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저녁 오스트레일리아 오픈(AO) 남자부 테니스 8강전 마지막 경기에서 도미닉 팀이 라파엘 나달을 물리침으로써 4강이 확정됐다. 이날 앞서 바브링카를 꺾은 츠베레프, 그리고 전날 승리한 조코비치와 페더러 등이 4강 대진표의 주인공이 됐다. 4강전은 30일 조코비치와 페더러 경기가 먼저 시작되고, 팀과 츠베레프는 31일 경기를 치른다.
 
4강의 면면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였다. 연초 많은 테니스 전문가들은 올해를 세대교체의 균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해로 꼽았다. 페더러, 조코비치, 나달 등 '빅3'와 랭킹에서 바로 그 뒤를 잇는 20대 선수들이 그 어느 때보다 잦은 '충돌'을 빚을 것으로 내다봤는데 첫 그랜드슬램 대회인 AO부터 그런 예상이 현실화 됐다.
 
빅3에서 페더러와 조코비치가, 랭킹 5~8위의 20대 5명 가운데는 팀과 츠베레프가 각각 4강의 두 자리씩을 나눠 갖은 것이다. 흥미롭게도 4강전은 베테랑조와 영건조로 이뤄져, 결승은 무조건 빅3 가운데 한 명과 20대의 젊은 선수가 치를 수밖에 없게 됐다.
 
과연 누가 결승에 오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페더러와 조코비치의 승부추는 아무래도 조코비치쪽으로 기운다. 팀과 츠베레프 경기는 점치기가 힘들다. 8강 전에서 승부를 예상하기 가장 어려웠던 경기가 나달과 팀의 대전이었는데, 팀과 츠베레프 경기 또한 섣불리 전망하기 어려운 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코비치(왼쪽)와 페더러. 이번 4강전은 두 선수 사이의 50번째 맞대결이다.

조코비치(왼쪽)와 페더러. 이번 4강전은 두 선수 사이의 50번째 맞대결이다. ⓒ 위키미디어 커먼스

   
서브의 기적이 페더러의 유일한 희망?
 
조코비치에 맞서는 페더러는 '삼불리' 조건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1)조코비치보다 6살 나이가 많고, (2)준결승에 오르기까지 경기 시간의 거의 2시간 30분 가까이 많았으며, (3)맞대결 상대전적에서 23대 26으로 밀린다는 점이 그것이다.
 
운동 경기에서 6살 나이는 보통 차이가 아니다. 지구력을 포함한 체력과 스피드에서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조코비치나 페더러 모두 기술의 다양성과 완성도에서 투어 최고의 선수들이지만, 나이 차이에서 오는 체력과 스피드 저하를 기술로 완전히 커버하기는 힘들다.
 
이번 AO에서 조코비치는 페더러보다 코트에서 보낸 시간, 즉 총 경기시간이 2시간 27분 적었다. 2시간 반은 테니스에서 대략 4세트 매치 하나를 치를 수 있는 시간이다. 4강에 오르기까지 둘다 5번 경기를 했는데, 시간만으로 따진다면, 페더러는 6번 치른 것이나 다름 없다. 특히 직전 8강전에서 조코비치는 2시간 49분을 뛰었는데, 페더러는 승리를 위해 3시간 31분을 쏟아야 했다.
    
 4강 진출자별 경기시간을 비교하면 선수 각각의 체력 소모 정도 등을 짐작할 수 있다.

4강 진출자별 경기시간을 비교하면 선수 각각의 체력 소모 정도 등을 짐작할 수 있다. ⓒ 김창엽

   
상대전적에서 페더러가 23승 26패로 밀리는 것은 얼핏 보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연말 ATP 파이널스에서 페더러가 조코비치를 꺾기 이전, 2016~2019년 벌어진 4경기에서 모두 페더러가 졌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페더러는 무조건 지는 경기를 할 것인가? 페더러가 조코비치를 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포인트를 짧게 가져가는 것이다. 포인트를 짧게 하는 첫걸음은 첫 서브 성공률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조코비치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스트로크의 달인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투어 넘버원 볼 스트라이커이다. 랠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페더러에게는 불리하다. 그러나 첫서브 성공률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면 페더러로서도 희망이 있다.
 
페더러는 3라운드와 8강전에 각각 마지막 5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치렀다. 이때 첫서브 성공률이 65%였다. 65%는 20여년 전만 해도 제법 준수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판도가 크게 달라져 70%는 넘어야 좋다는 소리를 듣는 실정이다.
 
조코비치는 그 자신이 말한대로 이번 대회 들어 부쩍 서브가 좋아졌다. 나달이 3년 전부터 카를로스 모야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서브를 크게 강화했는데, 나달을 벤치마킹한 듯하다. 사실 나달의 서브 강화는 나이가 들면서도 양호한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페더러의 비결, 즉 좋은 서브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기도 하다.
  
