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의 추락이 계속되고 있다. 오리온은 21일 현재 7승 17패(.292)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무려 5연패의 수렁에 빠져있다.

오리온은 시즌 초반만 해도 최소한 6강 이상의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올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가 1인 출전제로 바뀌면서 이승현-최진수-허일영-장재석으로 이어지는 두터운 토종 포워드진을 보유한 오리온에게 유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9년째 오리온의 지휘봉을 잡고있는 추일승 감독의 지도력도 안정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오리온은 시즌 개막 이후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추일승 감독이 구상했던 팀 운용 플랜이 시즌 초반부터 틀어지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야심차게 영입한 마커스 랜드리가 개막 3경기 만에 아킬레스건 파열로 시즌 아웃됐다. 대체자로 급하게 데려온 올루 아숄루는 기량 미달로 퇴출됐다. 다시 교체로 영입한 유럽 출신의 장신센터 보리스 사보비치는 아숄루 만큼은 아니지만 골밑에서의 파워와 득점력에서 역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또다른 외국인 선수 조던 하워드의 활약도 기대에 못 미친다. 하워드는 사실상 올 시즌 오리온의 승부수였다. 추일승 감독은 올시즌 외국인 신장 제한이 철폐됐음에도 180㎝의 단신 가드인 하워드를 과감하게 선발했다. 시즌 초반에는 나름 괜찮은 활약을 보였으나 최근에는 상대팀에 플레이 스타일이 분석당하면서 점차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당 12점(전체 29위), 3.2어시스트(19위), 야투 40.9%(75위) 3점슛 36.7%(37위)는 에이스급 외국인 선수에게 기대한 성적이 아니다.

설상가상 국내 선수들도 동반 부진에 빠져있다. 경기당 12.3점을 기록해주던 허일영이 10경기 만에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오리온은 현재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면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려주는 국내 선수가 전무하다. 장재석이 시즌 초반 분전했으나 외국인 선수와의 매치업이 잦아지며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추세고, 이승현과 최진수는 역할 분담에 실패하며 공존에 애를 먹고 있다. 원래부터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토종 가드진은 부상에서 복귀한 한호빈과 노장 이현민이 분전하고 있으나 상대 가드진과의 매치업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추일승 감독은 불과 3년 전 만 해도 오리온을 우승으로 이끌며 암흑기를 전전하던 팀을 훌륭하게 재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추감독에게도 프로 무대에서 첫 우승이기도 했다. 당시 오리온 우승의 주역은 바로 조 잭슨이라는 단신 외국인 선수였다.

당초 1옵션으로 선택했던 애런 헤인즈가 정규 시즌에는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했고, 잭슨이 시즌 초반 KBL 적응에 애를 먹으며 교체설까지 나 올만큼 부진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 접어들며 잭슨이 압도적인 개인 능력을 앞세워 전태풍-양동근 등 국내 엘리트 가드들을 압도하는 '에이스 모드'로 환골탈태하면서 오리온은 정규시즌 1, 2위팀 전주 KCC와 울산 현대모비스를 잇달아 연파하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오리온의 우승은 KBL 역사상 단신 외인의 최대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3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KBL에서 디온테 버튼(전 원주 DB)나 고 안드레 에밋(전 KCC)처럼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단신 외국인 선수들은 많았지만 정작 플레이오프에서 팀을 정상까지 이끌지는 못했다. 오히려 KBL에서는 안정적인 외국인 빅맨을 중심으로 우승을 차지한 사례가 훨씬 많다. 2016년 오리온의 우승은 그야말로 특수했던 사례에 가깝다.

단신 외인 기용이 성공을 거두려면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로 단신 선수가 해당 포지션에서 경쟁자들보다 압도적인 생산력을 유지해야 하고, 둘째로는 단신 외인 기용에 따른 핸디캡(높이 약화, 수비 매치업 문제)을 메울 수 있는 전술적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5-2016 우승 시즌과 현재 2019-2020시즌 오리온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 일단 하워드는 잭슨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돌파와 운동능력으로 상대 수비를 흔들어주던 잭슨에 비하여 하워드는 국내 가드들과의 매치업에서도 일대일도 딱히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더구나 당시에는 김동욱(삼성)이라는 패스 능력이 좋은 '포인트 포워드'가 존재했기에 잭슨이 굳이 경기 리딩에 대한 부담을 지우지 않고 '돌격대장'으로 활용이 가능했다. 잭슨의 파트너도 헤인즈나 제스퍼 존슨같이 국내 선수들을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선수들이었기에 정규 시즌에는 잭슨이 부진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현재 오리온의 토종 포워드진이 부진한 것도 선수들의 동선을 조율하고 적재적소에 패스를 넣어주며 경기 흐름을 풀어줄 리더가 없기 때문이다.

이승현의 혹사도 중요한 차이다. 2015-2016시즌에는 '건강한 이승현'이 있었기에 스몰 라인업을 내세워도 외국인 선수와 골밑 매치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올해의 이승현은 비시즌 농구 월드컵 출전으로 인한 체력적 부담에 시즌 중에는 잔부상을 안고도 계속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추일승 감독이 당초 정통 빅맨이 아닌 하워드나 랜드리로 외국인 선수 진용을 구상할 수 있었던 것도 이승현이 상대 외국인 빅맨과 어느 정도 매치업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이뤄진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승현의 과부하를 염두에 두지않은 추감독의 무리수는 오히려 가드진에 이어 포워드진까지 동반으로 무너지는 악순환만 초래했다. 파워포워드와 스트레치 포워드 역할 사이에서 좀처럼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최진수와의 공존 문제도 몇 년째 해결되지 않는 숙제다.

시즌 초반만 해도 오리온은 승패를 떠나 상대 팀들과의 격차가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5연패 기간 동안 득점은 침묵하고 실점은 점점 늘어나는 졸전 양상이 심해지고 있다. 오리온보다 사정이 크게 나을 것도 없는 모비스나 삼성에게도 연패 탈출의 제물이 되고 있는 현실은 오리온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수비 집중력과 포인트가드 문제에서 시작된 불안 요소가 이제는 총체적 난국으로 커져버린 오리온에게 하위권 탈출의 데드라인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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