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스트로이어> 포스터

영화 <디스트로이어> 포스터 ⓒ (주)라이크콘텐츠

 
니콜 키드먼의 파격 변신으로 주목받는 영화 <디스트로이어>는 17년 전 연인이자 동료를 잃고 폐인이 된 에린의 복수극이다. 화끈한 액션과 핏빛으로 물든 장면을 보여주는 복수 대신 심리에 초점을 맞춘 여성 누아르에 가깝다. 감독은 <걸파이트>, <이온 플러스>, <죽여줘! 제니퍼> 등 꾸준히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캐린 쿠사마다.

17년 전 앙금을 끝내기 위한 복수
 
 영화 <디스트로이어> 스틸컷

영화 <디스트로이어>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현재 그녀는 삶의 목적이 없다. 딸 쉘비(제이드 페티존)와의 사이도 벌어질 대로 벌어졌고, 알코올중독 때문에 술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처지다. 이런 그녀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이 다시 시작된다. 바로 잉크가 묻은 한 장의 지폐 때문이다. 지폐는 과거에서 온 메시지다. 조직의 보스 사일런스(토비 켑벨)가 보낸 표식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녀의 과거에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과거 에린은 동료 크리스(세바스찬 스탠)와 범죄조직에 잠입 수사를 벌였다. 둘은 연인으로 가장했지만 진짜 연인이 되어 몰래 사랑을 키웠다. 돈을 갖고 새 삶을 살고 싶은 에린은 크리스와 의논한다. 이 일을 마치고 도망치자고 말이다. 하지만 일은 그릇되었고 현재 에린은 망가졌다.

지폐를 받은 후로 에린은 17년 전 풀지 못한 앙금을 해소하기 위해 범죄조직의 인물들을 수소문한다. 궁극의 목적은 사일런스를 찾기 위함이다. 때문에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잦은 플래시백을 보여준다. 30대의 에린과 50대의 에린이 교차편집되는데 이로 인해 극의 몰입감은 떨어진다. 범죄조직에 위장 잠입해 수사를 해결한다는 설정도 신선하지 않다. 하지만 주체가 여성 형사라는 점, 니콜 키드먼의 변신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변신은 파격적이었지만
 
 영화 <디스트로이어> 스틸컷

영화 <디스트로이어>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니콜 키드먼은 그동안의 이미지를 버리고, 30대와 50대 어느 모습도 쉽게 상상하지 못한 외형을 연출했다. 그런 탓에 <몬스터>의 '샤를리즈 테론'과 비교당할 수 있다. 그러나 2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니콜 키드먼의 연기는 <몬스터>의 캐릭터와 접근 방식이 다르다. <몬스터>는 에일린(샤를리즈 테론)이 불우한 가정 환경 때문에 점점 망가지며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마가 되기까지를 농밀하게 분석했다. 캐릭터를 위해 샤를리즈 테론은 분장뿐만 아니라 외형까지 망가트려 세간의 찬사를 얻었다.

니콜 키드먼이 분한 에린은 어찌 된 일인지 감정이입이 쉽지 않다. 연인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 여기는 죄책감을 강한 연민으로 이끌어 내려 한다. 관객에게 페이소스를 얻으려는 의도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욕망을 가진 인물이란 설정은 몇 마디 대사로 흘려버리는데 급급하다. 한낱 욕망 때문에 일도 사랑도 잃어버린 형사의 복수에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이유다. 오직 복수의 칼날을 갈아왔고 드디어 마지막에 터트리는데 그 허무함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장황하게 늘어놓던 죄책감의 단서들은 마지막에 수미쌍관으로 맞물린다.
 
 영화 <디스트로이어> 스틸컷

영화 <디스트로이어>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디스트로이어>는 여성형사의 복수극이라는 소재 빼고는 진부한 설정과 느린 전개가 걸림돌인 영화다. 다른 영화에서 인상적인 캐릭터를 보여주었던 세바스찬 스탠, 토비 켑벨, 타티아나 마슬라니도 <디스트로이어>에서는 오직 니콜 키드먼의 들러리에 그친다. 배우들의 캐릭터를 살리지 못한 연출이 아쉽다. 오로지 '니콜 키드먼'의 변신을 확인하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진정한 파괴자는 누구일까 되묻게 된다. 자신의 인생을 망친 사일런스를 파괴하려는 에린일까. 에린의 속죄를 함께한 관객일까. 개봉은 9월 19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디스트로이어 니콜키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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