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K리그1 제주 유나이티드는 올시즌 창단 38년 만에 처음으로 2부리그 강등이 확정됐다. 리그 창단 멤버이자 기업구단으로서는 부산 아이파크(2015), 전남 드래곤즈(2018)에 이어 3번째였다. 특히 제주는 2017년만 해도 K리그1 준우승을 차지했던 구단이 2년 만에 최하위 다이렉트 강등이라는 급격한 몰락은 더 낯설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제주의 강등을 다루며 '충격' '참사'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하지만 정작 K리그를 오래 지켜본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그럴줄 알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라는게 흥미롭다. 제주의 기형적인 구단 운영과 비효율적인 투자는 축구 팬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2018 시즌 최종성적은 5위로 상위 스플릿 진입은 성공했지만 중반 15경기 연속 무승의 부진을 겪을 때부터 조짐이 보였다.

이때부터 팀의 위기에 대한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났지만 2019 시즌에도 자성과 개혁은 보이지 않았다. 몇 년 사이에 제주의 성공을 이끈 핵심 선수들이 잇달아 군입대와 이적 등으로 팀을 떠난 반면 새롭게 영입한 이적생과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은 오히려 해마다 떨어졌다. 자연히 선수들도 투자와 지원에 소극적인 구단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올해도 윤일록, 윤빛가람, 이근호, 남준재, 안현범 등 선수들의 이름값 자체는 다른 구단에 비하여 크게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지만 경기에 임하는 집중력과 동기부여에서 확실히 차이가 났다.

제주의 강등이 확정된 이후 그동안 구단 내부의 비정상적인 팀 운영에 대한 폭로도 나오고 있다. 팬들은 제주의 강등에 대해 싸늘한 여론이 지배적이다. 역시 강등권 탈출을 위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인천이나 경남과 비교해도 성적뿐만이 아니라 팬들을 감동시킬만한 최소한의 스토리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만일 올 시즌 제주가 강등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이런 문제점들은 알려지지 못하고 앞으로도 개선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K리그에서 승강제가 도입된 것은 2013년부터다. 냉정하게 말하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도입된 제도였다. 당시 AFC(아시아축구연맹)에서 승강제를 시행하지 않는 축구 리그에게 AFC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 등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실제로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K리그에는 큰 압박으로 작용했다. 그동안 몇 차례나 승강제 도입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시기상조라는 내부의 반발로 무산되었던 K리그는, 오히려 AFC의 압박을 기회로 역이용하여 진통 끝에 결국 승강제를 시작할 수 있었다.

승강제가 프로축구에서 가지는 가장 큰 가치는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끝까지 '최선의 경쟁'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승강제가 없는 프로야구나 농구에서는 순위싸움에서 뒤처진 하위권팀들이 후반으로 가면서 아예 시즌을 포기하고 무성의하게 경기를 운영하는 문제점이 종종 발생한다. '올해 못해도 내년에 만회하면 되지'라는 안이한 생각 때문이다. 심지어 NBA(미국프로농구)나 MLB(미국프로야구)같은 세계적인 리그에서조차 '리빌딩'을 핑계로 신인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노리고 시즌을 포기하는 '탱킹' 문제가 고질적인 병폐로 거론될 정도다.

승강제가 있는 축구에서는 이런 풍경은 보기 힘들다. 무성의하게 팀을 운영하다가 자칫 하부리그로 강등당하면 그때부터 진정한 고난의 시작이다. 구단 예산이 1부리그에 있을때보다 엄청나게 줄어들고 구단 운영의 방향성이 달라진다. 동기부여를 상실한 주축 선수들의 이적 러시도 뒤따른다. 한번 강등 당하면 언제 다시 1부리그로 올라올 수 있을지도 기약하기 어렵다. 프로 구단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리그 전체의 긴장감과 경쟁력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또한 강등은 프로답지 못한 구단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준엄한 징벌이기도 하다. 2015년 강등 당했던 성남은 한때 K리그 최다 우승을 자랑하는 전통의 명문이었다. 부산과 전남, 제주는 모두 유명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기업 구단이었다. 하지만 과거에 명문이었거나 대기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프로페셔널하게' 운영되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났다.

승강제 이전에는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팀들이 없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강등을 안 당했더라면 묻힐 수도 있었던 문제들이 공개되면서 구단 내부의 그동안 해묵은 치부와 모순들까지 폭로되고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을 얻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상위 리그에서 어울릴만한 경쟁력을 지닌 팀들만이 살아남는다. 승강제는 강등 당하는 구단들과 팬들 입장에서는 상처가 되겠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축구의 진정한 프로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제도였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강등은 결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승강제 도입 초기 2부리그 강등의 아픔을 피하지 못했던 대구FC는 인고의 3년을 거쳐 1부 리그로 복귀했고 지금은 FA컵 우승(2018년)에 이어 올해도 K리그 상위스플릿을 다투는 신흥 강호로 훌륭하게 성장했다. 적극적인 비전과 투자로 구단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이겨낸 대구의 성공은, K리그에 중소 구단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강등은 모기업과 팬들이 진정으로 이 구단과 축구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제주에게도 이번의 강등이 그저 참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새 출발을 위한 전환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리그 승강제 제주유나이티드 대구FC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