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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해 “국가전복을 꿈꿨던 사람이 법무부 장관이 될 수 있나”고 비판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사진은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해 “국가전복을 꿈꿨던 사람이 법무부 장관이 될 수 있나”고 비판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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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조국 절대 불가론'을 펼친 근거가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조국 후보자는 과거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관련 사건으로 실형까지 선고받았던 사람"인데 "사노맹은 무장봉기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 달성을 목표로 폭발물을 만들고 무기 탈취 계획을 세우고, 자살용 독극물 캡슐까지 만들었던 반국가 조직"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국가전복을 꿈꾸는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이 법무부장관에 앉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이야기냐"라고 반문까지 했다. 

우선, 사실관계

우선 사실관계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황교안 대표의 지적과 달리 사노맹에 '몸담았던 사람'이 아니다. 조국 후보자는 사노맹의 부설기관인 '남한사회주의과학원'(사과원)에 가입해 활동한 이력이 있을 뿐, 사노맹에 가입한 사실이 없다. 

1994년 6월 1일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신정치 부장판사)는 조국(당시 울산대 교수)에 대해 사과원에 가입해 활동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적단체가입죄 등을 적용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을 뿐이다. 사노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형을 선고하진 않았다.
 
서울고법, 남한사회주의과학원 "이적단체" 판결(1994. 6. 2, <동아일보>) 조국 후보자가 연루된 사건은 황교안이 언급한 것과 달리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 사건이 아니라, 남한사회주의과학원 사건이었다.
▲ 서울고법, 남한사회주의과학원 "이적단체" 판결(1994. 6. 2, <동아일보>) 조국 후보자가 연루된 사건은 황교안이 언급한 것과 달리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 사건이 아니라, 남한사회주의과학원 사건이었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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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2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사회주의과학원은 국가변란이 아니라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데 주목적이 있었던 만큼 반국가단체가 아닌 이적단체로 보아야 한다"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래서 당시 언론도 조국이 연루된 사건을 '사노맹 사건'이 아니라 '사과원 사건'으로 구분해서 불렀다. 

결국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과거 이력에 대한 언급은 사실과 다른 허위사실에 해당한다. 국가보안법 체계를 잘 모르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면 단순한 실수로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편의 논문을 쓰고 국가보안법 해설서까지 낸 '미스터 국가보안법' 황교안 대표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라면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황교안 대표가 그렇게 무시무시한 조직으로 묘사한 사노맹에 가입해 활동했던 인물(박노해·백태웅)들도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 산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루고자 만들어진 민주화운동의 한 부류로 인정받았고 복권됐음을 의미한다. 사노맹에 대해서도 새삼 시비를 걸 대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래도, 어쨌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안된다? 

조국 후보자는 1993년 당시에도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나온 직후 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실정법이 존재하는 한 나의 사상은 유죄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시대인식을 반영한 법 정신에 따른다면 나의 사상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라면서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그동안은 자본주의의 민주주의로만 간주해왔다, 그러나 민주적이라는 개념에 사회주의의 민주주의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라고 해 무죄를 주장한 적이 있다.

조국 후보자가 지금 사회주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1993년 당시에는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사상의 자유 차원에 속할 뿐 헌법 정신에 위배되지 않으며, 오히려 국가보안법이 헌법 정신에 위배되니 폐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조국 후보자가 지금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법무부장관이 될 자격이 없는 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돼야 한다는 소신과 당장 폐지되지 않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해당 법률의 집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스스로 풀 수만 있다면, 자격 논란에 휩싸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사상의 자유' 유죄 인정못해(1993. 11. 28, <한겨레신문>) 조국 후보자는 1993년 11월 사회주의과학원 사건 관련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직후 인터뷰를 통해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부합되며,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했다.
▲ "사상의 자유" 유죄 인정못해(1993. 11. 28, <한겨레신문>) 조국 후보자는 1993년 11월 사회주의과학원 사건 관련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직후 인터뷰를 통해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부합되며,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했다.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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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과거

알다시피 대통령까지 한 박정희는 1948년 숙군과정에서 남로당 군사부의 핵심 인물로 지목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그런 박정희가 과거 자신의 활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성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1963년 대선에서 상대 후보가 과거 이력을 문제 삼았을 때 이를 한국판 매카시즘이라며 '코카시즘'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강하게 반발했을 뿐이다.

이런 박정희가 법무부장관 정도가 아니라 수많은 법무부장관을 임명하는 자리에 무려 18년 넘게 앉아 있었다. 그런 박정희를 칭송까지 한 인물이 사회주의를 연구하고 <우리사상>이라는 잡지를 발간했던 게 전부인 조국 후보자를 두고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세력은 1979년의 12.12쿠데타에 이어 1980년의 5.17쿠데타를 일으켜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을 학살하면서까지 권력을 장악했다. 이 사건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일이었다.
   
그래서 당시 대학생들을 비롯한 민주시민들은 "학살원흉 처단!"을 외치면서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세력에 맞서 싸웠다. 심지어 어떤 이는 소중한 자신의 몸을 불사르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도 그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세력에 저항하기는커녕 그 아래에서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세력 아래에서 공안검사로 활약한 황교안 대표다.

그런 황교안 대표도 2013년부터 2년간 법무부장관을 역임했다. 황 대표가 과거 자신의 부역행위에 대해 반성하거나 사과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조국 후보자가 과거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세력에 맞서 싸우다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가입죄 등으로 감옥살이했다는 사실이 법무부장관이 돼서는 '절대 안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단이 마련된 사무실 로비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진은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단이 마련된 사무실 로비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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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사문화연구소에서 서울의 지역사를 연구하면서 동작구 지역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인권도시연구소 이사장과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