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인 앤 글로리> 포스터

영화 <페인 앤 글로리> 포스터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영화 <페인 앤 글로리>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관계의 회한, 물밀듯 밀려오는 후회를 쓴 유서 같다. 40여 년 동안의 작품 활동을 회고하는 여운도 상당하다.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창작활동을 이어가겠다는 희망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유효한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작품답게 강렬한 색감과 미장센은 눈을 찌르듯이 매혹적이다. 감독의 페르소나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필두로 꾸준히 다수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페넬로페 크루즈와도 재회했다.

주연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페인 앤 글로리>로 제72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감독 자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외모부터 섬세한 행동하나까지 후회에서 희망으로 점철되는 과정을 밀도 있게 완성했다.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스틸컷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스틸컷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영화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첫사랑, 일생일대의 강렬한 사랑, 어머니를 향한 사랑, 영화에 대한 열정을 그렸다. 최근 어머니의 죽음과 통증 때문에 세상과 단절한 살바도르(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친구, 연인, 꿈과 조우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갑자기 찾아온 창작의 위기 앞에 속수무책인 영화 감독 살바도르는 최근 자신의 영화 <맛>을 다시 보게 된다. 32년 만에 본 영화 때문일까? 갑자기 의지가 타오르고 창작욕이 솟아난다. 무엇보다도 당시 연기가 맘에 들지 않아 시사회 직후 의절한 배우 알베르토(에시어 엑센디아)를 재평가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알베르토를 찾아가는 데 성공한다. 영화 <맛>의 리마스터링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약물에 손을 댄다. 세월이 약인가 보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도 지금은 받아들일 수 있다. 혹시 끝 모를 고통을 덜어줄지도 모른다. 서서히 살바도르는 환각의 상태로 빠져든다.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스틸컷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스틸컷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한편, 오랫동안 영화와 담 쌓고 지내던 살바도르는 우연히 집에 들른 알베르토에게 단편 <중독>을 들킨다. 단숨에 매료된 알베르토는 무대에 올리게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다시 살바도르를 통해 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렇게 1인극으로 연극 무대에 서고 뜻하지 않은 사람과 만나게 된다.

연극 <중독>은 중독될 수밖에 없던 솔직한 고해성사다. 자신의 과거와 만나며 죽어버린 현재에 생기를 넣는다. 어린 시절의 가난, 어머니, 성(性) 정체성, 사랑, 꿈에 관한 이야기다. 그동안 고통을 숨기기 바빴지만 드러낼 때야 비로소 치유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스틸컷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스틸컷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살바도르는 어릴 적 남다른 재주를 지닌 낭중지추였다. 합창단 솔로이스트가 되기도 했고 영화 감독이 되어 세계 여러 곳을 다니기도 했다. 그를 괴롭히는 이명, 두통, 요통 등 때문에 해부학도 공부했다.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사랑은 어려웠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기도 쉽지 않았다. 성공과 함께 갑자기 찾아온 슬럼프, 어머니와의 작별은 그를 더욱 고통 속으로 안내했다.

고통은 외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마음의 괴로움이 동반된 총체적인 아픔이며 창작의 근원이었다.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음습한 동굴 속에 자신을 밀어 넣었던 살바도르가 은둔 생활을 깨고 밖으로 나올 수 있던 계기도 고통이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구나 후회를 하며 산다. 뒤늦은 후회와 반성일지라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영화 <페인 앤 글로리>는 70년 동안 인생을 정리한 결과물이자 감독의 전환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지금까지 쌓은 명성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 영광이라 말한다. 전작들과 시그니처 스타일은 같지만 어딘지 따뜻한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각인된다. 홍상수 감독의 <강변호텔>이 어렴풋이 스쳐지나간다. 개봉은 오는 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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