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으로 음주가 허용된 20세 이상의 성인들은 중요한 시험을 망치거나 하려는 일이 잘 안 풀렸을 때 주량보다 과하게 술을 마시곤 한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술기운을 빌려 자신의 SNS에 우울한 기분을 글로 남기기도 한다(물론 이들 중 대부분은 다음날 술이 깨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엄청난 자괴감에 빠진다). 이런 일이 자주 있으면 몸과 마음의 건강에 좋지 않지만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쯤은 겪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아직 중요한 시험을 치르지도 않았거나 하려는 일의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실패를 짐작하고 우려해 미리 술을 마시고 SNS에 우울한 기분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실패를 미리 짐작하고 절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시도'를 해보기도 전에 '포기'부터 하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좋은 결과가 따라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도 15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스포츠 시대극의 주연을 맡은 배우가 영화 개봉 이틀 전 자신의 SNS에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 글을 올렸다. 그리고 이 글은 영화의 흥행 참패와 함께 계속 패러디되면서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가수 겸 배우 정지훈이다. 그는 <검법남녀 시즌2>의 후속으로 5일 첫 방송되는 MBC의 새 월화드라마 <웰컴2라이프>에서 최고 승률을 자랑하는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로 변신을 시도한다.

가수, 배우로 최전성기 달리다가 할리우드 진출한 정지훈
 
 <풀하우스>는 '연기도 하는 가수 비'를 '배우 정지훈'으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풀하우스>는 '연기도 하는 가수 비'를 '배우 정지훈'으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 KBS 화면캡처

 
배우로 활동할 때는 본명을 사용하지만 정지훈은 본명보다는 한류가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비'라는 가수 활동명이 더욱 유명하다. 1998년 6인조 보이그룹 팬클럽(팀 이름이 '팬클럽'이다)으로 데뷔했던 정지훈은 팀 해체 후 박진영의 눈에 띄어 JYP의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유명한 연습벌레였던 정지훈은 박지윤의 백댄서로 활동하며 무대 감각을 익히다가 2002년 '나쁜 남자'라는 곡을 통해 솔로 가수로 데뷔했다.

후속곡 '안녕이라는 말 대신'이 히트하면서 특급 신인의 반열에 오른 정지훈은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맹활약했다. 호감 가는 인상과 훤칠한 외모,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겸비한 정지훈은 극진공수도의 창시자 최영의의 삶을 다룬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면서 연기와 가수 활동 병행을 선언했다. 하지만 <바람의 파이터> 출연은 스케줄 문제로 최종 무산됐고, 정지훈의 연기 데뷔작은 2003년 KBS 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가 됐다.

<상두야, 학교가자>는 두 주인공 정지훈과 공효진의 열연 속에 MBC의 국민드라마 <대장금>과 맞붙었음에도 꾸준히 두 자리 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정지훈은 <상두야, 학교가자>를 통해 2013년 KBS 연기대상에서 신인상과 네티즌상,베스트 커플상을 휩쓸며 배우로서 인정 받기 시작했다. 같은 해 가을 2집 <태양을 피하는 방법>으로 최고 인기가수로 등극한 정지훈은 2004년 배우로서의 첫 번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풀하우스>를 만났다.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정지훈과 또래 중 가장 잘 나가는 여성 배우 송혜교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풀하우스>는 평균 32.1%, 최고 40.2%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크게 히트했다. 정지훈은 2004년 KBS연기대상에서도 인기상과 베스트커플상,우수상을 쓸어 담았다. 정지훈은 10월에 발표한 3집 < It's Raining >마저 크게 히트하면서 가수로서도 KBS 가요대상 대상과 SBS 가요대전 최고인기상을 차지, 노래와 연기 양 쪽 분야에서 최전성기를 달렸다.

