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