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 포스터

영화 <조>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


그동안, 마음이 생겨버린 인공지능 로봇 이야기는 흔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만든 공학자의 마음이 피조물에 빠지는 영화는 흔하지 않았다. 영화 <조>의 매력은 여기서 부터다. 식상한 소재도 반짝반짝 윤이 나는 이유. 휴머노이드와의 사랑이 더욱 로맨틱해진다.

'드레이크 도리머스'감독의 로맨스 연출 재능은 <라이크 크레이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상을 받으며 로맨스 영화의 귀재란 호평을 얻었다. <이퀄스>는 모든 감정이 통제되고 사랑이 범죄가 되어버린 시대, 불꽃처럼 사랑하다 타버린다 해도 상관없을 불나방 같은 연인을 담았다. <뉴니스>에서는 데이팅 어플로 만난 남녀에 대한 애증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탐구했다.

드디어 <조>에서는 세상을 온통 파스텔톤으로 필터링한 듯한 러블리한 색감으로 로봇과의 감정 진화를 매칭하기에 이른다. 그가 만든 인공지능 '조'가 더욱 특별해지는 이유다.


로봇에게 감정이 생겨버렸다
 
 영화 <조> 스틸컷

영화 <조>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

 
'조(레아 세이두)'는 관계연구소의 커플매칭 매니저다. 상대방과 테스트 결과로 커플이 될 확률을 수치로 알려주는 일을 한다. 한편 이 연구소는 최근 인공지능 로봇 연구에도 뛰어들었다. 감성적인 과학자 '콜(이완 맥그리거)'은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가 만들면 로봇도 온기가 느껴진다.

콜은 날로 개인화되는 사회 속 관계의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 위한 로봇을 완성한다. 외로움도 고통도 느낄 수 없는 로봇과 커플이 되면 상처받거나 헤어짐의 슬픔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방이 나를 좋아할 확률 100%. 전적으로 맞춰주기 때문에 성격차이로 헤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매우 안정적인 사랑 방정식이지만 이대로 괜찮을지 의문이다.

그런 콜을 몰래 짝사랑하던 조는 슬쩍 매칭 테스트를 시도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커플이 될 확률 0%다. 이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대답이었다. 조는 고민 끝에 콜에게 마음을 고백한다.

사실 조는 콜이 만든 인공지능 로봇이었다. 일부러 로봇임을 알리지 않았는데, 감정을 느끼게끔 학습된 로봇이다. 조의 유년시절 기억은 저장된 가짜 기억이었다. 실제 일어난 일이라 생각했던 경험들은 이진법 코드의 데이터일 뿐. 조의 벅찼던 마음도 이내 슬퍼진다. 그래서 울고 싶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마치 영화 <접속>에서 슬프지만 눈물을 흐르지 않는 수현처럼. 상심한 조에게 콜은 조작된 기억도 느껴졌다면 진짜 감정이라 다독이다. 하지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콜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모습도 사랑할 줄 알아야 진짜 사랑이다
 영화 <조> 스틸컷

영화 <조>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

 
한편 '베니솔'이 출시된다. 베니솔은 관계연구소의 최신 약물이다. 사랑에 빠질 때 느낌을 떠오르게 하는 일종의 감정 반창고다. 근본적인 치유는 되지 않고 일회성 관계로 얻는 성취가 목적이다. 오래된 부부에게 활력이 생기는 획기적인 약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베니솔 팅'이란 즉석 만남에만 이용한다. 처음 만나 베니솔을 나눠 먹고 환희를 나눌 상대만 찾는다. 사랑의 감정은 두어 시간짜리의 일회용 감정으로 전락하게 된다. 진짜 인간이 가짜 감정에 중독된 꼴이다. 이제 약 없이는 아무 감정도 없는 텅 빈 마음이 되어간다.

오프닝에서 조는 기계 테스트의 질문에서 머뭇거린다. '상대가 당신의 어떤 면을 봐주길 바라나요?'라는 질문인데 고민 끝에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봐주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애써 감추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조는 과거 뚱뚱했던 기억까지 끄집어 내며 부족한 부분도 사랑해 주길 원한다.

 
 영화 <조> 스틸컷

영화 <조>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

 
사랑의 정의를 로봇에게 배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겉모습에만 치중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진짜 가치임을 잊고 살았다. 감정은 인간만의 고유한 성질이며, 복잡하기 때문에 수치화할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조는 눈에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감정을 증명하려 한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진짜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프로그래밍된 데이터가 쌓여 만들어진 감정일지라도 말이다.

영화는 사람만이 창의성을 가지고 꿈을 꾼다는 오래된 믿음에 도전하려 한다. 또한 상대방의 어두운 면도 기꺼이 사랑해줄 것을 말하고 있다. 상처받을까봐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격려의 메시지 같다. 아무것도 못 느끼는 것보다 고통을 느끼는 편이 낫다. 그리고 상처를 극복하는 법은 상처를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상처가 쌓여 굳은살이 될 때 진정한 사랑의 의미도 깨닫게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영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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