2006년에는 복수 3부작으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 캐스팅됐지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지나치게 실험적인 작품이라는 평가 속에 전국 70만 관객에 그쳤다. 하지만 첫 영화 도전의 실패는 정지훈의 상품가치에 어떤 악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오히려 정지훈은 <매트릭스> 시리즈로 세계적인 명성이 자자했던 워쇼스키 자매의 신작 <스피드 레이서>의 캐스팅돼며 할리우드 진출의 꿈을 이뤘다.

<자전차왕 엄복동>으로 데뷔 후 최대 굴욕, <웰컴2라이프>로 극복할까
 
 정지훈은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완성도, 흥행과는 별개로 촬영하면서 엄복동이 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정지훈은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완성도, 흥행과는 별개로 촬영하면서 엄복동이 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 (주)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결론적으로 '배우' 정지훈에게 할리우드 진출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스피드 레이서>는 1억4000만 달러의 많은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세계적으로 5800만 달러의 수익밖에 올리지 못하며 흥행 참패했고 단독주연을 맡은 <닌자 어쌔씬> 역시 4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6100만 달러의 수익(전 세계 기준)에 그쳤다. 정지훈은 2010년 국내 복귀작이었던 <도망자 Plan.B>마저 20% 이상의 시청률로 시작해 12.7%로 끝나는 '용두사미'를 보이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정지훈은 가수로서도 2010년 <널 붙잡을 노래>를 정점으로 조금씩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고 결혼 후 첫 앨범이었던 <깡>은 '데뷔 후 최악'이라는 평가 속에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다. 2016년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마저 <태양의 후예>에 밀리며 슬럼프에 빠진 정지훈은 2017년 제작비 150억 원이 들어간 스포츠 시대극의 주인공에 캐스팅됐다. 개봉 5개월 만에 전설의 영화가 된 <자전차왕 엄복동>이었다.

이미 개봉 전부터 감독 교체와 실존인물 엄복동의 범죄이력 논란 등으로 많은 잡음에 시달렸던 <자전차왕 엄복동>은 3.1절 100주년에 맞춰 개봉했음에도 전국 17만 관객으로 흥행 참패했다. 네티즌들은 엄복동의 관객수를 조롱하는 'UBD'라는 신조어를 만들었고 <엑스맨:다크 피닉스>의 오디션 기회를 포기하고 엄복동 촬영에 집중한 정지훈 역시 대중들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물론 <다크 피닉스> 역시 흥행에서는 엄청난 참패를 당했다).

<자전차왕 엄복동>을 통해 데뷔 후 한 번도 겪지 못했던 굴욕을 경험한 정지훈은 5일 첫 방송되는 MBC월화드라마 <웰컴2라이프>를 통해 명예회복을 노린다. 정지훈의 데뷔 첫 MBC 드라마 출연이다. <웰컴2라이프>는 높은 승소확률을 자랑하는 변호사가 평행 세계에서 강직한 검사로 180도 달라진 인생을 살게 되는 리빌딩 판타지 드라마다. 정지훈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법꾸라지들을 돕는 마이웨이 변호사 이재상을 연기한다.

정지훈은 아직 많은 가능성을 가진 젊은 배우지만 그가 출연한다는 소식 만으로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이제 10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 됐다. 게다가 <웰컴2라이프>가 첫 방송되는 5일에는 SBS의 4부작 드라마 <17세의 조건>과 KBS의 청춘멜로드라마 <너의 노래를 들려줘> 같은 경쟁작들이 첫 방송된다. 과연 정지훈이 선택한 첫 MBC드라마 <웰컴2라이프>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정지훈의 부활작이 될 수 있을까.
 
 연초 <자전차왕 엄복동>으로 굴욕을 맛 본 정지훈은 여름 <웰컴2라이프>를 통해 명예회복을 노린다.

연초 <자전차왕 엄복동>으로 굴욕을 맛 본 정지훈은 여름 <웰컴2라이프>를 통해 명예회복을 노린다. ⓒ <웰컴2라이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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