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승부> 정도를 제외하면 스포츠를 전면에 내세운 소재의 드라마가 성공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렇다고 13%의 다소 아쉬운 시청률로 종영한 동시간대 드라마 <배가본드>의 엄청난 후광을 입은 것도 아니다. <리멤버-아들의 전쟁>과 <김과장>을 히트시켰던 남궁민은 예외로 하더라도 박은빈과 조병규는 지상파 드라마의 주연으로 활약하기엔 아직 종편드라마 <청춘시대>와 < SKY캐슬 >의 향기가 짙게 남은 배우들이다.

하지만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는 여러 가지 불안요소들을 이겨내고 방영 2주 만에 인기 드라마의 공식을 써내려 가고 있다. 방송 2회 만에 수도권 시청률 10%를 돌파한 <스토브리그>는 4회 만에 전국 시청률 11%를 넘기며 KBS의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에 이어 주말 드라마(금토드라마 포함) 시청률 2위를 달리고 있다. 주인공 남궁민은 <스토브리그>의 시청률이 17%를 넘길 경우 <본격연예 한밤>의 리포터에 도전하겠다는 공약까지 걸었다.

<스토브리그>는 만년 꼴찌 야구팀 드림즈를 강팀으로 키우려는 백승수 단장(남궁민 분)과 수익이 나지 않는 드림즈를 해체시키려는 실질적인 구단주 권경민 상무(오정세 분)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다. 하지만 4회까지의 이야기 진행을 보면 드림즈를 해체시키려는 권경민 상무가 정말로 백승수 단장의 일을 방해하려는 건지 강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조용하지만 꾸준히 필모그래프 쌓은 대기만성형 배우 오정세
 
 오정세는 <남자사용설명서>에서 찌질한 한류스타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오정세는 <남자사용설명서>에서 찌질한 한류스타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 (주)쇼박스

 
<스토브리그>에서 권경민 상무 역은 배우 오정세가 연기한다. 오정세는 주연배우로서 큰 흥행작을 남겼다거나 대형 시상식에서 큰 상을 받을 정도로 명성이 높은 배우는 아니지만 영화와 드라마,연극을 넘나들며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배우로서 활동범위를 점점 넓혀가며 대중들의 신뢰와 호감을 넓히고 있는 대기만성형 배우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영화 <아버지>에서 단역으로 데뷔한 오정세는 영화와 연극 무대를 오가며 활동하다가 2010년 <부당거래>의 김기자 역과 2012년 <코리아>의 오두만(유남규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배역) 역으로 주목 받았다. 그리고 2013년2월에 개봉한 영화 <남자사용설명서>에서 한류스타 이승재를 연기하면서 인상적인 주연 신고식을 마쳤다(<남자 사용설명서>는 전국 50만 관객에 그쳤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숨겨진 수작'으로 훗날 재평가 받은 작품이다).

<남자 사용설명서>가 개봉한 2013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드라마에도 출연하기 시작한 오정세는 MBC의 <미스코리아>와 <개과천선>, KBS의 <미래의 선택> 등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더욱 익숙한 배우가 됐다. 오정세는 2014년에 개봉한 영화 <타짜2: 신이 손>에서 꼬장(이경영 분)을 배신했다가 미나(신세경)에 의해 역설계를 당하는 '중간보스' 서실장을 연기하기도 했다. 

배우 오정세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은 2017년에 방송된 드라마 <미씽나인>과 작년 연말에 개봉한 영화 <스윙키즈>였다. 비록 <미씽나인>은 최종회 시청률 4.2%, <스윙키즈>는 전국 146만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오정세는 <미씽나인>으로 2017년 MBC연기대상 황금연기상, <스윙키즈>로 제6회 한국영화 제작가협회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데뷔 후 처음으로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테드 창-노규태에 이어 <스토브리그>의 권경민 상무, 정말 악역일까
 
 오정세는 <스토브리그>에서 남궁민의 행보를 방해하는 듯 하면서 남몰래 돕고 있는 권경민 상무 역을 소화하고 있다.

오정세는 <스토브리그>에서 남궁민의 행보를 방해하는 듯 하면서 남몰래 돕고 있는 권경민 상무 역을 소화하고 있다. ⓒ SBS 화면 캡처

 
아직 올해가 지나려면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지만 2019년은 오정세에게 최고의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대중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남은 작품을 무려 세 개나 만났기 때문이다. 오정세는 1월에 개봉해 16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극한직업>에서 이무배(신하균 분) 라이벌 조직의 보스 테드 창을 연기했다. 오정세는 <극한직업>에서 긴장된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는 코믹하고 매력적인 악역연기를 통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 가을 방영돼 최고 23.8%의 시청률을 기록한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도 오정세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홍자영 변호사(염혜란 분)의 남편이자 차기 옹산군수를 꿈꾸는 노규태를 연기한 오정세는 단순한 악역이 될 수 있었던 노규태의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 넣으며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았다. 그리고 오정세는 <동백꽃>이 종영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지난 13일 <스토브리그> 드림즈의 권경민 상무로 돌아왔다.

드림즈에서 실질적인 구단주 역할을 하는 권경민 상무는 드림즈의 새 단장으로 부임한 백승수 단장과 끊임없이 대립하는 인물이다. 권경민 상무가 이세영 운영팀장(박은빈 분)이 강하게 반대한 백승수 단장을 선임한 이유도 '우승 후 팀 해체'라는 백 단장의 과거 이력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토브리그>가 4회까지 진행된 시점에서 보면 권경민 상무는 백승수 단장을 남몰래 돕는 '우렁각시'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권경민 상무는 2회에서 사장(손종학 분)이 반대한 팀의 간판스타 임동규(조한선 분)의 트레이드를 허락했고 사장이 무마하려 했던 스카우트 팀장(이준혁 분)의 해고도 승인했다. 드림즈의 모기업 회장(전국환 분)이 구단 해체를 서두르라고 다그쳤을 때도 "(말썽 생기지 않게) 천천히 진행하겠습니다"는 말로 진행 속도를 늦추는데 일조했다. 이에 일부 시청자들은 권경민 상무가 드라마 후반 구단 해체를 막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거라 전망하기도 한다.

만화 <드래곤볼>의 등장인물 베지터는 시종일관 주인공 손오공을 죽이겠다며 대립관계를 벌인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손오공을 걱정하는 의외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스토브리그>의 권경민 상무 역시 종목을 넘나들며 팀을 우승을 이끄는 백승수 단장을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스토브리그>의 마지막 장면이 백승수 단장과 권경민 상무의 뜨거운 포옹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어색한 결말이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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