 도미닉 팀. 베이스라인에서 멀찍이 떨어져 공격 테니스를 구사한다. 코트 커버 범위가 가장 많은 선수 중 한명이다.

도미닉 팀. 베이스라인에서 멀찍이 떨어져 공격 테니스를 구사한다. 코트 커버 범위가 가장 많은 선수 중 한명이다. ⓒ 위키미디어 커먼스

 
츠베레프 마침내 그랜드슬램에서 일 낼까
 
팀과 츠베레프의 4강전은 의외의 변수가 없다면 백중세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4강전을 좌우할 수 있는 여러 지표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세계 5위인 팀은 7위인 츠베레프보다 랭킹에서 앞선다. 또 상대전적도 팀이 6승 2패로 확실한 우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나이는 츠베레프가 4살 젊다. 이번 AO 대회에서 지금까지 총 경기시간은 팀이 14시간 33분으로 츠베레프의 10시간 34분보다 약 4시간 많다. 특히 직전 8강전에서 츠베레프는 바브링카를 상대로 2시 19분 만에 승리를 이끌어낸데 반해 팀은 나달을 꺾기까지 4시간 10분이나 걸렸다.
 
츠베레프는 특히 4강에 오르기까지 5번의 경기에서 2시간 30분을 넘긴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반면 팀은 2시간 30분 이상의 경기를 3차례나 치러야 했다. 경기시간은 얼마나 강한, 혹은 약한 상대를 만나느냐에 영향을 받기도지만, 한두 경기도 아니고 5경기에서 거의 1.5배가량 시간이 더 걸렸다는 것은 경기력 안정성 측면에서 밀린다는 의미다. 풀이하자면 최소한 이번 대회 컨디션은 츠베레프가 더 좋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츠베레프. 서브와 스트로크가 주특기로 경기 운영이 비교적 단조롭다.

알렉산더 츠베레프. 서브와 스트로크가 주특기로 경기 운영이 비교적 단조롭다. ⓒ 위키미디어 커먼스

 
츠베레프는 이번 AO 4강 진출이 지금까지 참가한 19번의 그랜드슬램 대회 최고 성적이다. 이전에는 프렌치 오픈에서 두 번 8강에 든 적이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츠베레프의 상대적으로 저조한 그랜드슬램 성적을 두고 "멘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러나 츠베레프는 이번 AO에서만큼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테니스에서 '멘털'은 축구나 격투기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축구나 격투기에서 정신력이란 운동장 혹은 캔버스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기를 쓰고 몸을 놀리는 것이다. 반면 테니스의 멘털이란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고 할 때의 정신력이다. 바로 침착성과 냉정함이다.

테니스 멘털의 정신력은 페더러가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은 선수들 가운데 남다르게 페더러와 친하고 페더러를 많이 따르는 츠베레프가 페더러를 본보기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팀으로서는 4강전 경기의 '주적'이 상대 선수인 츠베레프가 아니라 자신일 수도 있다. 팀은 나달과 함께 톱10, 아니 세계 랭킹 100위 이내 선수까지를 포함해서도 거의 '유이'한 경기 패턴을 가진 선수라 할 수 있다.
 
회전이 엄청나게 강하고 종종 상대 머리 위 높이까지 치솟기도 하는 톱스핀 공을 주무기로 구사한다는 점, 서브를 받을 때 베이스라인에서 뒤로 5미터, 심지어는 7미터까지 뒤로 물러서서 받는다는 점, 엄청난 체력과 지구력 또 스피드로 상대를 밀어 부친다는 점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이런 경기 스타일 때문에 팀은 나달과 함께 흙 코트에서 특히 강점을 보이는데, 상대도 피곤하지만 자신에게도 피로도를 누적시킬 수밖에 없다.
 
AO 같은 메이저 대회는 7번을 이겨야 비로소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고, 매 경기가 5전 3선승제여서 대회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아주 큰 몫을 한다. 공을 빨리 잡아채고, 베이스라인 근처를 잘 떠나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설령 상대가 꽤 랭킹이 낮아도, 팀이 이겨도 체력 소모를 많이하며 이기는 경기 패턴이 반복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이다.
 
팀과 츠베레프 가운데 누가 결승에 오를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결승에서 조코비치를 만난다면 이번 AO에서만큼은 츠베레프가 조금 더 조코비치를 괴롭힐 확률이 높다. 조코비치와 팀의 상대전적은 6승 4패, 조코비치와 츠베레프 상대전적으로 3승2패로 엇비슷한데, 츠베레프가 팀에 비해 젊고 경기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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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코비치 페더러 츠베레프 테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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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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